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부모의 호소) "열악한 투병환경 개선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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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 부모의 호소) "열악한 투병환경 개선해 달라"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07.25 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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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아 부모, 20일 국회 토론회서 간절한 염원 전해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소아청소년암 필수진료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소아암 환자 부모의 입장에서 현재 소아암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H씨는 "26년 전 소아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고모의 치료 현장과 지금 제 딸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더 심각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이 치료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는 소아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한다"며 토론회 자리에 용기를 내어 나온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뉴스더보이스는 소아청소년이 암치료과정에서 겪는 의료현장에서의 어려움과 개선되어야 할 사항, 소아청소년과 의료인력 부족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지적한 H씨의 토론회 발제 내용을 본인의 동의를 얻어 게재키로 했다.(편집자주)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소아청소년암 필수진료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소아암 환자 부모의 입장에서 현재 소아암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H(사진 가운데)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소아청소년암 필수진료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소아암 환자 부모의 입장에서 현재 소아암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H(사진 가운데)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온 8살, 4살 두 아이의 엄마 H입니다. 저희 가족은 이미 세 명의 가족을 암과 질병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이어서 둘째 딸 A가 지난해 8월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ALL)을 진단받았습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치료과정, 3년의 긴 투병 기간, 서울로 이사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양산부산대학교에서 치료받기로 결정했고, 현재 10개월째 000교수님께 치료받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겪는 어려움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격한 두 아이의 사레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번째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으로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고위험군이며 양산부산대학교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었습니다. A도 집중 치료기간이어서 입원 중인 상태라 새벽 잠결에 코드 블루 방송을 들게 됐습니다. 소아 혈액종양과라서 놀랐고, 옆 병실이라서 한 번 더 놀라서 뛰어갔더니 전공의 선생님, 응급실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은 보였는데 담당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경험 많으신 교수님이 계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이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삶과 죽음이 오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검사 중에 깨어나 고비를 넘겼습니다. 만약 이 아이가 병원에서 한 시간 거리인 자신의 집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치료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두번째 아이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췌장암 치료 중인 6세 여자아이로 감염으로 폐혈증이 진행됐습니다. 서울로 전원한 환자지만 특별 케이스로 양산부산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 딸아이는 관해 치료 중으로, 바로 옆 침대에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아이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아이는 구토와 설사가 새벽 내내 이어졌고 여러 기계와 약들이 아이 곁에 추가됐습니다. 결국엔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50 대 50. 살 수도 있고, 아이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만약 제때 치료받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렇게 열이 나거나 감염증상으로 응급상황 발생하면 지방에서 치료받는 환자든, 수도권에서 치료받는 환자든 상관없이 자신의 주거지 근처 응급실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치료 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는 소아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아이를 돌보며 느끼는 또 다른 어려움으로는 지역 소아 응급실을 방문할 때 겪습니다. 

제 딸아이는 올해 새해 첫날 열 번 이상 구토를 해 새벽에 응급실을 방문했는데, 노로바이러스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어 미열로 방문했을 때는 A형 독감 진단받았습니다. 저희는 매번 아이를 데리고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응급실에 갈 때면 진료 대기실이 아닌 히터도 없는 싸늘한 복도에서 긴 시간 대기해야 합니다. 두꺼운 점퍼로 아이를 감싸고 담요를 두릅니다. 혹시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줄 수 있는 감염 증상이 있는 건 아닌지, 또 다른 아이로부터 감염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지역 소아 응급실이 소아암 아이들과 보호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순간부터 감염 걱정 없이 분리된 보호자 대기실과 진료실에서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소아과 전공의 부족으로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혈액종양과는 인력난에 허덕인다는 것입니다. 

2022년 11월 전공의 선생님이 사라진 적이 있습니다. 이어서 다른 교수님도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이제 남은 두 교수님이 아이들을 돌보고 계시지만 임영탁 교수님은 은퇴를 앞두고 계시고, 양유진 교수님은 입원과 외래, 야간 당직까지 서고 계십니다. 

