지금도 계속 쓸 수 밖에 없는 환경 "슬프고 억울"
"내 수입 두배 되는 '한 달 약값', 너무 가혹해"
[인터뷰] 정우석 진성적혈구증가증환우가족 대표
"대안이 없어 하이드록시우레아를 복용해야 했다. 결국 부작용으로 구강암에 걸리고, 수술까지 받고 나니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렵다. 부작용이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다른 치료제를 시도할 수 없는 상황이 슬프고 억울하다." -정우석 진성적혈구증가증환우가족 대표
하이드록시우레아라는 약물이 있다. 백혈병과 혈소판증가증, 진성적혈구증가증 등에 사용되지만 DNA 손상을 유발해 피부암을 촉진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안고 있다. 같은 이유로 임산부에겐 사용되지 않는 약물이다. 다른 암종의 경우 하이드록시우레아 외에 급여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약물이 존재하지만, 진성적혈구증가증은 여전히 예외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 대안 약물인 베스레미(성분 로페그인터페론 알파-2b)가 지난 2021년 국내 도입됐다. 환자들은 환호했다. 하이드록시우레아 외에 대안 없던 질환에 하나의 희망이 생긴 것이다. 올해 초에는 베스레미 급여를 위해 국민동의청원에 올려 5만명이 넘는 성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환자들의 기대에도 베스레미는 급여 도전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 사이 환자들은 하이드록시우레아 사용에 따른 신체적·심리적 부담을 고스란히 지고 있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뉴스더보이스가 오랜 시간 섭외 끝에 지난 13일 정우석 진성적혈구증가증환우가족 대표를 만났다.
정 씨는 인터뷰를 통해 하이드록시우레아의 부작용을 알지만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스스로가 하이드록시우레아 사용으로 구강암이 생겨 수술을 해야 했다. 의사와 환자 모두 하이드록시우레아의 심각한 부작용을 알고 있지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는 "너무 고통스럽고 두렵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고통은 "증상이 심한 환자에 비하면 덜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베스레미의 급여 필요성에는 "치료옵션이 없는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 실패 환자만이라도 급여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정 씨는 진성적혈구증가증환우가족 모임에 임산부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출산율이 이렇게 떨어지는 시대에 애를 낳겠다는 산모에게라도 베스레미를 쓸 수 있게 급여해달라"고 간청했다.
또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자들의 두려움은 질병이 골수섬유증이나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근본적인 치료와 잠재적 완치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베스레미 급여를 위해 기사를 잘 써 달라"고 여러번 당부를 전했다.
하이드록시우레아 외에 다른 치료 옵션이 없어 혈구 수치 조절을 위해 현재도 하이드록시우레아로 치료를 지속하고 있는 정 씨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아 소개한다.
-어떤 증상으로 병원을 내원해 진성적혈구증가증을 진단받았나? 첫 진단 당시 상황과 소회를 말씀 부탁드린다.
어느 순간부터 소파에 앉았다 일어나면 거실 바닥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고,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어지럼증이 나타났다. 눈도 많이 충혈되고 손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혈액 순환이 잘 안되서 나타나는 증상인 것 같아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골수 검사를 받은 후인 2011년 진성적혈구증가증인 것을 알게 됐다.
진단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신체 마비가 왔다. 병원에서는 혈액이 뇌 모세혈관까지 닿지 않아 산소가 공급이 안 되고 마비가 온 것이라 했다. 20일 정도 병원에서 누워만 있었고 다시 정상적으로 걷는 데는 약 6개월이 걸렸다. 이때부터 하이드록시우레아(Hydroxyurea)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처음 진단받고는 직장 생활도 7~8개월 정도 못했다. 당시 외근 활동이 많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몸이 안 좋아 외근을 할 수 없으니 출근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병원에 가려면 병가를 내야 하니 회사에도 미안하기도 하고, ‘이 사람 많이 아프구나’ 하는 동료들의 안쓰러운 눈빛도 서글펐다. 사실 병에 안 걸렸으면 정상적으로 남들과 같이 웃고 떠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40대 이후로는 건강 관리한다고 친구들 만나도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먹었었는데 이런 병에 걸리니 참 막막했다.
진단 당시에는 진성적혈구증가증이라는 병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다. 병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도 주치의 선생님 외에는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당시 주치의 선생님이 질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마음이 조금 편했다. 그러나 지금은 혈액 관련 종양을 앓는 환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진료 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내 상태에 대해 면밀히 상담하거나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게 아쉽다.
-현재 어떤 치료를 받고 계시는가? 현 치료법으로 인해 겪은 건강상의 어려움 혹은 일상생활 속 힘든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진단받고 처음 2개월은 달에 한 번씩 사혈치료를 했고, 현재는 하이드록시우레아와 아나그렐리드를 복용하고 있다. 10년 넘게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를 받아왔는데, 작년 7월에 하이드록시우레아 부작용으로 구강암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이때 처음으로 약의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했다. 입 안에 병변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매운 것도 못 먹을 정도로 아파서 이비인후과에 가 조직 검사를 했더니 구강암이라고 했다.
