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베리건조엑스 급여삭제 재량권 일탈"...제약 첫 승소 판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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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베리건조엑스 급여삭제 재량권 일탈"...제약 첫 승소 판결 나왔다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3.11.01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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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복지부 해당 처분 고시 취소"...원고 손 들어줘
암상적 유용성 평가요소 등 5개 항목에 걸쳐 부당성 인정

정부와 보험당국이 수행 중인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에 근거한 행정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며, 법원이 원고(제약사)의 손을 들어준 첫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강동혁 부장판사)는 빌베리건조엑스 제제에 대한 급여 삭제 고시를 취소해 달라며 국제약품 등 4개 제약사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지난달 27일 이 같이 판결했다. 앞서 태준제약 등이 제기한 유사 사건에서 다른 재판부가 원고패소 판결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사건 개요=빌베리건조엑스 제제는 '당뇨병성 망막질환, 야맹증' 치료에 쓰도록 허가된 의약품이다. 2002년 1월 타겐에프연질캡슐이 처음 시판허가를 받아 같은 해 7월 건강보험약제목록에 등재된 이후 20년간 임상현장에서 잘 사용돼 왔다. 그 사이 품목수도 25개로 늘었다.

이후 보건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은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제도를 도입해 빌베리건조엑스 제제를 1차 본평가 대상 약제에 포함시켰고, 재평가 결과 '급여적정성 없음'으로 결론내렸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2021년 11월 개정고시를 통해 빌베리건조엑스 제제를 약제목록에서 삭제했다. 이에 불복해 제약사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국제약품 등이 제기한 사건은 이번에 2년만에 판결이 났다.

원고 주장과 재판부의 판단=원고 측은 복지부 처분이 법률유보 및 포괄위임금지 위반, 요양급여대상 직권조정 절차 위반, 재량권 일탈·남용 등에 해당돼 위법하다며, 해당 고시를 취소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세종.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직권조정 규정은 법률유보원칙이나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반되지 않고, 피고가 이 사건 처분을 함에 있어 요양급여대상 직권조정 절차를 위반한 잘못도 없으나, 위 처분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결여함으로써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왜 재량권 일탈·남용인가=재판부는 임상적 유용성 평가요소 설정, 임상문헌 배제기준 설정, 임상적 유용성 평가, 비용효과성 및 사회적 요구도, 공익과 사익 간 불균형 등 5개 항목에서 부당성을 인정했다.

먼저 임상적 유용성 평가요소 설정과 관련해서는 "임상적 유용성 평가요소를 해당 적응증에 대한 효과, 즉 '치료적 이익'에만 한정하고, 대체가능성과 질병의 위중도를 평가요소에서 제외한 것은 평가규정(제4조 제1항 제1호)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고, 설령 피고 주장과 같이 평가규정이 약제를 요양급여에 신규등재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더라도, 이는 임상적 유용성의 평가요소를 합리적 이유 없이 축소해 신규등재하는 경우와 달리 본 것으로 현저히 부당하다"고 했다.

임상문헌 배제기준 설정과 관련해서는 "재평가 공고를 통해 임상적 유용성 평가 시 근거자료로 활용하는 임상문헌을 SCIE-RCT 임상문헌으로 한정했고, 급여 적정성 재평가 기준 설정에 대해 상당한 재량을 갖더라도 이러한 기준 설정은 객관적인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른바 '근거중심의학'의 정착을 위해 의학문헌의 신뢰 수준에 차등을 둘 필요가 있어 보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SCIE-RCT 임상문헌이 아닌 경우 임상적 유용성 평가를 위한 근거자료에서 전적으로 '배제'하고 이를 보충적으로 살펴보지도 않는 방식은 부당하다"고 했다.

임상적 유용성 평가와 관련해서는 "임상적 유용성의 평가는 '대체가능성, 질병의 위중도, 치료적 이익 등'을 고려해야 하고, SCIE-RCT 임상문헌 외의 임상문헌도 아울러 심사에 반영하는 것이 타당한데도 소위원회 및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임상적 유용성을 오로지 치료적 이익에 한정해 심사하면서 SCIE-RCT 임상문헌 외의 임상문헌은 근거자료에서 일체 배제했는데, 이러한 심사방식에 따른 임상적 유용성의 '불인정' 평가는 부당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특히 구체적인 평가결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정리하면 이렇다. 

"이 사건 재평가 기준에 의하면 성분관련 언급내용이 있는 경우 ▲해당 적응증에 사용약제로 언급돼 있으면 ‘인정’ ▲해당 적응증에 사용약제로 언급은 있으나, 효과 미비, 불확실, 불명확 등으로 설명된 경우 ‘불분명’ ▲해당 적응증에 사용약제로 언급 있으나 권하지 않음, 효과 없음으로 설명된 경우 ‘불인정’으로 평가하도록 돼 있는데 빌베리건조엑스는 교과서에 '사용약제로 언급이 있고, 효과가 불명확한 경우'에 해당하고, 임상진료지침과 HTA 보고서에 단순히 언급이 없을 뿐 ‘권하지 않음, 효과 없음’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므로, 교과서, 임상진료지침, HTA 보고서를 종합해 봤을 때 '불분명'으로 판정되는 것이 타당하다."

비용효과성·사회적 요구도와 관련해서는 "임상적 유용성에 관해 ‘불인정’으로 평가한 판단이 부당함은 앞서 본 바와 같은 바, 투약비용, 임상효과의 개선 정도, 경제성평가 결과 등을 고려해야 하는 비용효과성 및 대상환자수, 예상사용량, 기존 약제나 치료법의 대체 효과 등 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도 평가에 나아가지 않은 것 또한 합리성을 결여했다"고 했다.

공익과 사익간 불균형과 관련해서는 "피고는 원고들 등이 제출한 임상문헌 외에 SCIE급 RCT이상 임상문헌 등 신뢰도 높은 근거자료를 준비할 기회를 부여하고, 이 사건 각 약제에 대해 조건부 급여결정을 하거나 상한금액을 인하하는 등의 대안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었음에도 이러한 조치 없이 곧바로 요양급여 지위를 박탈했는데, 이로 인해 침해되는 원고들의 사익이 상당히 크다"고 했다. 

이어 "당뇨망막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이 사건 각 약제를 복용하려면 기존 비용의 약 3배 이상을 지불하거나, 순환기용제인 대체약제를 처방받아야 하는데 대체약제의 효능에 관해 아무런 자료가 없고, ‘임상적으로는 혈류 개선을 위해 혈관순환제 일부가 망막질환에 처방이 되고 있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초기에 병의 발생에 기여하는 산화 반 
응을 억제해 돌이킬 수 없는 시력 손실을 가져오는 심각한 합병증 발생의 예방에 기여하는 타겐에프의 사용 목적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는 내용의 한국망막학회 의견을 고려할 때 국민건강보험법이 목적으로 삼는 ‘국민보건의 향상’이 저해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에 반해 이 사건 처분을 통해 이 사건 각 약제의 요양급여 지위를 배제하더라도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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