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는 새해를 맞아 "한 살 더 먹었으니, 이제 6살이야"라는 엄마의 말에 싫은 기색을 내보이고 있다.
아이는 자신의 나이가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 보다 '스스로 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진 상황'을 영 마뜩잖아 하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자신이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과 동의어가 됐음을 절감하는 눈치다.
매일 아침이면 등원 전 옷을 갈아 입혀주던 엄마가 어느새 "이제는 6살이니 스스로 해야 할 것은 해야 해"라는 말을 하면서 옷을 꺼내 놓고 입혀주지 않는 것도 싫고, 밥을 먹지 않아도 달래가며 입 안에 먹을 것을 넣어주던 것도 사라져 아쉽기만 하다.
엄마가 설정해 놓은 조건들도 영 불편한 눈치다. 시간을 말하고 무언가를 해 놓으라고 하는데, 정작 엄마가 말한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를 뿐더러 뭔가 다그치는 상황이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일상이 조금씩 불편해지는 아이는 어느 날 작정하고 엄마에게 하소연 하듯 입을 열었다.
"엄마, 난 여전히 유진이야. 엄마의 소중한 아기라고."
엄마가 그 말을 듣고 빤히 쳐다보자 아이는 잠시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맞아. 엄마한테 유진이는 언제나 아가야. 하지만 나이는 하나를 더 먹었지. 그러니까 이제 스스로 해야 할 것이 조금 더 늘어나는 거야."
기대했던 답을 듯지 못한 유진이는 금새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아기인데 왜 그렇게 해야 해?!"
"유진이는 나이를 많이 먹어도 엄마에게 언제나 아기일꺼야.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유진이는 한 살 더 먹어서 6살이 됐어. 조금 더 자랐으니 조금 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야."
"엄마, 난 엄마의 아기라니까!"
아이는 한참을 억울한 듯 울어댔다. 그러다 진정이 되고 나서 엄마의 얼굴을 보더니 다시 자신의 의견을 폈다.
"엄마. 나 6살이 싫어. 그냥 5살 하고 싶어."
"왜 그런 생각이 들어."
"난 그냥 어린 게 좋아. 아가인 것도 좋고."
"옷도 엄마가 입혀주고, 밥도 먹여주고 그래서?"
"응. 바로 그거야!"
결국 떼를 써도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한 유진이는 스스로 옷을 입고, 씻고, 먹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엄마의 염원과는 달리 아주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가끔은 속을 태우기도 한다. 아침마다 보채는 엄마에게 유진이는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라며 오히려 역정을 낸다.
어린이집에 가서도 선생님에게 "엄마가 화를 자주 낸다"는 말을 전했는지 간만에 하원 마중을 간 엄마에게 선생님은 "요즘 말을 잘 안듣는 때이긴 해요"라며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어린이집에 행사가 많아 등원 시간을 조금씩 앞당겨 데려다 주고 있는데 아침 잠까지 슬슬 늘어 엄마의 조바심은 아침마다 극을 달리고 있다.
엄마의 재촉에도 아이는 여유를 부리며 씻고, 밥을 먹고 , 옷을 갈아입는다. 그 사이 엄마는 100미터 달리기 경주를 하듯 출근준비와 집안 정리를 해댄다.
이쯤이면 다 입었겠지 하고 뒤를 돌아보면 반쯤 옷을 갈아입다만 상태로 다른 놀이를 하고 있거나 옷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엄마의 재촉이 시작되면 유진이는 "잘 하고 있는데 화내면 안돼"라며 엄중한 경고를 날리기도 한다.
어제는 잠 자리에 누운 유진이가 엄마에게 할 말이 있다며 귀를 얼굴에 가까이 하라고 하더니 이렇게 속삭였다.
"엄마, 옷 빨리 갈이입는 거 힘들어. 팔이 잘 안들어가. 엄마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안돼?"
아이의 말에 엄마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올 겨울 들어서며 아이는 아침 잠이 많아져 평소 기상 시간인 7시 30반을 훌쩍 넘겨 일어난다. 등원 시간도 앞당겨져서 아이가 준비해야 할 시간은 많이 줄어들었는데 엄마는 그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아이에게 왜 빨리 준비하지 않느냐고 닥달만 한 것이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유진이는 미안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 내가 옷을 잘 못 갈아입어도 엄마의 아가인거지?"
"그럼."
"그러면 됐어. 엄마 사랑해."
간만에 유진이는 엄마의 토닥거리는 손길 속에서 잠이 들었다.
"유진아. 이렇게 자기 밖에 생각 못하는 모자란 엄마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엄마도 우리딸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