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싫어. 싫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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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싫어. 싫단 말이야"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4.03.06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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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5살을 생각보다 무난히 넘긴 탓일까. 아이는 6살이라는 마의 고비를 일단 '부정의 표현'으로 가득 채우며 엄마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있다. 수명이 하루하루 단축되는 느낌이지만 40여년을 살아온 경험을 총동원하여 인내의 끈을 붙잡고 있기는 하다. 그렇게 믿고 있다.

한번은 가까운 지인 가족과 지방에서 만남을 약속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날따라 늦잠을 잔 아이에게 씻고 나와 아침을 먹으라는 이야기를 해두고 못다 챙긴 짐을 싸느라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아이는 인형놀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거실과 주방, 다용도실과 욕실을 오고가며 아이의 주변을 지나칠 때 마다 고장난 사이렌처럼 경고음을 날렸지만 허사였다. 그 모습에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성숙한 성인이기에 화를 누르며 아이에게 다시 한 번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유진아. 우리 30분 있으면 나가야 해. 어서 씻고, 밥 먹어."

엄마의 다급한 마음과 달리 유진이는 마저 하던 인형 놀이를 계속했다. 짐을 챙기다 갈아입을 옷을 꺼내 놓으려 거실로 나오니 유진이는 여전히 인형놀이 삼매경이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온 유진이는 "오줌 싸고, 세수하고 나와"라는 엄마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거울을 바라보며 찡그린 얼굴을 했다.

일단 수돗물을 튼 소리가 나오자 아이를 뒤로 하고마저 가방을 싸고 옷을 입고 차 키와 간단히 먹을 간식을 챙기러 거실로 나온 나는 화가 머리를 뚫고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는 엄마의 다급함과 달리 여유를 부리며 물놀이에 빠져 있었다.

세면대에 한 가득 채워진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는 거친 폭포수와 같은 수돗물을 맞으며 이리 뒤뚱 저리 뒤뚱 거리고 있었다. 곧 다가올 자신의 처지와 닮은 오리를 보고 유진이는 신나했다.

검은 기를 뿜으며 팔짱을 낀 채 뒤에 서 있는 엄마에게 "이것 봐, 오리가 춤을 추지? 진짜 웃기지?"라며 반사된 거울을 보며 웃어댔다. "이제 정말 엄마는 못 기다리겠어"라며 아이 목에 수건을 두르자 아이는 수건을 빼내기 위해 허우적댔다.

유진이는 애석하게도 엄마를 닮아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놀아서 지체된 시간 때문에 씻김을 당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방어자세를 취했지만 허사였다.

"유진아. 진짜 늦었어. 이번 한번만 엄마가 빨리 씻길게."

말릴 틈도 없이 엄마의 재빠른 손놀림에 세수를 당한 유진이는 분에 찬 눈빛으로 씩씩대기 시작했다. 엄마는 재빨리 욕실에서 아이를 끌고 나와 거실에 펼쳐진 옷 앞에 세웠다.

"로션 바르고, 옷 입자."

이미 성이 날 때로 난 유진이와 다급함에 속이 타는 엄마의 신경전은 옷 입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한층 고조됐다.

아이가 옷을 쉽게 입을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선 엄마는 일단 잠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번에도 재빠른 엄마의 손놀림에 무방비 상태가 되자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 상태가 됐다.

울먹이는 유진이는 엄마의 코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옷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일보 후퇴. 엄마가 고집을 부려 지금 입힌 옷을 고수하면 전쟁이 시작된다. 눈을 질끈 감고 아이가 원하는 옷을 물었다.

치마를 입고 싶다는 요구에 치랭스(치마와 레깅스가 한 벌로 붙은 하의)를 입히고, 좋아하던 회색 비즈가 달린 티셔츠도 싫다고 해서 분홍색 토끼가 있는 티로 갈아입히니 그나마 기분이 풀린 유진이는 다시 겉옷으로 엄마를 시험대에 올렸다.

체크 잠바는 너무 더울 것 같아서 싫고, 코트는 무거워서 싫고, 얇은 오리털 잠바는 지금 입은 옷과 매칭이 안될 것 같고, 점퍼는 왠지 오늘 입을 기분이 아니어서 못 입겠다는 것이다. 엄마는 대꾸할 기력도 없어 점퍼를 들고 일어섰다. 신발장에서는 신발이 문제였다.

새로 산 운동화는 오늘의 코디와 맞지 않아 신기 싫고, 분홍색 운동화는 지저분해져서 싫었다. 그렇다고 단화를 신자니 추울 것 같고, 반짝이는 구두만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뛰어놀 공간으로 가기 때문에 운동화를 신고 가야한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마, 싫어. 싫다고. 내가 지금 계속 싫다고 하잖아. 왜 엄마는 엄마 맘대로 해!"

올 것이 왔다. 유진이는 겨우 참았던 울음을 나가기 직전 터트리고 말았다. 서러움이 폭발했다. 한이 맺힌 듯 저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음이 올라왔다.

엄마는 아이의 울음을 보며 미안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는데, 약속도 중요해서인지 눈은 시계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출발 시간을 10분 넘긴 시간. 운전을 빨리 한다고 해도 울고 있는 유진이를 달래서 차에 태워 가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을 직감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아이는 자신이 우는데 전화기를 보는 엄마가 싫어 더 큰 울음으로 자신의 기분을 알아달라고 표현했다.

레몬에이드를 좋아하는 유진이. 결국 유진이는 탄산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엄마가 커피 마실 때 자신은 레몬에이드를 주문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레몬에이드를 좋아하는 유진이. 결국 유진이는 탄산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엄마가 커피 마실 때 자신은 레몬에이드를 주문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엄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자로 지인에게 상황을 전했다.

"딸과 대치 중. 30분 정도 늦을 듯"

문자를 보내고 유진이를 안았다.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가 미안해"

일단 사과가 나왔다.

"그래도 오늘 정아(가명)랑 만나기로 약속한 날인데 유진이가 준비를 안 해서 시간을 맞추지 못한 건 유진이가 잘못한 거야."

아이는 엄마가 달래주지 않고 사실을 말하니 왠지 억울해 졌다.

"유진아. 다음번에 친구랑 만나기로 약속하면 제 시간에 나갈 수 있게 준비하자. 응?"

유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물은 계속 나왔다.

아이를 안고 울음이 그치길 기다렸다. 아이는 곧 기분이 풀렸는지 길게 울지 않고 사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차에 타면 주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차에 타서 내비를 찍으니 왠일인지 약속된 시간을 대충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지인에게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려 전화를 봤더니 아까 보낸 문자에 답문이 도착해 있었다.

"여기도 전쟁 중. 천천히 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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