2023년 3월부터 진료를 위해서 전공의 선생님 감독하에 인턴 선생님들을 수련시켜 골수검사, 척수 항암 치료를 해주고 계십니다. 

제 딸 A는 현재까지 14번의 척수 항암과 4번의 골수검사를 받았습니다. 2023년 3월 이전은 소아과 전공의 선생님(척수항암 12회, 골수검사 3회)이 해주셨고, 2023년 3월 이후는 인턴 선생님들(척수항암 2회, 골수검사 1회)께 항암치료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치료종결까지 8번의 척수 항암 치료가 남았습니다. 

1997년경 부산대학교병원 혈액종양과에서 A의  고모가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림프종으로 척수항암 치료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주사 바늘이 척수에 꽂힌 채로 항암 치료가 마무리된 적이 있었습니다. 추후 수술 날짜를 잡아서 주사 바늘을 제거하기로 했지만 림프종 재발로 인해 뇌수막염 합병증이 찾아왔고, 척수에 바늘이 꽂힌 채 3개월 투병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A는 부산양산대학병원에서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A는 부산양산대학병원에서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소아과 전공의 선생님들의 실수를 지적하고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 많으신 전공의 선생님들의 업무였던 척수 항암이 '전공의 선생님 부족'으로 인턴 선생님께서 하게 되면서 치료받는 소아암 아이들, 이를 지켜보는 부모님들 그리고 항암치료를 직접 하시는 인턴 선생님들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소아암 환우들이 양산부산대학교 혈액종양과에서 인턴 선생님들께 올해 3월부터 항암 치료 받은 이후로 빠르면 5분 늦어도 10분 안에 마치는 척수 항암 치료가 50분까지 걸리는 일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척수 항암 중에 마취가 깨서 진정제를 두세 번씩 투여하고, 주사 바늘을 5번, 6번째까지 찌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환아 부모들은 전공의 선생님이 척수 항암주사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묻는 보호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말은 못하고 저처럼 속으로만 울고 있는 부모들이 더 많습니다. 

소아과 전공의 선생님 부족으로 소아암 아이들이 더이상 참고 감내해야 하는 상처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희처럼 지방에 거주하는 소아암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쉼터가 더 많이 지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암암 평균 치료 기간 3년으로 치료를 위해 장거리로 이동해야 하고 임시로 지낼 수 있는 숙박 장소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면역력이 낮은 소아암 아이들과 가족들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고, 병원 근처에 위치해서 아이들이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쉼터 지원을 확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에 양산부산대학교 병원이 문을 닫게 된다면 예설이도 수도권 소아암 병원으로 전원 해야만 합니다.  보호자로서 쉼터 부분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외로운 소아암 완치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1997년, 26년 전 예설이 고모는 초등학교 때 소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26년이나 지났는데도 저희 가족은 암 치료로 여전히 걱정이 많습니다. 치료종결도 걱정이지만 완치 후의 삶도 걱정입니다. 평생 부작용들을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소아암 아이들이 완치 후에 겪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주시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6년 뒤 오늘을 돌아봤을 때 걱정보다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한국 보건복지부 제4차 암관리 종합계획의 비전은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 라고 들었습니다. 

이미 암으로 두 명의 가족을 떠나보냈지만 A만큼은 꼭 지키고 싶습니다. 보호자가 울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매일 울겠습니다. 보호자가 무릎 꿇고 기도로 해서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매일 무릎 꿇고 기도하겠습니다.
소아암 아이들이 어른이 될 수 있게, 더 늦지 않게,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해주세요.

 많은 소아암 아이들이 완치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어린이집에도 가고, 학교도 다니면서 감염 걱정 없이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꼭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에서 치료받는 소아암 아이들을 끝까지 관심과 사랑으로 챙겨주세요. 꼭 부탁드립니다. 저희 가족도 소아암 치료중인 가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 혈소판 수혈과 조혈모세포이식 등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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