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복지부 "병상억제 맹탕규제 헛웃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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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복지부 "병상억제 맹탕규제 헛웃음 난다"
  • 이창진 기자
  • 승인 2023.08.1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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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개정 이후 분원 개설 억제…수도권·지방 대학병원들 '표정관리' 
병상 확대 방관 복지부 비판 고조 "2027년 전후 중소병원 곡소리 날 것"

보건당국의 뒤늦은 병상 수급 방안을 놓고 의료계 비판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다수의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개설이 확정된 상황에서 병상 억제 방안의 실효성을 상실한 맹탕 규제라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보건의료체계 효율성과 지역완결성 제고를 목표로 제3기 병상수급 기본시책(2023~2027)을 발표했다.

복지부가 8일 발표한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놓고 의료계 비판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박민수 차관 브리핑 모습.
복지부가 8일 발표한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놓고 의료계 비판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박민수 차관 브리핑 모습.

골자는 의료법에 명시된 병상관리체계 구축과 의료기관 신규 개설 절차 강화이다.

핵심인 의료기관 신규 개설은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을 초점으로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 신증설 시 시도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사전 심의 승인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분원의 의료기관 개설 시 복지부장관 사전 승인을 명시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한다.

우리나라 병상 수는 2021년 기준 인구 천 명당 12.8개로 OECD 평균 43.개의 2.9배에 달한다.

복지부는 병상 확장이 지속될 경우 2027년 약 10만 5천병상(일반병상 및 요양병원) 과잉공급을 예측했다. 과잉 병상은 불필요한 의료이용 유발과 국민 의료비 상승 주원인이다.

박민수 2차관은 "병상 과잉 공급 현상이 지속되면 보건의료체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병상의 체계적 관리와 동시에 무분별한 병상 증가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 등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지자체 및 의료계와 협조해 적정 병상 공급을 통해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로 개선될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다음날(9일) 환영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협회는 "무분별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방지와 적정 병상 수급 구축을 위해 정부에서 직접 병상수급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번 기본시책에 의료기관 신규 개설 절차 강화 방안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법과 제도 정비가 신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료계 병상수급 방안 냉담 "분원 확정 수도권 대학병원 규제 무용지물"

하지만 의료계 반응은 차갑다.

병상수급 대책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병상 확대 원인으로 지목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들은 해당 지자체와 분원 개설허가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개원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연세대의료원, 서울아산병원, 가천대 길병원, 인하대병원, 경희대병원, 아주대의료원, 고려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등은 서울과 인천, 경기 해당지역 지자체 승인 하에 600~700병상 분원 설립을 사실상 확정지은 상황이다.

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종합병원과 수도권 상급병원 분원 사전 심의를 강화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종합병원과 수도권 상급병원 분원 사전 심의를 강화할 예정이다.

병상 억제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 발의와 국회 본회의 통과는 계획일 뿐 단정하긴 어렵다.

설사, 개정 의료법이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더라도 이미 진행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분원 개설 과정에 규제력이 없다.

복지부 오상윤 의료자원정책과장은 병상수급 발표 후 전문기자협의회와 간담회에서 "개설 허가 단계를 맨 앞으로 바꾸려면 의료법 개정이 필요한데 이미 병원 개설이 진행된 곳까지 소급 적용하기는 어렵다"면서 "행정적 절차와 문서상 절차 단계에 있는 병원은 개설 허가 먼저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 떠난 뒤 손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규정은 있지만 방관해온 복지부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료법 제60조(병상 수급계획 수립)는 '복지부장관은 병상의 합리적인 공급과 배치에 관한 기본시책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2010년 3월 복지부와 지자체 세부역할과 협조를 담은 '병상 수급계획 수립 및 조정에 관한 규칙'도 마련했다.

■대학병원과 지자체 분원 설립 방관 "사전허가 방안 떠 돈지 언제데 이제 와서" 

복지부는 그동안 상급종합병원 자체 병상 확장 억제에만 집중해왔다.

메르스 사태 이후 상급종합병원에서 1병상이라도 증설할 경우 복지부장관 승인이 필요하다.  감염병 음압병상 및 중환자실 등 복지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만 병상 증설이 가능하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은 복지부를 비웃 듯 분원으로 눈을 돌렸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이 대학병원 유치를 내걸고 업무협약과 개설 허가를 이어가는 동안 복지부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의료계는 대학병원 분원 붐을 경고하면서 조속한 병상 대책을 요구했지만 복지부는 검토로 일관했다.

병상수급 방안 중장기 대책 모식도.
병상수급 방안 중장기 대책 모식도.

고려대 안암병원 박종훈 교수는 SNS를 통해 "왜 우리 정부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장기플랜이 없을까. 아니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현장 의료인이 인지하는 장기플랜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가만 보니 그때그때 강제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머리 써가며 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내년부터 수도권 일대 대학병원이 300병상 이상 분원을 내려면 중앙정부 허가를 받으라는 건데 이런 기획안이 떠 돈지가 언제부터인데 이제 와서 문제되니 간단히 결정해 버린다"며 "이런 식으로 눈치 보며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지르면 되니 제도가 발전할 수 있나"라고 복지부의 안이한 행태를 질타했다.

대학병원들은 표정 관리 중이다.

분원 개설을 확정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과 병상수급 억제 방안에서 제외된 지방 상급종합병원은 복지부 발표에 태연하다.

중소병원협회 임원은 "복지부 병상수급 대책을 보고 헛웃음이 났다. 오랜 시간 대학병원 분원 억제 필요성을 개진했을 때 듣고만 있던 복지부가 눈앞에 닥치니 병상을 억제하겠다고 한다. 분원 개설을 확정한 대학병원은 그대로 둔 것이 무슨 병상수급 대책인가"라고 반문하고 "다수의 분원이 개원하는 2027년 전후 중소 의료기관에 곡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서 대학병원 분원 개설 이후 다음 타깃은 고령화와 노인 돌봄에 겨냥한 요양병원과 재활의료기관 개원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대병원과 아주대병원 등은 현재 재활의료기관과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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