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 미워"를 듣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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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엄마, 미워"를 듣던 날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05.1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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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울어대던 유진이는 튀김우동을 게눈 감추듯 흡입했다. 
한참을 울어대던 유진이는 튀김우동을 게눈 감추듯 흡입했다. 

항상 "엄마는 내편"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유진이에게 최근 다섯살 인생 최대 사건이 일어났다. 엄마에게도 심히 충격으로 다가웠던 이번 일을 우리 가족은 '미워 사건'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일화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어린이의 황금시즌. 5월 5일과 연휴를 맞이해 유진이도 엄마가 짜놓은 계획대로 멋진 일정들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국립농업박물관-북한산 브런치-에버랜드로 이어지는 3일 간의 일정이 장마와 같았던 비로 인해 차질을 빚게 되기 전까지. 첫 일정부터 어그러지는 것이 안타까운 엄마와 달리 유진이는 단골집 마냥 찾아가는 '공룡나라(국립과천과학관)'를 가자며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비오는 어린이 날. 차라리 비가 와서 차는 덜 막힐 것이라고 생각해 찾았던 과천과학관은 '드넓은 실내 전시실'이라는 이점으로 인해 오히려 인파로 아침부터 북적이고 있었다. 주차부터 전시실 티켓 끊기까지 긴 줄을 서야 했던 엄마는 아침부터 살짝 골이 났지만, 유진이는 보고 싶었던 공룡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상태였다. 

아이는 티겟을 끊기 무섭게 엄마 손을 이끌고 자연과학실로 향했다. 마침 하늘을 날고 있던 프테라노돈이 유진이를 반겼다. 아이는 "엄마, 프테라노돈이 날고 있어. 나를 보려고 날고 있나봐"라며 한껏 신이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마침 프테라노돈이 날고 있어서 좋네." 보고 싶었던 공룡들을 다시 보게 된 유진이는 여유롭게 전시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다 흥미가 떨어졌는지 "공룡은 이제 됐어"라며 엄마의 손을 잡고는 커다란 지구본이 있는 전시실로 향했다. 

의자로 빙 둘러진 전시실에는 마침 유진이 또래 아이 서너명이 부모들과 함께 쉴겸 놀겸 앉아 있었다. 낯을 가리지 않는 유진이는 또래 아이 중 한 사내 아이에게 다가가더니 "안녕, 나는 유진이야. 만나서 반가워. 같이 놀까"라며 친한 척을 해댔다. 아이는 유진이의 친근함이 쑥쓰러운듯 대꾸도 않고 눈만 몇번 꿈벅이더니 이내 자신의 부모에게 뛰어가 등 뒤로 숨었다. 유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놀자"하면서 사내아이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도 싫지는 않은 지 유진이와 장난감 이야기를 하더니 자신의 자동차를 보여주며 변신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바닥에 앉아 장난감을 이리저리 가지고 노니 주변 아이들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유진이는 아이들에게 "이거 정말 멋지지"하며 자신의 장난감인 듯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여느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금새 친해진 아이들은 서로 장난감 이야기와 최근 읽은 책 이야기, 갑자기 든 생각 등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며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서로의 이야기와 장난감에 빠져 어울리던 아이들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아이가 유진이의 손에 있던 장난감을 뺏더니 유진이를 밀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그 장면을 놓쳤고, 유진이가 남자아이의 팔을 때리는 모습만을 목격하게 됐다. 

"유진아, 친구를 때리면 안돼."
엄마의 화난 얼굴과 단호한 목소리에 놀란 유진이는 금새 억울한 표정이 되어 울먹이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잘못한 거 아니야. 쟤가 장난감 뺏으려고 했단 말이야."
"친구가 장난감 뺏으려고 하면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 돼지. 왜 친구를 때려. 친구 때리는 건 안되는 거야. 친구한테 때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해."
엄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진이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주변에 다른 부모들도 아이가 우니 "괜찮아. 울지마"하며 유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엄마가 안아주면 왠만해서는 울음을 그치던 유진이는 이날 따라 이상하리만치 더 크게 울어댔다. 유진이의 울음이 길어지자 주변 부모들과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처음 같이 놀던 사내아이는 유진이에게 "이거 너 줄께"하고는 자신의 장난감 중 하나를 유진이 손에 쥐어주고는 손인사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한참을 울다 진정된 유진이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장난감을 발견하더니 "엄마, 미워"라며 다시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때 뭔가를 놓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유진아, 엄마가 유진이 혼내서 마음이 많이 슬퍼서 우는거야?"
"아니야. 친구가 장난감 뺏었단 말이야"
"..."
"내가 (장난감 주인에게)장난감 돌려 주려고 했는데 뺏어서 안줬단 말이야."
"아, 친구 돌려주려고 했는데 다른 친구가 유진이한테 장난감 뺏어서 그랬던 거였구나. 엄마가 몰랐네. 미안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우아앙"

사건의 전말을 전한 유진이는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엄마의 사과를 들어도 서운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던 유진이는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덕분에 15kg이 넘게 나가는 다섯살 딸내미를 위로하기 위해 엄마는 전시장 이곳 저곳을 극기훈련하듯 아이를 안은 상태로 이동해야 했다. 

점심시간을 즈음해서 기분이 풀린 유진이는 우동이 먹고 싶다며 엄마를 식당으로 끌고 갔다.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 유진이는 전시장 이곳저곳을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녔다. 오후 2시를 넘어서면서 지칠지대로 지친 엄마의 회유가 시작됐다. "유진아, 오후에도 재미있게 놀려면 낮잠을 좀 자야할 것 같은데?"
완강히 거부하던 유진이는 이동을 위해 차에 태우자 이내 잠이 들었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밉다"는 표현을 들은 엄마 역시 운전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못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을 유진이도 알아챈 걸까. 평소 잠꼬대를 하지 않는 유진이가 웅얼웅얼하며 엄마를 계속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까는 미웠지만 그래도 사랑해요."

너무 명확한 발음이어서 잠이 깼나 싶어 룸미러로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는 분명 깊은 잠에 든 모습이었다. 

"그래. 아까 엄마가 유진이 이야기도 안듣고 화부터 내서 미안해."

꿈에서도 들을 수 있게 힘주어 말을 전하니 잠결에도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유진이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워하는 감정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전한 날이 하필이면 가장 기분이 좋아야 할 어린이날이어서 엄마는 두고두고 너에게 미안해 할 것 같다. 그런데, 너는 아마 잊어버리겠지? 그래 그러면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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