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피해 리베이트 급여정지...사문화 뒤에도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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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피해 리베이트 급여정지...사문화 뒤에도 'ing'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2.01.10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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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적발사건으로 처분 앞둔 보험의약품 줄줄이
먹던 약 바꿔야 하는 처방, 많게는 수백만건
"환자도, 의사도, 약사도 불편하건만"

[입법 흑역사 시리즈①=리베이트 약제 급여정지(하)]

리베이트 급여정지는 제도도입 7년여만에 사실상 사문화됐지만 '끝판왕'으로서 위력은 건재하다. 해당 제도가 운영됐던 2014년 7월~2018년 3월 사이, 이 약 3년 8개월 동안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적발된 약제는 여전히 급여정지 처분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만간 급여정지 재처분 또는 신규 처분 예정인 보험의약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법적으로 리베이트를 주고 받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피해, 특히 '환자의 건강권 침해와 의사의 처방권 훼손' 우려가 제기돼 사문화 과정을 거친 제도를 이렇게 유지시키는 건 합당한 것일까.

뉴스더보이스는 재처분이 예정돼 있는 A제약사 일부 제품들 사례를 짚어봤다. 먼저 2020년 유비스트 기준으로 약 93억원어치가 처방된 B약제의 해당 연도 처방건수는 326만건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11월 누적 약 72억원, 249만건이 처방됐다.

이 약제가 급여정지 처분을 받아 그 결과로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된다면 의사들은 2020년 기준 연간 300만건 이상의 처방을 바꿔야 한다. 또 그 숫자만큼 환자들도 '비의학적 이유'로 잘 복용해오던 약이 아닌 다른 약을 먹어야 한다. 이렇게 수백만건 이상 처방을 변경해야 하는 약제는 같은 회사에만 적어도 2개 이상이 더 있다.

환자들은 불법적으로 뒷돈을 주고받은 제약사와 의사가 아닌 제3자인 환자가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조직화돼 있지 않아서 그렇지 환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할 경우 정부는 또한번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사들도 처방변경 자체도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환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게 번거롭다. 특히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와 의료기관은 소수인데, 전체 의사와 전체 의료기관이 급여정지 처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심기가 불편하다.

약국도 마찬가지다. 해당 약제에 대한 처방이 나오지 않으면 재고물량을 반품해야 하는데 반품자체에 대한 번거로움은 차치하고, 이미 개봉된 낱알재고의 경우 일정부분 손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약사단체와 약국은 매달 이어지고 있는 약가인하에 따른 재고약 차액정산에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더구나 급여정지 약제보다 더 비싼 약제로 처방이 변경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더 키울 수도 있다.

국회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또다른 입법적 시도를 했지만 무위에 그쳤었다. 첫번째 시도는 적발 1~2회까지는 급여정지 대신 약가인하로 변경한 개정법률의 부칙 시행일을 삭제해 소급 적용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의 입법안이었는데, 20대 국회 회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었다.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인 이용호 의원의 두번째 급여정지 개선 입법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다. 당초 이 의원 개정안은 급여정지 대신 과징금 대체가 가능하도록 한 입법안의 시행일을 개정법률 시행일로 부칙에 명시했었다. 그렇게 하면 개정 법 시행 이후 급여정지 처분부터 과징금 대체가 가능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심사과정에서 '이 법 시행 이후 약사법 제47조제2항의 위반과 관련되는 제41조제1항제2호의 약제부터 적용한다'로 시행일 관련 부칙을 변경했다. 급여정지 과징금 대체 소급적용이 막히게 된 것이다.

무위에 그친 두 번의 개정입법 시도가 국회에서 받아들여졌다면 처분을 해야 하는 보건복지부 뿐 아니라 환자, 의사, 약사까지 '애물단지'로 여기는 급여정지 제도의 호흡기를 뗄 수 있었지만 이렇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반성적 입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 스캔들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는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리베이트 급여정지 사문화 과정의 입법취지를 고려해 처분의 재량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건강보험제도 운영과 관련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자 사회적 합의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도있게 다뤄볼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박성민(서울약대, 법학박사) 변호사(HnL법률사무소)의 히트뉴스 기고글을 일부 인용하면, 박 변호사는 "급여정지 처분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공익은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그것을 통한 강력한 리베이트 억지(抑止) 효과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급여정지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위와 같은 입법적 이익을 강조할 정당성 및 근거가 완전히 또는 상당히 많이 상실됐다. 급여정지 처분을 하더라도 과징금 갈음 요건을 확대해 운용하는 것이 급여정지 제도를 급히 폐지한 입법자의 진정한 의사에 부합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문화된 법률 규정에 근거해 처분을 내려야하는 보건복지부도 심경이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9일 시행에 들어간 개정 건강보험법시행령에서 급여정지 대신 과징금 대체가 가능한 약제 범위를 최근 2년간 청구실적이 있는 약제로 정한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리베이트 급여정지 재처분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법률에 갇혀 없을 수도 있고, 재량에 의해 만들어 질 수도 있는 보건복지부의 선택지는 어떤 게 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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