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전문가, 누가 의료정책을 이따위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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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전문가, 누가 의료정책을 이따위로 만들었을까"
  • 이창진 기자
  • 승인 2023.08.11 0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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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 부천병원 이은혜 교수, 보건제도 민낯과 불편한 현실 담은 책자 발간
전문가 존중하지 않은 복지부…"의사집단 이중성 부추겨 국민 주머니 약탈 방치"  

대학병원 임상의사가 보건의료 제도 민낯과 의료현장 불편한 현실을 담은 책을 펴내 화제이다.

전문가를 존중하지 않아 발생하는 의료생태계 갈등과 이를 방임하는 보건복지부를 향해 발칙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은혜 교수.
이은혜 교수.

순천향대 부천병원 영상의학과 이은혜 교수는 신간 '건강보험이 아프다'(부제:환자를 통해서 보는 보건복지제도, 펴낸 곳:북앤피풀)를 발간했다.

유방영상 전문가인 이은혜 교수는 경북의대 졸업 후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수련을 거쳐 순천향대 부천병원 QI실장과 사무처장 직무대리, 영상의학회 수련간사와 품질관리간사를 역임했다.

그는 국가암검진 질관리사업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의료정책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늦깎이 학생이 되어 연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책은 ▲건강보험 건강한가 ▲누구를 위한 건강보험인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환자의료체계 재정립 ▲너도 나도 전문가 ▲국가암검진 질 향상 ▲노인 문제 ▲코로나19 방역 유감 ▲쓸데없는 오지랖 등 총 512페이지로 구성됐다.

책 표지에 '도대체 누가 의료정책을 이따위로 만들었을까'라는 문구를 표기한 것을 보면 이은혜 교수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다.

기자는 '너도 나도 전문가' 영역에 담긴 '전문가를 존중하지 않은 사회'를 주목했다.

글은 2021년 가을 유두분비물로 내원한 40대 후반 여자환자 이야기로 시작한다.

환자는 외과의원을 방문해 유방초음파검사에서 물혹이 있다고 하여 초음파 유도하 조직검사를 받았고, 조직검사 후 조직검사 바늘에 물혹이 찔려 터졌다.

물혹은 없어졌지만 유두 분비물이 계속 나와 재방문해 초음파검사를 다시 시행했고 별다른 이상소견을 발견하지 못했다.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해 유선조영술 특수검사가 필요하다고 대학병원에 의뢰했다.

이 교수가 초음파검사를 해보니 물혹은 없어졌지만 유두 아래쪽 유관이 늘어나 있었고 유관 내 작은 결절이 하나 보였다. 병변의 위치와 특성을 고려할 때 병변이 유두 분비물의 직접적 원인으로 생각됐고 초음파검사에서 명확하게 잘 보였으므로 유선조영술을 시행할 필요는 없었다.

환자는 유관 내 유두종으로 진단되어 절제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후 최종 진단도 양성 유두종이었고, 그 후 혈성 유두 분비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은혜 교수는 "만약, 처음에 초음파검사가 제대로 시행되었다면 즉 환자 의뢰체계에 의해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의사에게 의뢰되었다면 한 번의 초음파검사와 한 번의 조직검사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환자가 소모한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도 덜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거의 매일 이런 환자를 만난다"며 "이런 사례가 일상이 된 이유는 우리나라가 행위별수가제를 채택하면서 무한방임을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화두를 꺼냈다.

이 교수는 "환자의뢰체계가 없으므로 자가의뢰가 자유롭고, 의사에 대한 질관리를 하지 않으므로 본인의 전문과목에 상관없이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위험하지 않으면서 돈이 되는 행위에 눈독을 들이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음파검사이다. 그 결과 건강보험 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소모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외과와 산부인과 의사도 유방초음파검사를 많이 하다보면 실력이 늘 수 있다. 그러나 유방촬영검사와 초음파검사를 연결에서 판단하는 능력이 없고, 영상을 해석하는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발점(전공의 수련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필자처럼 20년 동안 유방초음파검사를 하는 의사와 수술하고 환자를 보면서 곁들이로 유방초음파검사를 하는 의사는 검사의 내용과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전문가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국민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제대로 수련 받고 실력이 검증된 의사에게 적정수가를 지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에게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저수가를 고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입장에서 분명한 사실은 후자가 압도적으로 일하기 편하다는 것과 힘들게 일하나 대충 일하나 월급은 동일하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인과 공무원, 사대부 의식에 사로잡혀 "건강보험 시혜적 제도로 생각”

전문성 존중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은혜 교수가 발간한 '건강보험이 아프다' 책자 표지 모습.
이은혜 교수가 발간한 '건강보험이 아프다' 책자 표지 모습.

그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듯이 전문가도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가 떨어질 확률과 비전문가가 떨어질 확률은 절대로 동일하지 않다.  의료보장 국가에서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고하려면 전문가 영역을 인정함과 동시에 질관리를 계속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자신이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전문가를 중인으로 취급하고, 국민을 백성으로 취급한다"며 "그들은 건강보험을 시혜적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건강보험 근간은 수직적인 시혜나 구휼이 아니라 수평적인 사회연대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성리학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공무원들은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고 질관리와 이용관리에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의사들의 이중적 태도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한의사 초음파검사 행위에 대해 각을 세우지만 정작 본인들은 영상의학과 전문영역을 무시한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방사선사나 간호사에게 시키는 경우도 많다. 이는 현행법 위반"이라며 "꼭 필요한 검사만 하고, 이를 제대로 해야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결국 전문가를 존중하지 않는 건강보험 정책이 의사집단의 이중성을 부추겨 국민의 주머니에서 돈을 약탈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필자의 주장은 초음파검사가 영상의학과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초음파검사는 제2의 청진기라 불릴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사자에 따라 진료보수 차등이 있어야 하고, 모든 검사자는 반드시 질관리를 받아야 한다"며 "국민을 위해 당연한 상식적인 주장 아닌가.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상식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방초음파검사를 하는 의사 역량이 부족해 검사를 하고도 병변을 발견하지 못해서 환자를 고생시키고 불필요하게 의료비를 낭비한 사례를 보았다. 의사와 의사 간에 전문성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서로의 전문성과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그 방법은 제도 개선뿐이다. 복지부는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진료과마다 고유한 전문성을 인정하고 적정수가를 보장해야 한다. 동시에 질관리를 병행해야 한다"며 "의료서비스 이용자에 대해 의료이용을 관리해야 한다. 제도가 바뀌면 국민들이 적응하는데 좀 힘들겠지만 결국은 국민들도 수긍할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은혜 교수는 서문을 통해 "처음에 환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수필 형식으로 쓰려고 했는데 의료정책을 공부하다 보니 이면에 있는 보건의료 정책이나 복지정책의 불합리한 점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며 "독자들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해함으로써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작업에 다 같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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