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가 부르는 엄마의 '머피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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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가 부르는 엄마의 '머피의 법칙'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04.20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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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는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나간다.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면 손목이 시큰거린다. 하원 후 빗물이 다 마르지 않은 그네를 행복하게 타는 유진이와 그렇지 못한 엄마.  
유진이는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나간다.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면 손목이 시큰거린다. 하원 후 빗물이 다 마르지 않은 그네를 행복하게 타는 유진이와 그렇지 못한 엄마.  

이제는 흘러간 가수가 돼 버린 DJ DOC가 불렀던 유명한 노래가 있다. 제목은 이름하야 '머피의 법칙'.

이 노래 주인공이 하는 일들은 항상 어그러지거나 원치 않았던 방향대로 흘러간다. 그래서 소싯적에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이렇게 운이 없는 날도 있지'하며 흥얼거리던 기억이 있다. 

가사를 조금 소개하자면 노래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친구들과 미팅을 갔었지. 뚱뚱하고 못생긴 애 있길래, 와, 재만 빼고 다른 얘는 다 괜찮아. 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내가 맘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 여자친구이거나 우리 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꼭 동성동본.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

나는 유진이를 키우면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끔 '머피의 법칙'을 경험하곤 한다. 육아기간 내내 나를 괴롭혔던 '잠'과 관련된 부분이 많아 앞으로도 유진이는 계속해서 엄마의 머피의 법칙을 만드는데 기꺼이 동조할 것이라는 불길한 느낌마저 들지만, 뭐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말이라도 해보자. 

일주일 중에 유독 바쁜 날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 내내 오전과 오후 현장 취재가 있어 바쁜 일정을 보내고 마감을 쓰기 위해 저녁을 희생한 대가로 잠이 조금 모자란 육신으로 목요일을 맞이한다. 근데 하필이면 목요일 일정이 가장 야박하다. 오전 취재-점심미팅-오후 인터뷰 -저녁 미팅 순의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날은 또 '죽어라~'하면서 폭풍같이 업무의 소용돌이가 휘몰아 친다. 이동하는 사이사이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무섭게 업무 전화가 들어온다. 또 그 사이 마감의 윤곽을 얼렁뚱땅 머리 속에 그려 놓는다. 

드디어 맞이한 저녁 미팅. 체력은 바닥을 치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데 만난 사람이 반가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다. 육신이 피곤에 절여져 있어 그런지 이런 날은 술도 더 잘들어간다. 

어찌저찌 잡은 택시에 육신을 던져놓고 쪽잠을 자다 깨면 집 앞이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향해 있고 아이가 자는 것을 보고는 대충 씻고 얼기설기로 짜여진 마감을 술김에 쓰다보면 새벽 2시는 가볍게 넘어간다. 

그리고...분명 방금 눈을 감았는데 귓가에 유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아침이야. 해가 떴어. 일어나야지."

유진이는 5살이 되면서 낮잠을 거부하고 있다. 때문에 잠은 오후 9시 이후에 들고 아침엔 대게 7시 반을 전후로 깨어난다. 낮잠을 거부하면서  평상시에는 새벽애 깨는 일도 없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다. 엄마가 깨워야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유진이는 유독 엄마의 피곤이 정점을 찍는 날, 그래서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야하는 날 새벽에 기상하는 '못된 에외'를 만든다. 

오늘도 유진이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엄마를 깨웠다. 나의 이번 주 초는 방금 예시를 들었던 상황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위로를 얻는 것은 어제의 저녁이 예상보다 일찍 끝났고 마감을 치는 둥 마는 둥 하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누웠다는 점이다. 

다섯살이 되기 전에는 잦은 '밤잠깸'으로 엄마를 힘들게 했던 시기가 사라진 자리를 지금은 '이른 기상'으로 되갚고 있다. 

아이는 몸으로 "엄마가 저녁에 늦게 오면 난 새벽에 조금 일찍 일어나 어제 엄마와 못 보낸 시간을 채울꺼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도 조금은 꾀를 내어 변하고 있다. 일상을 무리하지 않기로. 

그래서 최근에는 머리 속에 조그만 쉼표를 되뇌이듯 찍고 있다. 지난해 열심히 달렸으니 올해는 조금 쉬엄쉬엄 가자고. 근 몇 주 사이에는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다음 달 일정을 미리 다 채우지 않고 있다. 요구가 있다면 채우고, 없다면 굳이 채우지 말것. 이렇게 다짐하면서.     

유진이가 주는 머피의 법칙은 잠 말고도 또 있다. 이제는 다섯살이 됐으니 여벌옷을 챙기지 않는데, 왠지 느낌이 싸~해서 챙겨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날은 이상하게도 아이가 실수를 하고야 만다. 마치 "그러게, 꼼꼼이 챙기랬지"라고 말하듯. 

그래서 엄마는 주말이면 꾸역꾸역 풍선같은 가방 만들기를 내내 하다 이제는 그만뒀다.  대신 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할 때 필요한 여벌옷과 장난감, 소풍에 필요한 적절한 소품들을 차에 옵션처럼 한가득 놓아 두었다. 

엄마는 이렇게 유진이가 주는 머피의 법칙을 피하는 기술도 터득해 가고 있다. 

잠과 실수 외에도 자잘한 머피의 법칙이 있지만 혹시 모를 육아일기 소재 고갈을 염려해 소스는 다음에 풀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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