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만큼 중요한 암환자 심리지원, 다학제·지역사회 연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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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만큼 중요한 암환자 심리지원, 다학제·지역사회 연계 필요"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1.07.0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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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올캔코리아, 암관리 사각지대 해소 모색 정책토론
유은승 교수 "암 전주기 정신건강 선별검사·상담 제도화해야"
이은영 위원 "암치료병원·보건소 연계형 서비스 고려할 만"

암은 오랜기간 사람들 사이에서 '죽음과 고통'의 대명사였다. 2018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인 25명 중 1명이 암환자이고, 기대수명(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이 37.4%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이 고통의 대명사는 우리 삶의 지근거리에서 배회하고 있거나 이미 생활 속에 와 있다.

암은 치료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획기적인 신약들의 출현으로 치료성적이 과거보다 향상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암은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암환자와 가족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 바로 '디스트레스(distress)' 문제도 심각하다.

디스트레스는 신체적, 감정적 문제를 가져오는 스트레스를 말하는데, 유은승 교수(고려사이버대학 상담심리학과)에 의하면 암환자의 임상적으로 유의한 수준의 디스트레스는 35~44%에 달한다. 또 임상적 수준의 우울 및 불안 유병률은 일반인의 2~3배, 불면증 유병률은 30~60%나 된다. 암환자 5명 중 1명이 자살성향을 갖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일반인보다 2배 더 높은 수치다.

이런 심리적 고통은 진단부터 치료, 치료이후 사회복귀까지 전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은영 올캔코리아 위원(백혈병환우회 사무처장)은 암환자 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79.4%가 '정신적, 심리적 충격이 컸다'고 답했고, 경제적인 문제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심리적 문제를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치료과정에서도 '심리적 어려움'은 '신체적 고통'보다 더 암환자를 힘들게 했고, 이 때문인 지 치료 일환으로 '심리상담'에 대한 요구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제3차 암관리종합계획에 암 생존자에 대한 통합지지관련 사업을 포함시켰다. 중앙과 권역센터를 연계한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도 시범운영 중이다. 하지만 갈증은 해갈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연구단체는 '존엄한 삶을 위한 웰다잉 연구회(대표위원 김상훈·인재근, 연구책임위원 서영석)와 올캔코리아가 7월1일 암환자 심리지원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마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최 측은 이날 토론회 제목을 '암관리 사각지대 체크포인트: 암환자 심리에서 길을 찾다'로 정했다. 발표자들과 패널토론자들은 암환자의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각자의 고민과 해법을 제시했다. 

유은승 교수는 '암환자의 심리적 어려움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유 교수는 암환자 심리지원을 위한 과제로 정부와 민간이 주도할 수 있는 사업들을 각각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정부 주도의 심리적 지원으로는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 필수인력에 정신건강전문가를 포함시키고, 진단부터 치료 이후까지 전주기로 디스트레스, 우울 등 정신건강 선별 검사와 상담서비스를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심리지원 제도를 암환자 뿐 아니라 가족까지 확대하고, 지역사회 관련 사업과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국립암센터, 국립정신건강센터, 관련 전문학회 등이 협력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민간주도로는 안전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자조모임 매뉴얼 개발 등 지역사회 표준적 심리지원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은영 위원은 '암환자 입자에서 심리적지지 필요성 및 정책 제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위원은 "미국은 1990년 한 의사가 Navigator서비스(환자 안내자 서비스)를 개발한 이후 2005년부터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25개 지역 사회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통한 간호사, 사회복지사, 지역사회 보건 종사자, 암생존자 등에 대한 교육과 훈련, 암 치료 전 과정에서 암 환자 케어, 병원치료 외에 암 환자 치료에 필요한 도움 제공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 위원은 또 "영국은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이 2004년 개발한 4단계 모델을 운영중이다. 이를 통해 심리/정신관련 전문가를 4단계로 분류해 단계에 따라 전문성을 차등화하고, 각 단계별 전문가가 환자에게 심리문제를 해결할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증인 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표준화된 가이드라인도 배포했다"고 했다.

이 위원은 정책제안으로는 ‘지역사회서비스사업’에 암환자심리상담지원서비스 신설, ‘지역사회 통합건강증진사업’ 사업영역에 암환자심리상담지원서비스 신설 및 보건소를 통한 프로그램 관리 또는 운영, 암치료병원과 지역사회 통합건강증진사업을 수행하는 보건소와 연계 지원 등을 언급했다.

