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효율화 카드 꺼낸 정부…"약가인하 압박 거세져"
"국내제약, 혁신신약 개발·필수원료의약품 생산 집중 강화로 경쟁력 갖춰야"
점차 강도를 높여가는 제네릭 약가 인하 압박 속에서 국내 제약산업이 필수원료의약품 생산망을 강화하거나 혁신 신약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서 주목된다.
보건당국이 약가인하 일변도에서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과 필수의약품 공급 등에 대한 지원방안도 분명히 하고 있어 이를 기회로 삼아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감지되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혁신신약 가치 보상 강화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 기반 마련 지원 △보험약가 지출 효율화 등을 발표하며 신약과 필수원료의약품에 대한 적정가치 보상 기조를 밝힌 바 있다.
이와함께 종전의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에 한정됐던 위험분담제 대상을 삶의 질을 현저히 악화시키는 '중증질환'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관련된 신약 개발에 나선 국내 제약기업에 긍정적 시그널을 보냈다.
국내 제약사들도 정부 지원 확대를 목격하며 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환자의 투여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정맥주사를 피하주사(SC) 또는 알약으로 바뀌는 제형 기술 확보에 나서거나, 기술 기반 개량신약 개발에 총력을 가하는 모양새다.
AI 시대를 맞아 신약 개발에 혁신 기술을 접목해 출시 가능한 신약 개발에 나서는 동향도 짙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대웅제약, 삼진제약, HK이노엔 등이 있다.
기존 신약 개발 프로세스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지름길로 주목받고 있는 AI(인공지능) 활용도가 국내사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HK이노엔은 AI 기반 신약 개발 바이오텍 에이인비와 AI 기술을 활용한 신약 공동개발 관련 업무협약을 맺고 바이오의약품 개발과 항원 발굴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
대웅제약은 AI 전담팀인 'AI신약팀'을 구성해 신약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웅제약은 현재 온코크로스, A2A파마 등 다수 국내·외 AI 신약개발 기업과 협업을 통해 신약개발에 나서고 있다.
삼진제약도 사내 AI 전담부서인 '인 실리코'(in silico)팀을 개설하고 인공지능 전문가를 통한 신약 탐색에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협력사로는 사이클리카, 심플렉스, 온코빅스, 인세리브로 등이 있다. 이들과 공동 연구를 통해 신약 후보 물질 다양화에 나서고 있다.
난치성 면역질환 개발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는 글로벌 제약사의 전유물처럼 남아 있던 영역. 그러나 국내사들이 혁신물질 개발에 성공한 벤처기업, 연구소 등과 손을 잡으며 신약 개발의 시계를 앞당기고 있다.
관련해 보령제약은 신약개발 기업 미림진이 보유한 신규 내인성 선천면역 활성화인자 WARS1을 타깃한 난치성 감염, 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선다.
코로롱제약 역시 신약개발 전문기업 에스트리온과 손잡고 난치성 교모세포종 연구에 돌입했다. 에스트리온에서 개발한 AON-MG23은 암세포 증식에 관여하는 ANO1/EGFR 복합체를 분해해 암을 치료한다.
난치질환과 함께 항암제 개발에 가세하는 국내제약사들도 확대되고 있다. 최근 레고켐바이오, 지놈앤컴퍼니, 앱클론, 신라젠, 와이바이오로직스, 에스티큐브, 파로스아이바이오 등은 세계 3대 암학회로 꼽히는 미국암연구학회(AACR 2024)에 참여해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등 혁신신약 개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필수의약품 국산원료 사용에 대한 약가 가산
수익이 맞지 않은 필수의약품의 지원에도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부는 ▲국산원료를 사용한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한 약가 우대(59.5%->68%) ▲기 등재 국가필수의약품의 원료를 국산으로 교체할 경우 상한금액 인상 ▲원가 상승으로 생산이 어려워진 약제의 신속한 약가인상(소요기간 210일+@ -> 30일+@로 단축) ▲퇴장방지의약품 제조원가 반영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관련업계는 현재의 지원에 대해 폭을 더 넓혀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원료 사용 폭을 필수의약품에 한정하지 말고 영역을 더 확대해야 할 것"이라면서 "추가적인 조세특례 제도, R&D 지원, 시설투자 인센티브 등 원료의약품의 모든 부분을 아우를 수 있는 지원이 있어야 산업 육성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해 미국은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속가능한 바이오경제 실현을 위한 ‘미국 내 바이오 제조 강화를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원료의약품 자급화 준비에 나선 바 있다.
미국 원료의약품혁신센터는 ‘5년 이내에 모든 저분자 원료의약품의 25%를 미국으로 리쇼어링’(해외에 나간 자국기업을 각종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를 통해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 보고서를 발표하며 바이오제조 기업들이 유휴 제조시설을 활용하기 위한 공공 인센티브 프로그램과 제네릭의 경우 자금 부담을 해결할 수 있는 ‘Made in America’ 인센티브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5월 벨기에 정부는 유럽 반도체법과 핵심원자재법과 같이 원료의약품에 대한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핵심의약품법’(Critical Medicines Act) 제정 추진을 유럽연합에 제안했으며, 프랑스도 필수의약품 생산을 자국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추가되는 약가 압박, 지출효율화 방안
정부 정책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신약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국내 제약업계는 지속적으로 나열되는 제네릭 약가 인하 압박에 상당한 피로감과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새롭게 지출효율화 카드를 꺼내들면서 업계의 부담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출효율화에는 크게 ▲통합적 조정기전 등 약제비 관리 합리화(△약가 상한금액 조정 기전을 통합 운영하는 방안 마련 예정 △특허만료 의약품 관련 동일 약제의 외국 각국 최고가와 비교해 국내 약가가 더 높은 경우 가격 조정 검토) ▲등재의약품 재평가(등재 연도가 오래된 약제 중에서 임상적 유용성이 미흡한 약제를 현재 시점 기준으로 재평가 실시해 임상적 유용성 미입증시 급여제한) ▲고가 약제 관리 강화(△신규 등재 시 성과기반환급형 등 다양한 유형의 위험분담제 적용 △RWD(리얼월드데이터)를 기반으로 사후관리 보다 강화) ▲사용량 약가연동제 개선(300억 이상 등 청구액 많은 약제의 인하율 상향, 청구액 20억 미만에서 30억 미만으로 제외대상 확대) 등이 포함돼 있는데 국내제약기업에겐 고가약제 관리를 제외한 모든 안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약가정책의 기조가 더욱 명확해졌다"면서 "혁신신약에 대한 보상은 강화되고, 제네릭의 가격은 인하하는 방형성이 더욱 공고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해외약가 비교 재평가라는 약가인하 기전을 추가로 도입하는 방안을 준비 중인 만큼 제네릭의약품에 대한 약가인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면서도 "혁신신약을 개발하거나 필수원료의약품 생산망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는다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