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서 시작되는 쫑알쫑알  
상태바
눈 뜨면서 시작되는 쫑알쫑알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11.28 0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보다 기상이 빠른 날이면 아이는 곧장 엄마 방으로 달려와 어젯밤에 꾼 꿈이야기를 들려주기 바쁘다. 잠에서 막 깬 엄마가 비몽사몽하는 사이 아이는 옆에 딱하니 달라붙어 "있잖아, 내가 방금 꿈을 꿨는데..."하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최근에는 키가 크는 시기인지 무서운 꿈을 자주 꾸는데, 울면서 방에 쫓아와 자신이 왜 울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엄마는 몸과 마음이 아직 수면에서 채 나오기도 전이라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없는데 아이는 이런 엄마를 보며 "내가 이렇게 무서워하면 달래줘야지"하면서 엄마를 꾸중한다. 

듣고 있다는 답변을 들려줘도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 내 야이기 들어봐"하면서 방금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재생한다. 아이가 지치지 않고 이야기하는 통에 엄마는 침대에 누운 채로 수다 테러를 당한다.  

즐겁고 재미난 꿈을 꾼 날은 수다의 강도가 더 쎄진다. 우울하고 침울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재미있는 꿈을 꾼 날에는 엄마의 즉각적인 반응을 더 원하기 때문에 나는 반쯤 눈을 감은 채로 "재미있었겠네" 또는 "정말 신났겠다"고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그렇게 아이는 폭풍 수다로 아침을 연다. 엄마가 침대에서 누워있다가 스트레칭을 하고 세수하러 욕실을 들러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가는 사이에도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자신이 왜 이렇게 즐겁고 혹은 슬픈지를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아침을 차려주고 나서도 아이의 수다는 입 속에 뭔가 들어갈 때를 빼곤 지속적으로 말을 뱉어내기 바쁘다. 눈 앞에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아이의 수다가 지속되는 날에는 진심을 다해 아이에게 엄마의 사정을 말한다. 

"유진아, 엄마 귀에서 피 날 것 같아."

아이는 엄마의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하지만 진심을 다해 피곤함을 전하는 엄마의 사정을 헤아려 줄 줄도 안다. 아주 잠깐의 삐침을 동반하고서. 

엄마가 골이 아프다는 제스쳐를 취하기 전에 아이는 "칫"이라며 기분 상한 티를 낸 뒤 마론인형을 찾아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마론인형은 반응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는 질문과 답을 순차적으로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

사실 유진이의 수다 테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 부러워했던 '말이 빠르다'는 것은 곧 엄마와의 상호작용이 원활했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아이는 두어살부터 말을 곧 잘 하기 시작했으니 엄마의 고행은 이때부터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세살 정도까지는 의미없이 하는 말들을 흘려 들어도 아이와 내가 서로 감정 상할 일은 없었는데 네살이 되고부터는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엄마가 잘 들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추가되면서 엄마의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됐다. 

다섯살이 되고서는 풍부해진 표현력이 보태지면서 엄마에게 자세하게 무엇을 말했는지 확인하는 작업까지 추가됐다. "그래서 어떻게 됐게?" 또는 "그게 무슨 색이었게?"라는 추궁에 가까운 질문을 퍼붓는 통에 엄마는 아이의 수다에 옴찍달싹할 수 없다. 

더 특이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단어, 단어로 끊어 따라하게 하는 못된 습관도 생겼다는 것이다. 

유진이는 어느새 아빠의 허리춤에 닿을 정도로 키가 자랐다. 키와 몸무게 모두 또래보다 작았던 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폭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유진이는 어느새 아빠의 허리춤에 닿을 정도로 키가 자랐다. 키와 몸무게 모두 또래보다 작았던 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폭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엄마, 따라해봐. 시크릿 쥬쥬, 왜, 날, 좋아해?"
"시크릿 쥬쥬, 왜, 날, 좋아해?"
"하츄핑, 마법을, 보여줘라."
"하츄핑, 마법을, 보여줘라."
 "응. 바로 그거야."

아이는 이렇게 몇 차례 자신이 하는 말을 따라하는 엄마를 확인하고 나서야 만족한 듯 다른 일(놀이)를 하러 떠난다. 만약 엄마가 자신이 하는 말을 제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응징에 가까운 떼씀의 테러가 2차전으로 시작된다. 엄마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이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라하지만 어느 새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유진아, 근데. 왜 자꾸 말을 따라하게 해?"
"응? 그건 왜 물어? 재미있잖아."
 
아이는 이렇게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매 순간 엄마에게 확인시켜준다. 
수다떠는 기쁨을 알게된 유진아, 엄마는 하루 30분 수다면 족해. 너는 말 두 시간 하면서 엄마에겐 고작 말 따라하는 걸로 끝내는 거야? 엄마의 폭풍 잔소리도 좀 들어주라. 응?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