고영건 교수(고대 심리학부, 한국임상심리학회 회장), 박정원 의료사회복지사(삼성서울병원), 박인근 교수(가천대길병원 종양내과), 장윤정 부장(국립암센터 암관리정책부), 양선아 기자(한겨레신문), 한상균 과장(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등 패널토론자들은 발제자들의 제안에 지지를 보내고 의견을 보탰다.

고영건 교수는 "암 환자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더 이상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도 언제든지 문제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의 영역까지 확대하게 되면 암환자들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도울 것인가,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가지 제도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건강규약이라는 측면, 교육 측면을 간과하면 안 된다. 암환자에 대한 심리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건강규약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심리적 교육이 병행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정원 의료사회복지사는 "암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전 과정에 다 개입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최소한 어떤 단계에서 개입할 것인지 병원마다 프로토콜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심리지원서비스에 전문가적인 자질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암환자를 케어할 정신건강전문가에게 '암'에 대한 교육이나 트레이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와 연계도 중요하다"고 했다.

박인근 교수는 "의사는 객관적으로 정보를 판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진료실은 치료위주여서 심리적 문제를 다 살펴보긴 어렵다.  환자의 불안, 우울증 등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지 파악은 하는데 환자들이 가기 싫어해 진입장벽도 높다"고 했다. 이어 "처음에는 다학제적인 치료와 진단이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보험수가가 없이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 서비스 제공 뿐만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개입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정신과 및 심리상담에 대한 캠페인, 가족에 대한 진료, 감정적인 심리를 진단하고 외래나 조기에 발견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장윤정 부장은 "암환자 심리적 지지를 위해서는 전문가적 접근 뿐만 아니라 암환자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멘토링 체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암환자들이 외부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도 있지만 내가 다른 환자를 도움으로써 본인도 극복되고, 도움 받는 환자도 심리적 문제가 병적인 문제가 아니라 극복돼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게 전문적이지 않고 자생적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앞으로 지역사회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체계 안에서 구축되면 환자와 가족이 스스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양선아 기자는 암치료를 받은 경험부터 이야기했다. 양 기자는 "암 환자로서, 기자로서 암치료과정의 경험을 바탕을 얘기하고 싶다. (치료를 받았던 지난) 1년 6개월을 뒤돌아본다면, 진단을 받고 명확한 치료계획이 잡히기 전까지 심리적 공포감이 가장 컸다. 이 시기에 환자는 혼자 고립돼 있다. 직업이 기자이여서 이런 불안과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 암관련 책을 찾아보고 유방암을 극복한 환자나 의료전문가들을 찾아가 얘기를 듣곤했다. 현실은 이런 네트워크 활용도가 낮은 사람이 많다"고 했다.

양 기자는 이어 "암환자 치료에서는 심리적 치료가 중요하다. 암치료 프로토콜에 심리나 스트레스에 대한 검사를 넣고 중증도에 따라 적절한 치료 개입 필요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서비스사업에 암환자심리상담지원서비스 신설을 제안했는데 매우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비대면 상담도 고려해봄직하다. 암환자 가족을 위한 심리지원도 잘 설계되면 좋겠다"고 했다. 
 
한상균 과장은 "암환자 심리지지사업은 복지부도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 방향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또 "암환자 심리지지사업을 다른 사업과 연계하고, 다학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방향에 대해서 전문가와 협의하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개발해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정유석 교수(단국대의대 가정의학과)는 "오늘 우리의 노력이 탁상공론이 되지 않고 환자를 위한 정책 변화로 이어지려면 다학제진료팀(처음부터 여러 암과 관련한 심리상담사, 전문치료 의사들이 같이 함께 모여하는 진료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암환자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라면 사회적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 같다. 암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는 심리지원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고, 이를 프로토콜에 반영해 암환자가 거부감 없이 상담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게 해주는 게 미래를 앞당기는 실질적인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정 교수의 언급처럼 의미있는 이날 토론의 내용들을 '네이게이터'인 정부가 어떻게 정책과 제도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우리사회의 암치료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이 한 단계 더 끌어올려질 것으로 보인다. 활 시위는 당겨졌다.

*(편집자) 기사작성에 도움을 주신 올캔코리아 유혜승 님, 손영주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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