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터지는 손과 발, 그래도 생을 위해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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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터지는 손과 발, 그래도 생을 위해 집을 나선다"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10.04 0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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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짊어진 나의 병 '손발바닥농포증'…"인간관계, 그런거 신경도 못써요"
70대 손발바닥 농포증 환자, "치료제, 비용 부담 너무 높아" 한숨

"병원에 갈 때마다 치료제 나왔는데 왜 안 되냐고, 놔 달라고 하소연해요. 너무 힘들다고. 선생님도 매번 같은 이야기 들으니 힘드시겠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제가 정말 너무 힘드니까..."

손발바닥농포증을 앓고 있는 70대 환자와 뉴스더보이스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환자의 요청으로 얼굴과 이름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손발바닥농포증을 앓고 있는 70대 환자와 뉴스더보이스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환자의 요청으로 얼굴과 이름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손발바닥농포증.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의 손과 발에는 고름이 잡힌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선의 고름 크기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농포가 손과 발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그 크기나 깊이는 우리가 아는 상식을 벗어난다. 상상이 안 된다면 고름으로 발바닥 두 쪽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군대에서 행군하다 물집이 터진 발로 고생했던 남성이라면 환자들의 상태가 대략 상상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환자들의 상태는 이 정도를 뛰어넘는다.

손발바닥농포증의 발병 원인은 면역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건선의 한 종류에 속하며 건선이 온 몸에 나타나는 것과 달리 손과 발이라는 특정 부위에만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2022년 기준 국내 환자는 1만 명을 조금 넘어선 정도다. 손과 발이라는 부위가 신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지 못해 아쉽게도 산정특례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앞서 건선은 2022년 산정특례 대상에 포함돼 환자의 본인부담 비율이 10%로 낮아진 상태다.

반면 손발바닥농포증 환자들의 치료 부담은 60%대로 질환에 적응증을 가진 생물학적제제를 투여하기 위해서는 1년 동안 600만원 정도의 약제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환자들의 증상은 완화와 악화를 반복한다. 완화의 시기에는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악화시기에는 일상생활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진다. 고름이 사라지고 딱지가 앉는 완화의 시기에도 환자들의 생활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자리에 남겨진 상흔으로 인해 원치 않는 오해를 받게 되기도 하며, '피부가 안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질환의 특성으로 인해 환자들은 극도로 외부와 접촉을 꺼린다. 자신이 '손발바닥 농포증 환자'인 것을 밝히는 것도 터부시된다.

이런 가운데 뉴스더보이스가 오랜 시간을 기다려 용기를 내어준 환자 A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올해로 25년 동안 손발바닥농포증과 함께 버텨온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환자들이 경험하는 증상과 사회인으로 겪는 고통, 치료에 대한 한계점 등을 들어봤다.

A씨는 용인시에 거주하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며, 40년을 넘게 치열하게 살아온 사회인이다. 바지런한 A씨가 지금까지 질병과 함께 고단한 삶을 버텨온 데에는 그의 소중한 '딸'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려운 자리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 본인의 병이 손발바닥 농포증이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되었나?

딸아이의 나이 기준으로 기억하고 있다. 딸아이가 8살 때 알게 되었는데 이제 33살이 되었으니, 약 25년가량 된 것 같다.

발바닥에 무언가 도장 같이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더덕더덕 각질이 붙고, 딱딱해졌다. 이를 떼었더니 피부가 무좀같이 하얗게 일어나더라. 계속 무좀약을 발랐지만 낫지 않고 오히려 점점 퍼지고, 통증이 생겼다. 친정 식구들은 피부에 뭐가 약간 나도 난리가 날 정도로 건강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었다. 건선이든 농포증이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약국에 가서 아무리 설명하고 호소해도, 약사들도 습진인지 무좀인지 건선인지 모르더라. 그렇게 계속 자가 치료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당시 집에서 가까웠던 서울아산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피부 조직검사를 받은 후 에야 손발바닥 농포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치료과정이 궁금하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여러 가지 연고제를 처방받았다. 치료받는 과정에서 병변이 발바닥에서 손으로, 급기야 머리와 얼굴, 꼬리뼈 부위에까지 번졌다. 병원을 다니는 중인데도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심해질 때도 있었고, 얼굴에 번질 때에는 너무 막막했다. 당시엔 의사에게 다른 치료법을 문의해도 돌아오는 답은 거의 같아서, 크게 좌절하고 결국 치료를 포기했다.

손에 병변이 나타나니 손으로 무언가를 만질 수도 없었다, 심할 때는 손을 펼 수조차 없었다.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보니, 남자양말이나 덧버선을 겹겹이 신어 발 피부가 찢어지지 않게 붙잡아준 후 큰 슬리퍼를 신고 정말 조금씩 살살 움직여야 겨우 걸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딸아이가 환우들의 모임을 찾아내 참여해 볼 것을 권했다. 환우모임(한국건선협회)에서 자세한 정보들을 듣고 소통하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어떻게 치료하고 있는지?

지금은 집 근처에 있는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물학적제제를 약 두 번 투약 받았다. 처음엔 피부과 의사들도 생물학적제제를 바로 처방해 주지 않았다. 먹는 약을 3개월 처방 받았는데, 먹다 보니 까먹거나 놓쳐서 4개월이 되고서야 다 먹었다. 이렇게 먹는 약까지 다 먹은 후 생물학적제제를 건강보험급여 적용 받아 50% 본인부담금을 내고 쓸 수 있게 됐다.

