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아주의대 비상대책위원회 2차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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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아주의대 비상대책위원회 2차 성명서
  • 이창진 기자
  • 승인 2024.03.12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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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의사들의 빈자리를 다른 인력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련병원의 교수(전문의)와 젊은 의사들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협업체계를 바탕으로 높은 난이도의 진료행위를 표준절차와 안전을 유지하면서 수행하는 치료공동체이다. 순식간에 한쪽 톱니바퀴가 사라진 현재, 전문간호사나 외부지원인력을 투입하여 기존의 체계를 흐트러짐 없이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정부의 생각은 치료공동체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젊은 의사들이 미울지라도 병원 고유의 진료기능 회복은 오직 지금 떠나간 이들의 복귀로만 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은 돌아올 생각이 없다.

정부는 젊은 의사들이 조직이나 선배의사들의 사주와 선동을 통해 의식화되었고 결국 이런 조종이 지금의 의료대란을 만든 것처럼 말한다. 터무니없는 정부의 망상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나는 것은 우리들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을 뿐 미리 어떤 사전 논의나 교감도 없었고, 느닷없이 생긴 진료 공백은 지금 교수들이 허덕이면서 부분적으로나마 메꾸고 있는 중이다. 

수습의 기미 없는 대치상황에서 모든 교수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정부는 온갖 매체를 통해 복귀를 촉구하는 일방적인 선전을 하고 있고, 교수들에게 이들을 병원으로 불러오라는 요구를 하고 있으나 현재 그 어떤 연락도 받지 않고 있는 젊은 의사들이 다수이며 설령 연락이 된다고 해도 이들은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음을 재차 확인만 할 뿐이다.

왜 젊은 의사들은 돌아오지 않는가?

수련병원에서의 힘들고 긴 수련기간을 통해 이들이 배우고 익히는 것은 보통 건강보험 체계에서 효과적이라고 인정하여 진료비 보상을 해주는 의료행위들이다. 이런 주류 의료행위에 대한 판단과 실무능력을 충실히 갖춘 의료인으로 거듭나려는 것이 이들이 힘든 수련을 참고 견디는 이유이다. 

그러나 막상 전문의가 되어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순간 이들은 건강보험의 급여 범위내에서만 진료를 하는 것은 경제적 자립은커녕 도태되기 쉽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수련 중에는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소위 비급여 진료를 열심히 공부하고 실제 진료실에서 해야 한다. 

다른 OECD 국가들보다 특히 낮은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 대비 건강보험 보장율은 2000년대 이후 사람들에게 민간보험인 실손보험 가입 열풍을 불러왔고, 그 결과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비급여진료에 대한 심리적, 윤리적 문턱을 크게 낮추는 상황을 초래했다. 

많은 의료기관이 실손보험이 보상하는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 앞에서 긴 세월을 들여 배우는 전공의 수련이란 과정은 단지 장식일 뿐이고 더 이상 본인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아예 의사면허 취득과 동시에 건강보험 체계와는 무관한 삶을 살려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런 와중에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한 2,000명의 의대정원 증가는 불과 6년 후부터 한정된 크기의 의료재원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의사의 모습을 뻔히 예견할 수밖에 없고, 하루라도 빨리 의료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스
스로의 적성과 책임감으로 건강보험체계 안의 환자진료에 매진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던 이들 마저도 이번에 목격한 무지막지한 정책 추진과 왜곡선전, 여기에 기름을 붓는 선정적 언론과 댓글테러에 마음을 바꿔 병원탈출을 결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는 모두 다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돌아오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한들 돌아오지 않는다.

현재 정부는 애원과 협박, 처벌을 번갈아 말하며 젊은 의사들의 진료현장 복귀를 종용하고 있다. 이중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근무이탈을 이유로 내리는 3개월간의 면허정지이다. 더 이상 수련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한해 수련이 끝난 시기인 2월말에 사직을 한 것이 어째서 근무이탈이라고 생각하는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정부에서 가하는 3개월 면허정지는 오히려 이들이 병원으로 돌아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해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확인증이 되는 것이다. 

정지기간을 마친 후에 이들은 더 이상 병원의 수련에 미련을 두지 않고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 수련병원의 진료체계는 궤멸되고 말 것이다. 지금의 전공의가 훗날 전문의가 되어 중증 환자를 보는 의사가 되는 것이기에 미래도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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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못 받는 환자들은 어떡하라고 돌아오지 않는가?

그동안 정부에 저항하며 젊은 의사들이 해왔던 방법인 ‘파업’이 아니다. 2,000명 증원에 절망해 더 이상 이 일을 할 필요성을 못 느껴 떠난다는 ‘사직’이다. 정부는 아무리 사직이라도 이렇게 동시에 진료현장을 이탈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법리적 논리를 적용하며 상응하는 처벌을 무기로 압박하고 있고, 최소 진료 유지라는 의사의 윤리적 행동원칙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상태를 의료마비, 의료대란까지는 아니라고도 설명하고 있다. 

오히려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개혁이란 이름을 앞세운 막무가내 정책 중에 나타나는 대혼란을 이런 식으로 포장하다니 견강부회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같은 날의 상황이 누구 입에서 나오냐 따라 그 함의가 널뛰기를 한다. 솔직해지자. 이들이 떠난 후 응급환자, 중환자 진료는 남은 교수들이 자신을 소진하면서 버티고 있으나 이것도 마냥 유지할 수는 없다. 

의사가 보아야 하는 환자는 이런 환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누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하나?

답은 정부이다. 더 정확히는 이런 사태를 촉발한 대통령과 그 측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이다. 개혁이라 말하면서도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감히 할 수 없는 조잡하고 일방적인 정책을 발표하고 고집불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실현가능한 정교한 정책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의사들은 미래 세대의 어두운 전망을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는집단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노인질환자, 생애 마지막 환자, 눈에 띄게 감소하는 출생아 등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노령화, 인구감소 시대 건강수호 문제의 가장 밀접한 카운터파트이다.
 
제발 당부한다. 말 좀 들어 달라. 대한민국 의료를 살리자 좀!

2024.3.12.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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