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의 역습과 유전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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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의 역습과 유전의 굴레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07.18 0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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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달아서 그래.”

어린 시절 모기에 잘 물리던 나에게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물린 부위를 한 시도 가만두지 않아 어린 시절 여름이면 내내 팔과 다리를 비롯한 신체 부위에 빨갛게 익은 상흔들이 달마시안 무늬처럼 박혀 있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무렵에는 모기에 심하게 물려 학교를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눈두덩이를 모기가 물어 한참을 긁어대던 통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부어 앞이 안보일 지경이었다. 그 날은 왠일인지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는데, 간지러운데다 눈물까지 흐르니 어린 마음에도 불편해 긁다 울다 하며 하루 종일 울고 지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내 처지가 딱하기도, 안쓰럽기도 한 동시에 당신의 고단함으로 아이 방 앞에 모기향을 피워 두지 못했던 지난밤을 자책하며 울고 있는 딸아이를 안고 자신도 우셨다. 다음 날 아침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쉬운 아빠는 두 눈두덩이가 퉁퉁 부운 모녀를 보고는 “병원 좀 가지”하며 한마디를 던지고 출근을 했다.

엄마는 안과를 가야하나 소아과를 가야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택시를 잡아타고는 집에서 조금 먼 대학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입구 앞에 도착한 나를 보고는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의 신사가 다가와 엄마에게 뭐라 설명을 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방으로 나의 손을 잡고는 이끌고 갔다. 이리저리 눈을 살펴보던 의사는 염증이 심하다며 “엉덩이 주사를 놓아야 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울고 있는 나를 뒤로 하고 엄마에게 주의사항을 전하더니 다시금 “이제 손으로 눈을 긁으면 다시 병원와서 더 아픈 주사를 맞아야 해”라고 엄포를 놨다.

어린 마음에도 주사를 더 맞아야 한다는 공포는 이루 말 할 수 없어 훌쩍이던 나의 울음은 병원이 떠나가라 악을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나는 울고 있는데 엄마와 의사는 웃고 있는 풍경. 그 생소하고 억울한 풍경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엄마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내 눈은 어떻게 됐는지, 주사를 다시 한 번 더 맞았는 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일 이후 나는 상처 부위에 손을 대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하지 않는다.

유진이는 ‘그 엄마의 그 딸‘이라는 수식을 굳이 따라 모기의 주공격 대상이 되곤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와 엄마가 둘이 있을 때 모기의 주 공격 대상이 여전히 엄마라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래서 엄마는 여름에 모기에 잘 물리지만, 모기에 물리는 것 때문에 아이에게 미안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나 인생에 있어서 ‘장담’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이번 여름에도 체험하게 됐다. 유독 이번 여름에는 모기의 출현 빈도가 잦은데 역시나 빈틈을 누리는 예외의 모기들이 있었던 것이다.

분리 수면을 하는 유진이방에는 모기향을 켜둔다. 엄마아빠는 모기향 대신에 선풍기를 약하게 틀어 자연적으로 모기를 물리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엄마는 가끔 모기에 물리긴 하지만 ‘유진이 방으로 갈 모기를 안방으로 유인했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고는 했다. 그런데 최근 유진이는 이틀 간격으로 두 대 씩 모기에 물리고 있다. 처음엔 손에 두 방, 다음엔 얼굴에 두방, 그 다음엔 다리에 두방. 신기할 정도로 신체 부위를 두루 섭렵하는 모기 덕에 유진이의 얼굴과 팔, 다리에는 빨간 상처들이 연속해서 자리를 잡게 됐다.

속이 상해 아이 방문을 닫고는 일부러 모기를 찾아 죽이는 ‘치밀함’까지 선보였으나 어디선가 들어온 신참 모기들은 유진이의 몸 구석구석을 여전히 물어대고 있다. 이 정도되니 인간이 퇴치하지 못하는 지구상 생물 중 바퀴벌레의 뒤를 이을 존재가 모기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튼 유진이는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적거리는 것까지 엄마를 닮아 몸 여기저기 상흔을 굳이 길게 달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긁지 말라 말을 해도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아이는 어느새 몸 여기저기를 긁어대고 있다.

장마가 시작됐다. 엄마 걸음으로 5분 거리인 어린이집. 평소 등원이 20분 정도 소요된다면 유진이가 좋아하는 비가 내리는 장마철인 요즘은 넉넉히 30분을 넘기고 있다. 유진아, 덕분에 엄마 일을 굉장히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게 하고 있어. 뭐 그렇다고. 
장마가 시작됐다. 엄마 걸음으로 5분 거리인 어린이집. 평소 등원이 20분 정도 소요된다면 유진이가 좋아하는 비가 내리는 장마철인 요즘은 넉넉히 30분을 넘기고 있다. 유진아, 덕분에 엄마 일을 굉장히 박진감 넘치게 하고 있어. 뭐 그렇다고. 

아이는 아침마다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모기가 왜 나를 물어”

“피가 달아서 그래.”

“왜 내 피는 달아?”

“엄마 닮아서 그래.”

“엄마는 왜 모기 안 물려?”

“물렸는데, 안 긁어서 괜찮은거야.”

“엄마, 유진이는 근지러. 여기가 빨게 졌어. 밴드 붙여줘”

아이는 가려움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렵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고 싶어서인지 아침마다 자신이 원하는 밴드를 상처 위에 붙이고 등원하고 있다. 가려움이 가라앉는 밴드를 붙여도 소용이 없다. 다 떼어내고 자신이 붙이고 싶은 밴드를 원하는 부위에 붙여야 한다. 알아듣게 설명해도 알아듣지를 않는다.

여름은 아이와 계곡을 갈 수 있어서, 시원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푸른 산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좋지만, 모기라는 옵션을 뗄 수 없어 곤혹스러운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니 모기야. 부탁할게. 이왕지사 이렇게 기승을 부릴 작정이면 나에게 오렴. 나 역시 피가 달거든. 게다가 면적도 넓단다. 편하게 물어주렴. 단, 유진이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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