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법 없는 내 아이, 임상참여 위한 진단 조차 받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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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법 없는 내 아이, 임상참여 위한 진단 조차 받지 못해"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4.06.14 0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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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전공의 안오면 영영 검사 못 받나" 비판
"희소질환 환자의 임상약물 접근권 말하는 것 사치된 상황" 토로 
"환자의 참담함, 정부도 의사, 언론도 똑바로 알아야"
서이슬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가 13일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의료계 집단 휴진 철회 촉구 환자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서이슬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가 13일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의료계 집단 휴진 철회 촉구 환자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13일 국회 정문 앞에는 국내 92개 환자단체가 모여 의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서울대병원을 필두로 전국 상급종합병원들이 이달 18일을 기점으로 휴진에 동참키로 하면서 환자들의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100여명의 환자들이 동참해 환자들의 피해사례를 공유하며 의료계의 파업 철회와 정부의 의료 파업 방지를 위한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이슬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소견을 밝혔다. 

그는 "우리 아이는 희소질환을 앓고 있지만 현 사태에서 치료목적사용승인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약물을 시도해 보려고 하지만 진료를 보기 위한 조직검사 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조직검사를 전공의가 해야 하는데 파업으로 하지 못해 치료의 첫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울분을 드러냈다. 

서 대표의 자녀는 희귀혈관질환인 PROS를 앓고 있다. PROS는 PIK3CA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해 나타나는 질환으로 조직이 너무 많이 자라거나 비정상적인 모양을 갖게 된다. 유병률은 인구 10만명 당 1명 꼴이다.  

피부, 혈관, 뼈 등 유전자 변이가 나타난 조직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피부가 부분부분 변색이 되는 모자이크 현상이 나타나거나, 혈관이 기형적으로 자라는 경우가 많아 일상생활에서 감염 우려도 높은 질환이다. 

서 대표는 "이번 사태가 시작되던 무렵 사는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에 조직검사를 문의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서울의 그 병원에 가서 진행하셔라"였다"면서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사는 저희 환우회 회원들도 모두 어쩔 수 없이 ‘서울의 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어디에서도 이 질환을 흔쾌히 받아주고 케어해주는 곳이 없어서"라고 절박함을 드러냈다. 

의료계 전면 휴진 선언 시점에서 서 대표가 전하는 희귀질환자들의 어려움을 전달하고자 간담회견장에서 서 대표가 발언했던 내용을 지면에 담아 전달한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서이슬입니다. 


저희 아이는 출생 직후, 10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진 희소혈관질환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질환에는 아직까지 완치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써볼 수 있는 약물이 있고, 아직 임상 중인 약물이라 현재 한국에서는 식약처의 ‘치료목적사용승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 약물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약물에 대한 ‘치료목적사용승인’을 시도하는 병원이 국내 단 한 곳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올해, 저희 아이도 이 치료목적사용승인을 시도해보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시도하려면 그 전에 조직검사를 먼저 시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6월에 들어선 지금까지, 유전자검사를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4월에서 5월로, 그리고 다시 8월로, 조직검사 일정이 밀렸습니다. 조직검사라는 게 그동안 전공의가 맡아온 영역이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 큰 병원에서 전공의가 없으면 희소질환 환자의 조직검사를 진행하지 못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별 도리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약물에 관한 한, 국내 단 한 곳의 병원, 단 두 명의 의사만이 치료목적사용승인 신청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가 시작되던 무렵, 제가 사는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에 조직검사를 문의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서울의 그 병원에 가서 진행하셔라’였습니다. 희귀질환 진단기관으로 지정되었다고 광고하는 곳인데도 그랬습니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사는 저희 환우회 회원들도 모두 어쩔 수 없이 ‘서울의 그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이 질환을 흔쾌히 받아주고 케어해주는 곳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전공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저희 아이는 영영 조직검사를 못 하게 되는 걸까요? 매일 출혈이 생겨 거즈를 갈아야 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원인 불명의 감염에 시달리며, 남들과 다르게 생긴 발과 다리 때문에 매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내야 하는 저희 아이는 지금 이 사태로 임상시험 약물을 시도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에도 미처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rare disease, 즉 희소질환이라는 말의 번역어로 공식적으로 쓰는 ‘희귀질환’이라는 말을 몹시 싫어하고 안 쓰는데요. 한자어로 ‘희귀’라는 말은 ‘드물고 귀하다’라는 말인데, 정말 ‘귀’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이 같은 희소질환자들은, 평상시에도 의료현장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차피 못 고치는 병이니 병원 더 오지 말라고 말하는 의사에게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의학정보 업데이트도 안 되어 있어서 직접 해외 자료 번역해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물며 지금 같은 국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당장 저희를 보십시오. 무슨 시술이나 치료는 커녕, 그 앞 단계에 불과한 조직검사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런 국면에서도, 저희 같은 희소질환자들은 뭐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저희는 적어도, 당장 생명이 위험해지는 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당장 더 급한 사람들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들이 있다는 걸 아는데, 조금 불편하고 아프고 힘들다고 말하기 염치없습니다. 저희는 어차피 못 고치는 병이니까요. 어차피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니까요. 

여기 기자님들 많이 계신데, 환자 피해 상황 많이들 물어보시죠? 저희는 이것도 피해라고 생각하지만, 감히 어디 가서 피해라고 말 못합니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분들이 있는데, 희소질환자의 삶의 질 문제나 임상약물 접근권 같은 문제는 그야말로 사치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여러 희소질환 환자들을 대표해, 이렇게라도 말해야겠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로 얼마나 괴롭고 참담한 일인지, 정부도, 의사도, 언론도, 똑바로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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