생물학적제제는 한 달 또는 두 달 주기로 치료받으면 돼서 편리했다. 무엇보다도 집에 돌아와 손빨래를 하는 등 거친 일을 해도 증상이 심해지지 않을 정도로 증상이 완화되어 일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수시로 보습제를 바르며 손톱이나 피부에 변화가 없는 지 또는 통증은 없는 지 살피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편히 가지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려 노력하고 있다.

-진료해 준 전문의들은 질환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주었나?

연고제도 바르고 약도 먹고 열심히 치료했는데도 차도가 없어 의사에게 호소하면 ‘손발바닥농포증은 희귀한데다 쉽게 낫지 않는 병’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생물학적제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처방을 요청하니, 안된다고 했다. 왜냐고 하니 나는 생물학적제제 산정특례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생물학적제제는 몇 년간 계속 맞아야 하는데 산정특례 대상이 아니면 비용 부담이 훨씬 크다.

-20년을 넘게 투병했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생활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손과 발에 찢어지는 듯 한 통증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걷지를 못했고, 손에 물을 묻힐 수도 없었다. 아이를 키워야 했기에, 그리고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하숙집을 운영하느라 면장갑에 고무장갑까지 끼고 아픈 것을 참아가며 매일을 버텼다. 겨울철이면 건조해져서 증상이 더 심해지는데, 갈라지고 피나서 실외에서든 실내에서든 일회용 장갑을 끼어야 했다.

사람을 대면해야 할 때에도 너무도 힘들었다. 집안 행사로 식구들을 만나야 할 때면 "피부가 왜 그래?"라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가까운 이들의 이해를 받지 못할 땐 외로웠다. 얼굴에 증상이 나타났을 때에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손을 보이거나 만져야 할 때가 너무도 싫었고, 지금도 싫다.

손에 딱지가 질 때면 딱지가 진대로, 연고제를 발라서 번들거리고 미끌거릴 때면 또 그런대로 불편했다. 악수를 하고 난 후 상대방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닦거나 피하는 것을 보게 되면 더 위축됐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을 나중에 듣게 되면 너무도 속상했다.

-가장 효과가 있었던 치료법이 있었는지?

내가 생각하기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었다.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은 증상을 나아지게 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 부작용으로 점점 몸을 망가뜨렸다. 더모베이트 같은 바르는 약을 쓰면 피부가 건조해지는데 가끔 이 건조함 때문에 피부가 찢어지기도 했다. 먹는 약을 장기간 복용하니, 피부가 터질 듯 몸이 퉁퉁 붓고, 조금만 부딪혀도 멍이 너무 쉽게 드는 부작용이 생겼다. 심지어 가족이 얼굴 주변을 슬쩍 건드리기만 했는데도 멍이 시퍼렇게 들어버리는 바람에 가정불화로 오해를 받을 뻔 한 적도 있다. 보습제 바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보습제를 바르는 것만으로는 증상이 나아지질 않았다.

주사제(생물학적제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증상이 나아지는 데 도움을 주었다. 주변 환자들도 피부가 화상으로 데인 것처럼 증상이 심했다가 생물학적제제를 쓰고 깨끗해진 경우들이 있다. 이제야 살 것 같다고들 이야기하더라.

손발바닥농포증을 앓고 있는 70대 환자와 뉴스더보이스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환자의 요청으로 얼굴과 이름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손발바닥농포증을 앓고 있는 70대 환자와 뉴스더보이스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환자의 요청으로 얼굴과 이름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손발바닥농포증 환자들을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손발바닥 농포증이 희귀해서 진단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습진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손발바닥농포증은 중증건선과 달리 산정특례 대상에 해당되지도 않아 생물학적제제를 쓰기 어렵다. 그런데 생물학적제제는 몇 년에 걸쳐 주사를 맞아야해서 치료비용이 너무 부담이 된다.

지금은 증상이 호전돼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평생 일을 하고 살아왔다. 이 병으로 일을 자주 못하게 됐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다. 지금은 감사하게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지만 악화가 오면 사정 이야기를 하고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 지금은 내가 벌어 약값을 내지만 일손을 오래 놓게 된다면 약값 걱정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손발바닥농포증에 대한 산정특례가 인정돼서 생물학적제제 치료에 대한 비용 부담이 줄어들고, 치료비를 벌며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나이에 이런 병을 앓고 돈을 벌어 치료비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책을 펼 때)환자들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딸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아이의 영어선생님이 아이를 통해 "딸을 잘 두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슈퍼마켓에서 선생을 마주했을 때 들었던 말이었는데, 나중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영어수업 발표 때 "엄마가 병 때문에 힘들어하니 자기가 피부과 의사가 돼서 고쳐주겠다"고 발표했다고 하더라.

아이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한참을 울었다. 지금은 그 아이가 연구원이 됐다. 아이 뒷바라지를 병 때문에 제대로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씩씩하게 자기 길을 잘 가더라. 엄마가 여행을 잘 못 간 걸 생각해서 여행도 같이 가자고 자주 권한다. 이런 딸에게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의 어린시절, 예뻤던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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