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용량 지침 소급적용 논란...발원지는 복지부 '모순된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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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용량 지침 소급적용 논란...발원지는 복지부 '모순된 행정'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2.07.1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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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산술평균가 90% 미만' 협상제외 기준적용...또 소송 불씨로

제약·법률전문가 "신뢰보호 원칙 등 위반돼"
건보공단 측 "대외적 구속력없는 행정규칙"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 사용량-약가연동 협상 세부운영지침 소급 적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대로 가면 또 소송전이 불가피한 만큼, '모순된 행정'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소관 부처가 신중하게 사안을 다시 들여다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은 '산술평균가 90% 미만'으로 강화된 사용량-약가연동 '유형다' 협상 제외 약제 기준. 이 기준은 건보공단이 3월25일 공고하고 4월1일부터 시행한 개정지침에 반영됐다. 

이전에는 '산술평균가 100%'였었다. 다시 말해 새 지침에 의하면 주성분코드가 동일한 품목들의 상한금액 산술평균가의 90% 미만이어야 앞으로는 협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건보공단은 새 지침에 맞춰 현재 진행중인 '유형다' 협상 약제에 산술평균가 99%~90% 약제를 포함시켰다. 지침대로 협상을 진행 중인데 대체 제약계는 왜 볼멘소리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게 소급 적용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유형다' 협상 약제들은 2021년과 2020년을 비교해 청구금액이 60% 이상 또는 10%&50억원 이상 증가한 제품들이다. 새 지침은 4월1일에 시행됐는데 과거의 청구금액에 적용했으니 소급이 맞다.

이에 대해 제약계는 5월13일과 6월29일, 두번에 걸쳐 소급 적용 철회를 요청했었다. 새 지침을 소급 적용해 피규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신뢰원칙에 위반된다는 게 주된 논리였다.

이 중 1차 요청에 대해 건보공단은 '공단 지침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규칙이고, 관행이 성립돼 있다면 위법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지만 해당지침 '6조(협상대상 제외약제)'는 내용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경돼 왔다'는 취지로 불수용한다고 제약계에 회신했다.  

부가적으로는 작년 민관협의체에서 지속적으로 지침 변경계획을 언급해 온 만큼 제약계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고, 협상대상 제외 대상을 '15억원에서 20억원' 상향해 완화한 기준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2차 요청에 대해서는 보름이 넘었지만 회신없이 협상을 진행중이다.

사실 건보공단은 개정지침을 개정하면서 부칙 적용례로 '개정 규정은 지침 시행일 당시 모니터링 및 협상이 진행중인 약제에 대해서도 적용한다'고 명시했다. 소급 계획을 처음부터 명확히 밝힌 것이니 제약계의 뒤늦은 대응은 '뒷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한꺼풀 더 들여다보면 복지부의 '일관성 없거나 모순적인' 행정이 발원지라는 걸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우선 사용량-약가연동 협상은 복지부의 협상명령에 의해 이뤄진다. 복지부가 협상명령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건보공단이 지침을 근거로 임의로 협상을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과거 사례를 보자. 복지부는 2013년 12월31일 고시를 개정해 사용량-약가연동 협상 대상에 청구액이 10% & 50억원 이상 증가한 약제를 포함시켰다. 이 때도 복지부는 2012년과 2013년 청구액을 비교해 협상대상 약제를 정하려고 했는데 제약계 의견을 수용해 2013년 대비 2014년 청구액부터 적용하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이는 부칙에 2014년 1월1일부터 시행한다고 명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때는 소급 적용에 대한 우려를 수용해 사실상 1년간 유예를 뒀는데, 이번에는 왜 소급해 협상명령을 내렸을까. 누가 봐도 일관성이 결여된 행정으로 보인다.

내용이나 법적 지위가 다른 규정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리베이트 약제 급여정지 처분과 관련된 최근의 사례도 보자. 현행 법률은 두번의 반성적 입법을 통해 급여정지를 사실상 사문화시켰다. 

그런데 복지부는 국회의 반성적 입법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위시 법률에 따라 동아ST 품목들에 급여정지 처분을 내렸다. 법 시행일 이후에 발생한 리베이트에 대해 새 법률을 적용한다는 게 복지부의 원칙이다. 

이번 사용량-약가연동 협상 약제 협상명령은 어떤가? 복지부는 개정지침이 4월1일부터 시행됐는데도 불구하고, 4월1일 이후 청구액이 아닌 과거(2020년과 2021년) 청구액을 소급 적용해 협상대상 약제를 선별했다. 모순적 행정의 일면이다. 강화된 지침을 적용해 약품비를 조금이라도 더 절감하고자 하는 복지부의 노력은 십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지침을 적용해 논란을 야기시키고, 또다른 소송의 불씨를 제공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제약사들의 주장에 의하면 건보공단이 해당 지침(제6조)이 지속적으로 변경돼 왔다고 회신한 것도 사실이 아니다. 사용량-약가연동 협상지침은 2014년 7월29일 제정된 이후 9번 개정됐는데 그 중 제6조가 포함된 건 2017년 8월14일 6차 개정 때 뿐이었다.   

법률전문가는 "공단의 협상지침은 행정청의 법령해석 의견이 대외적으로 표명된 것이거나 확립된 행정관행으로 볼수 있다. 따라서 이를 개정해 소급함으로써 피규제자에게 불리하게 처리하는 건 행정의 신뢰보호원칙 내지는 행정절차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복지부의 협상대상 선정행위와 이에 앞선 건보공단의 사전적 행위도 법률의 적합한 권한이 없이 이루어진 위법행위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의견은 법률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법적공방이 있는 것이다. 

제약계 한 관계자는 "신뢰의 원칙 위반이니 뭐니 법률적인 문제를 떠나 상식의 문제이지 않나. 더구나 복지부가 과거와 달리 일관적이지 않은 행정을 벌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이라고 적극적으로 재검토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논란에는 제약바이오협회를 포함해 제약계도 일부 실기한 측면이 있다. 1차 의견서와 관련해 언급했던 것처럼 건보공단은 지난해 민관협의체에서 지침개정과 함께 조기 시행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내비쳤을 것이다. 그런데 제약계는 '산술평균가 90% 미만 조정 반대'와 같이 수용되기 어려운 논리에만 매몰돼 정작 적용일에 대한 '디테일'을 놓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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