바로 수술을 받았고 오른쪽 볼 안쪽을 완전히 절제해서 말을 20 일 동안 못했다. 수술을 할 때도 하이드록시우레아 때문에 지혈이 안되서 너무 힘들었다. 과다 출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2~3분이면 지혈될 것도 3~4시간이 걸렸다. 이비인후과 교수님도 수술할 때 피가 안 멎을까봐 혈액도 충분히 준비하고, 많은 준비를 했다고 했다. 수술 받은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햄버거를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입이 완전히 안 벌어진다.
사실 구강에 궤양이 생겼을 때 주치의가 하이드록시우레아의 부작용일 거라고 했다. 그런데도 별다른 대안이 없어 하이드록시우레아와 아나그렐리드를 처방 받았다. 결국 약제 부작용으로 구강암에 걸리고, 큰 수술까지 받고 나니 또 다른 약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섭다. 부작용이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다른 치료제를 시도할 수 없는 상황이 슬프고 억울하기도 했다.
일상 생활에서 불편함도 있다. 하이드록시우레아로 치료받는 환자들은 치과를 가더라도 열흘 전부터 약을 끊어야 해서 아플 때 마음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 또 일상 생활에서 칼에 베일 수도 있는데, 이 때도 피가 잘 안 멎어 1~2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지혈만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나는 부작용을 감내하고 치료를 지속하고 있고, 다행히도 질병의 진행 속도가 늦은 편이다. 다른 환우들 만나보면 하이드록시우레아로 내성이 생겨서 치료를 못하는 환자도 있고, 임산부라 아예 치료를 시도할 수 없는 환자도 있다.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베스레미라는 신약으로 치료해야 하는데 이 약의 치료비가 너무 비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도 나중에 하이드록시우레아와 아나그렐리드로 더 이상 치료가 안 되면 이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공포스러웠다.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 부작용을 알면서도 계속 치료를 지속한 이유가 있나? 또 부작용으로 구강암이 나타났을 때는 심정이 어땠는가?
하이드록시우레아를 대체할 약이 없는지 주치의에게 물었는데, 베스레미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약이 비급여라 치료비가 매우 비쌌다. 새로운 치료제가 나왔는데 비싼 치료비 때문에 치료받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아이들이 치료비를 주겠다고도 했지만 내 병 때문에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의사들도 하이드록시우레아의 부작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처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걸 알지만 막상 그 부작용을 직접 겪게 되니 너무 괴로웠다. 병원에서 하이드록시우레아 부작용 관리를 안 해준 것 같아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교수님에게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더니, 내 건강 상태를 꼼꼼히 살펴봐 주었다. 사실 다른 병원도 알아봤는데, 그 병원에서도 베스레미 처방 말고는 똑같은 처방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포기했다.
-베스레미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병이 완치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일 당장 하이드록시우레아에 내성이 생겨 치료를 못하거나 다른 하이드록시우레아 부작용이 나타날까 두렵다. 연금도 있고 적지만 직장에서 비상근 근무로 급여도 받고 있음에도 베스레미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젊은 환자들은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그 비용이 더 부담스러울 거다.
베스레미가 꼭 필요한 환우들을 위해 빨리 급여가 적용돼서 약제비용에 대한 걱정 없이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작년에 베스레미 급여 신청이 반려됐다. 작은 목소리라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혈액암협회에도 베스레미 급여화를 위해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혈액암협회 행사에서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우 가족 대표가 되신 걸로 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한국혈액암협회와 활동 계획 중에 있다. 일단 구역별 환우 가족 모임을 만들고 있다. 수도권 외에도 원주, 전주, 경남 등 각 지역에 환우들이 있는데, 한 번 모이려면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그래서 국회와 가까운 수도권에 사는 환우들이라도 모여서 목소리를 좀 내보려고 한다. 9월에 베스레미 급여 신청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전화상으로 얘기해서 궁금한 점 몇 가지만 물었는데, 9월에 결과가 나올 거라고만 들었다.
-반드시 베스레미 급여가 적용돼야 하는 환자를 꼽자면?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에게 필요하다. 현재 임산부 환자들은 하이드록시우레아를 복용할 수 없다. 베스레미 외에는 대체 약물이 없다. 지난번 환우 모임에 신혼부부가 왔는데, 아내가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자였다. 임신 중이라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를 못하고 있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젊은 사람들이 이런 병으로 힘들어하니까 베스레미의 급여화를 위해 소수의 환자들이라도 함께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올해 9월에는 꼭 긍정적인 소식이 들리면 좋겠다.
-환우분들에게 전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요?
환자들에게는 이런 말씀을 전달하고 싶다. 내가 힘이 닿는 한 베스레미 급여화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동안 희망을 잃지 말고 병마를 이겨내 주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