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이 펼치는 언어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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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이 펼치는 언어유희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12.22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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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는 다섯 살이 되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환경 변화를 말로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표현을 외워두었다가 반드시 써 먹기도 하고, 엄마의 어투를 그대로 따라하거나, 주변 어른들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맘에 드는 표현이 있으면 꼭 한 번씩 써먹어 본다.

어른 말을 모방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기 때문에 종종 어른들로부터 "말을 참 잘한다"는 칭찬을 듣게 되면 "아유, 뭘요"라며 대꾸해 엄마를 겸연쩍게 만든다.

한 번은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간 식당에서 옆 테이블 어르신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임유진이예요. 엄마가 고기 사준다고 해서 왔어요."라며 묻지도 않은 인사를 전했다.

어른들은 신기한지 "어쩜 그리 말을 잘하니"라고 응답하자 유진이는 기다렸다는 듯 "제가 좀 말을 잘하죠?"라며 어깨를 으쓱해 주변 어른들을 폭소케 했다.

아이는 이런 관심이 좋은 지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인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끔 동네 공원에 어르신들이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으면 유진이는 다가가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끼어든다.

어른들은 아이의 참견이 귀여워 곧잘 대꾸를 하는데, 유진이는 이 때를 놓칠세라 자신을 소개한 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거나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아이가 꾸며놓은 작은 토크쇼에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맞장구를 쳐주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끄러움이 많아지는 엄마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라, 아이의 손을 얼른 낚아채 송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급히 자리를 빠져 나온다.

유진이는 한창 말재주를 부리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깨버린 엄마가 미운지 다시 그 자리로 가겠다며 떼를 부리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는 '말'이 주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입이 점점 야무져 대꾸하는 수준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유진이는 또래 아이들과 놀 때도 어른들이 쓰는 어투를 유감없이 사용한다. 한번은 같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한 아이가 유진이를 보지 못하고 부딪치게 됐는데, 유진이는 상대 아이가 깜작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는 사이 허리춤에 손을 얹고는 "갑자기 사람을 밀면 그 사람이 다칠 수 있어. 조심 좀 해줄래?"라며 입술을 앙다물어 주변 엄마들이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이가 부리는 말 재주는 집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이제는 엄마와 아빠를 점잖게 타이르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최근 한 이슈로 엄마와 아빠의 의견이 갈리게 됐는데 대화 중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지자 유진이는 대뜸 "싸우는 거야?"라고 참견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유진아, 아빠랑 엄마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있잖아. 잠시 이야기 중이니까 유진이는 놀던 거마저 놀아"라고 제지하자 유진이는 지지 않고 "아빠, 그렇게 목소리가 크면 그건 싸우는 거야. 대화는 조용조용 하는거야. 알았어?!"하면서 팔짱을 낀채로 아빠를 노려봤다.

남편은 아이의 말투와 태도가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환한 얼굴로 "그래, 아빠가 미안. 이제부터 조용히 말할게. 됐지?"하고는 유진이를 안으려 했다. 아이는 아빠를 향해 됐다는 식으로 손을 휘휘 젓더니 "알았으면 됐어"하고는 획하니 돌아 자신이 하던 놀이를 이어갔다.

다른 에피소드도 덧붙여 본다. 남편은 유진이를 '작은 못난이' 나를 '큰 못난이'로 부르는데 이 별칭을 유진이는 유독 좋아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날이면 엄마 방으로 와서 수다로 아침인사를 하는 유진이는 아빠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아빠가 엄마에게 "못난아, 이제 일어나. 늦겠다"고 채근하자 "엄마 못난이 일어나. 작은 못난이 기다려"하며 킥킥 대는 것 아닌가.

내가 "난 못난이 아니야. 예쁜이 할꺼야"라고 대꾸하자 아이는 "엄마, 우린 못난이 맞아. 못난이는 좋은 거야.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한테만 그렇게 부르잖아"하며 엄마에게 깊은 깨달음을 안겨줬다.  

요즘 유진이는 본인이 가진 외향적 성격에 발랄함까지 더해져 가족에게 종종 '관종' 또는 '깨방정'으로 불리고 있다.

아이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로 본인이 지칭되자 엄마에게 그 뜻을 묻고는 하는데, 차마 팩트를 팩트대로 전하지 못하는 엄마는 반쯤은 고소하기도 반쯤은 재미있기도 하다. 엄마의 이런 맘을 네가 알랑가 모르겠다. 유진아.

한 달 넘게 준비한 재롱잔치. 무대에 오르자 엄마 아빠를 찾겠다는 일념에 빠진 유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친구들은 유진이를 달래가며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멋진 같은 반 친구들 고마워!
한 달 넘게 준비한 재롱잔치. 무대에 오르자 엄마 아빠를 찾겠다는 일념에 빠진 유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친구들은 유진이를 달래가며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멋진 같은 반 친구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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