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전담의를 비참하게 만드는 한마디 "오늘도 놀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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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센터 전담의를 비참하게 만드는 한마디 "오늘도 놀았겠네"
  • 이창진 기자
  • 승인 2023.11.13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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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학회 박찬용 이사장, 생사 오가는 외상 중환자 지킨 밤샘 노력 '허탈'   
국고 인건비 지원 독으로 작용 "전담의 이탈 심각, 제도개선·보상책 시급"  

"외상센터 전담전문의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외상 중환자를 보며 날밤을 꼬박 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도 놀았겠네'라는 말을 들을 때 씁쓸하고 비참한 기분이 듭니다."

외상학회 박찬용 이사장은 뉴스더보이스와 만나 외상센터 현실과 개선방안을 설명했다.
외상학회 박찬용 이사장은 뉴스더보이스와 만나 외상센터 현실과 개선방안을 설명했다.

대한외상학회 박찬용 이사장은 최근 [뉴스더보이스]와 만나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전문의를 바라보는 의료계와 사회적 편견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외상외과 전문의 인력은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2011년 86명 배출을 시작으로 2012년 48명, 2013년 11명, 2014년 27명, 2015년 40명, 2016년 16명, 2017년 23명, 2018년 21명, 2019년 18명, 2020년 6명, 2021년 15명, 2022년 24명 그리고 2023년 16명 등 351명이 외상전문의를 취득했다.

외상학 세부전문의로 명칭을 변경하고 외과계 외에도 응급의학과, 영상의학과(인터벤션), 마취통증의학과 등으로 문호를 개방해 활성화를 꾀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특이점은 외상외과 전문의들의 쏠림이다.

전국 17개 권역외상센터 중 수도권에 4개 센터(아주대병원, 길병원, 의정부성모병원, 국립중앙의료원)가 있다. 하지만 전국 외상외과 전문의 중 절반에 가까운 45.3%가 수도권에 근무하는 인력 쏠림이 상당하다.

지방 권역외상센터 의료진 이탈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박찬용 이사장(서울대병원 외상외과 교수)은 "외상외과는 기피과로 불리는 외과 분야에서도 3D에 해당한다. 외상센터 초기 젊은 의사들이 중증 외상환자를 살리고 예방 가능 외상 사망률 개선에 일조하겠다는 열정과 각오로 외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외상은 기피 분야가 됐고 필수의료 개선 정책에서 소외받는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장은 "다수의 외상센터가 인력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외과와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전담전문의 각 1명인 최소 요건을 갖추는데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부족한 인력에도 1년 365일 24시간 운영이라는 정책에 사명감 하나로 노동 과부하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외상 전문의 351명 배출, 감소세…외상센터 4곳 포함 수도권 45% 근무, 쏠림 '심각' 

아이러니 하게도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은 2011년 35.2%에서 2019년 15.7%로 향상되어 정부가 목표했던 2020년 20.0%를 초과 달성했다.

권역외상센터는 보건복지부가 의료진에게 인건비를 지원하는 유일한 사업으로 외상전담의 1명 당 1.35억원(세전)이다.

외상 전문의 배출 현황과 지역별 근무 분포.
외상 전문의 배출 현황과 지역별 근무 분포.

일각에서는 정부에서 인건비 지원도 받는데 인력을 더 뽑아 편안하게 근무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박 이사장은 "이미 기피현상이 시작된 외상 분야에 지원자가 없어 1명 뽑기도 어렵고 인력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강 건너 불보는 듯한 이야기이다. 외상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만족감이나 성취감도 좋지만 워라벨을 우선시하는 요즘 근무시간에 대한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적정인력 확보 전까지 과부하 상태인 전담전문의들에게 최소한 상응하는 보상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지부 인건비 지원은 초기 효과를 봤지만 지금은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상센터를 운영하는 상당수 병원은 별도 지원을 꺼리고 있다. 외상센터가 아닌 근무환경과 처우가 좋은 대학병원과 중소병원으로 외상 전문의들이 눈을 돌리는 이유이다. 외상 전문의들이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 성과에 후진 기어가 들어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부는 지난 7월 박민수 제2차관 주재 필수의료 의견수렴 차원에서 외상학회와 간담회를 가졌지만 개선된 사항은 없다.

