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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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세상 속으로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10.2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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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장아름(가명)이 좋아. 나를 이해해 주고, 양보도 해주거든."

아이는 요즘 친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하루를 채운다. 아침에 일어나 등원 전까지 그리고 엄마의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까지 친한 친구의 취향과 특징을 하나하나 전달하기에 바쁘다.

옷에 대한 선호도 역시 친한 친구인 아름이의 절대적 영향을 받고 있다. 치마류의 의상을 거부하던 유진이는 최근들어 기꺼이 즐겁게 원피스를 입고, 예쁜 것에 대해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공주공주한' 드레스핏을 선보이는 장아름에 맞추려고 본인에게 필요해 보이는 물품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관심이 없던 마트 신발코너와 아동복 매장을 둘러보는 일이 잦아졌고, 반짝이는 어른들이 보석류와 액세서리에도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나한테 어떤 것 같아?"

쉽게 손이 닿는 액세서리 코너를 지날 때면 반드시 하나 이상의 핀을 들어 머리에 꽂아보고 나서야 떠나는 것을 허락할 정도다.

집에서는 옷장에 있는 드레스나 발레복을 꺼내 입고는 기분 내는 일도 잦아졌다. 선물 받은 어린이용 화장품으로 곱게 치장을 하고는 스스로를 예쁘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화장을 잘 하지 않는 엄마에게는 "왜 엄마는 눈썹만 발라. 입술도 좀 발라"라며 핀잔을 주기까지 한다.

아이의 숨겨져 있던 미적 감각을 깨운데 일조한 장아름은 유진의 패션의 기준이 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엄마가 정한 원칙대로 체육 수업이 있는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편한 옷으로, 엄마가 바쁘지 않은 평일 중 하루 정도(대부분 화요일이나 금요일)는 원피스를 입고 간다는 원칙을 거부하지 않고 잘 따르고 있다.

사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사이에 유진이는 드레스를 사달라고 여간 보채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다섯 살 아이에게 드레스류의 옷이 어린이집에서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를 매번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아이는 조금이나마 수긍을 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게 친한 친구의 영향을 받는 유진이는 같은 반 또래 아이가 저지르는 나쁜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해 엄마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아이는 2학기에 새롭게 합류하게 된 A의 행동을 모방해 같은 반 친구 유리(가명)의 머리를 때리는 일을 몇 차례 하기도 했다.

다행히 유리는 하원 후 만난 나에게 "아줌마, 유진이가 저를 자꾸 때려요"라고 말해 빨리 대처할 수 있었다. 유진이는 처음에는 때린 사실을 부인했지만 A라는 친구가 유진이를 때렸을 때 느낌을 생각해보라고 한 엄마의 말을 듣고는 유리에게 사과하며 다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유리의 엄마 역시 하원 길에 만난 나에게 유진이가 유리의 머리를 때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자식이 친구에게 맞았다는 사실은 엄마의 맘을 아프게도, 화나게도 한다. 유진이 역시 그랬던 경험이 있어 유리의 엄마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한 유리는 "엄마가 유진이랑 놀지 말래요"라는 말로 엄마의 맘 속에 앙금이 여전함을 전해주기도 했다.

유진이는 이렇게 친구라는 세계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친구를 통해 관계 맺기의 시작과 그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배우고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엄마 역시 아이를 통해 인간관계의 단면을 배우고 있다. 아주 단순한 감정의 표현일지라도 솔직함과 진심이 담겨 있는 마음이 전달될 때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 그리고 함께하는 순간에 서로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며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가질 때 친구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는 오늘도 여전히 장아름이 좋아하는 캐릭터 이름을 말하며 스티커를 사서 같이 놀아야 겠다고 말한다. 그래, 엄마도 내일은 친구가 듣고 싶어하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전화로나마 전해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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