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 백혈병환우회 공동대표 "지정헌혈·조혈모세포 기증 부족 여전히 숙제“
"2004년 진단을 받았을 때도 혈액이 부족해 가족들이 백방으로 헌혈자를 찾아 다녔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환자들이 직접 수혈할 헌혈자(지정 헌혈)를 찾아야 하는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조혈모세포 기증자 부족도 여전한 숙제다.”
백혈병환자에서 자원봉사자로 그리고 이제는 백혈병환우회 대표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이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공동대표에게 지난 20년은 기쁨과 슬픔이 스펙트럼처럼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완치 이후 사회 복귀를 위해 몸풀기 차원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은 어느새 사무처장이라는 이름에서 공동대표로 바뀌게 됐다.
공동대표 선임을 기념하며 가진 뉴스더보이스와 인터뷰에서 소감을 피력해 달라는 요청에 “지난 시간 동안 백혈병 환자 치료를 위한 제도들이 크게 변화되지 못한 부분을 큰 무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고백했다. 대표라는 자리의 무게도 “생각했던 것 보다 부담이 크다”면서 “그 무게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어깨를 누르는 숙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지정 헌혈과 저조한 조혈모세포 기증에 있다.
지정헌혈이란 의료기관이 환자나 보호자에게 직접 수술에 필요한 혈액을 구해오라고 요청해 지정된 지원자에게서 헌혈을 받는 것을 말한다. 백혈병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면 출혈 위험을 겪는데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때문에 그 동안 백혈병환자와 그 가족들은 제도적 뒷받침 없이 직접 헌혈자를 구해야 했었다. 백혈병환우회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장기 농성을 거쳐 '혈소판 사전예약제'라는 결실을 얻었지만 최근 헌혈량이 급감하며 다시 지정헌혈이 부활하게 됐다.
이은영 공동대표는 “혈액 부족 문제가 수년째 이어 지면서 지정헌혈 문제가 다시금 떠오르게 됐다”면서 “조혈모세포 이식 역시 기증자 부족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올해 안에 캠페인을 추진해 다시금 인식을 제고하려 한다”고 말했다.
관련해 환우회는 채혈장비가 설치돼 있지 않은 헌혈의집·헌혈카페에 채혈장비를 설치해 기기 당 하루 혈소판 성분헌혈 3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정부 측에 제시한 상태다.
백혈병환우회의 최대 현안은 또 있다. 바로 의료계의 파업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를 계기로 시작된 전공의 파업은 이제 교수들의 파업 동참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은영 공동대표는 “아직까지는 환자들의 피해사례가 심각한 경우는 없어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환자들의 치료 시기가 4주 단위로 돌아오기 때문에 이제부터 중요한 시점이다. 예의주시하며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목소리가 낳은 결실 ‘글리벡과 킴리아’
세계 최초의 표적치료제 글리벡의 국내 도입을 위해 시작됐던 백혈병환우회 활동은 이제 세계 최초의 CAR-T치료제 킴리아가 국내 보험시장에 진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은영 공동대표는 “지난해 환우회 창립 20주년 행사 제목을 ‘글리벡에서 킴리아까지’라고 정한 것도 우리의 시작이 치료제 도입을 위한 것에서부터 시작돼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서 “아직도 혈액암 안에서 치료제 접근성이 떨어지는 암종들이 있다. 이들에게 약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백혈병환우회는 이은영 공동대표 선임으로 대표간 역할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안기종 공동대표는 대관업무에, 이은영 공동대표는 대외업무에 중점을 두면서 각자의 역할을 해나기로 했다.
환우회 운영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보다 건실한 미래를 꿈꾼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안기종 대표님이 환자 보호자였고, 나는 환자였다. 백혈병환우회는 이렇게 환자와 보호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다”면서 “단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전문가도 영입하고 사람들이 더 모여서 환자와 그 가족들이 일하고 싶은 단체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 역시 환자일 때 환우회를 만나 자원봉사를 하면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하늘나라’로 가버린 이들을 보면서 절망도 했지만 일하는 만큼 변화하는 환경을 보며 더 열중해야 하는 이유도 찾았다.
킴리아 투여를 기다리다 끝내 하늘나라로 가버린 은찬이 어머니와 최근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한 어머니는 그에게 오히려 위로를 건넸다. 나쁜 운은 자신들이 가져갈 테니 좋은 운을 가지고 환자들을 위해 일해 달라고.
이은영 공동대표는 “환자들이 우리를 보며 기운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환자들의 치료 여정에서 좋은 결과를 얻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현장에서 제도가 바뀌어 환자들이 혜택을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견해도 듣고 싶었다. 이에 대해 이은영 공동대표는 “획기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끼는 정도는 없는 것 같다”면서 “눈에 띄었던 신속등재 역시 결실을 맺으려면 먼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은영 공동대표는 백혈병환우회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백혈병혈액암포럼 개최 의지를 밝혔다.
그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만들지 못했지만 치료제와 치료행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논의를 전문가를 모시고 이야기하며 우리의 전문성을 높이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