당시 외상학회 측은 외상 전담의들이 빠져나가지 않고 유입될 수 있도록 처우개선 요구와 함께 중증외상 분야를 상급종합병원 평가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 그리고 외상환자 이송과 전원을 위한 컨트롤타워 필요성 등을 제언했다.

박찬용 이사장은 "외상센터는 업무 특성상 사람이 부족하다고 사람 수만큼 근무시간을 정할 수 없다. 업무 강도와 야근, 주말 및 공휴일까지 커버하면서 자리를 지키며 외상환자를 소생시키면서 느끼는 만족감만으론 안 된다. 외상 전담의들이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고 새로운 인력이 유입될 수 있도록 정부가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상 현장 간과한 시각 "국고 지원이면 충분하다는 착각, 처우 좋은 병원으로 이직"

외상 전문의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현장을 간과한 시각이다.

지난 10월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최근 5년간 수술과 진료를 한 건도 안한 권역외상센터 전문의들을 지적하며 대책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박 이사장은 "최근 CT 등 영상장비 발전과 진단이 정밀해져 과거와 같이 '진단이 애매하니까 수술해서 확인해보자'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외과와 흉부외과는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생사를 넘나드는 외상 중환자를 보며 밤을 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순히 수술 한 건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 상황을 모르는 분들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도 놀았겠네'라고 여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하고 비참한 기분이 든다"고 허탈감을 표했다.

박찬용 이사장은 외상 전문의 인력 유입을 위한 제도개선과 보상책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찬용 이사장은 외상 전문의 인력 유입을 위한 제도개선과 보상책 필요성을 강조했다.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에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수술 건수가 없는 센터장 등 전담전문의 경우, 초기 소생술 및 중환자실 전담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외상센터 내부에서 충분히 합의된 사항이면 이해된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국비 지원을 쉽게 얻기 위해 발생했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라며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이 이상한 시선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민폐를 끼칠 수 있으므로 외상센터 센터장과 병원은 잘 살펴봐야 한다. 필요하다면 복지부에서 개입해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외상 분야 의료전달체계 구축 필요성도 개진했다.

박 이사장은 "올해 2월과 5월 대구와 용인에서 발생한 중증 외상환자의 안타까운 사례는 현재 진행형이다. 권역외상센터가 커버할 수 있는 중증 외상환자가 50%에 이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역외상센터 등 낮은 단계의 센터 개념을 구축해 중증외상 통합 거버넌스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실시간 중증 외상환자를 진료 가능한 자원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종합 상황실 개념의 기구가 필요하다. 응급실에서 외상환자를 보는 전문의들에게 외상전문처치술 교육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고 미국과 같이 전공의 수련교육에 외상 분야를 이수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상환자 수술로 돈을 벌기 위해 권역외상센터를 지정한 것은 아니다. 복지부가 전담전문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이유도 중증 외상 치료가 얼마만큼 힘들고 중요한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상 전담전문의들이 빠져 나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중장년 전문의들이 밤샘을 지속하고 있다. 저녁 있는 삶과 주말이 있는 삶은 외상 전담전문의들에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오는 12월 이사장직 임기를 마무리하는 박찬용 이사장은 "외상 전문의들 내부에서 권역외상센터에 바보들만 남아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국고 지원이면 충분하다는 정부와 병원의 착각 속에서 외상 전담전문의들은 오늘도 외상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젊은 의사들이 외면한 외상 분야를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외상센터 전담전문의들이 더 이상 자괴감을 느끼지 않도록 정부와 의료계 관심과 협조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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