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먼저 허가받은 국산신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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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먼저 허가받은 국산신약, 왜?
  • 뉴스더보이스
  • 승인 2020.11.09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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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팜 뇌전증치료제 '세노바메이트'
범부처 전주기 사업서 110억여원 지원

[히든보이스] 지난달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 사업단이 해단식을 가졌다. 2011년 09월 글로벌신약 개발을 목표로 출범한 사업단은 많은 가시적 성과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행보를 마무리했고, 이제 국가신약개발사업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준비하고 있다.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 사업단의 성과 중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사례가 바로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이다. 세노바메이트는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 과제로 선정되어 110억여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세노바메이트는 2019년 FDA 승인을 받아 현재 미국에서 시판 되고 있는 약물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으로 FDA 승인 거쳐 직접 판매망을 구축해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는 첫 사례로 기록된 커다란 성과이다.

글로벌 신약 개발에 대한 갈망은 국내 제약 기업은 물론 바이오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물려 분명 일련의 성과를 만들어 냈다. 이 점은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바이오 산업의 특성과 수입 의약품의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약 환경을 감안하면, 이런 가시적 성과들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개발사와 사업단만 이런 화려한 성과에 장밋빛 희망을 품은 것은 아니다.

국내 뇌전증 환자와 가족들도 이 약을 만나기를 고대했다. 기존 약물로 증상이 완전히 조절되지 않는 ‘약물난치성 뇌전증환자’ 들에게 새로운 약물은 곧 새로운 희망이 된다. 한국뇌전증 학회 발표 자료에 의하면 전체 환자의 약 1/3에 달하는 10만 명의 환자가 약물난치성 뇌전증환자로 분류된다. 이들은 잦은 경련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질환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경제 활동의 어려움으로 인한 빈곤 등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발성공에 대한 희망은 이들에게 현실이 되지 못했다. 개발단계에서 한국은 우선순위에 포함되지 못했고, 국내에서 사용되려면 사용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시험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다행히 개발사는 최근 아시아 3상 임상계획에 대해 식약처 승인을 받았고 중국 국가의약품감독 관리국(NMPA)과 일본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임상시험 시작과, 종료 후 국내 허가 획득에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환자들에게는 아직 더 많은 인내의 시간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2019년 국내 시판 허가를 받은 난치성 뇌전증 치료제 브리비액트의 급여 등재 지연으로 인해 치료제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기다림은 더욱 지난한 상황이다.

국내 개발 신약이 해외에서 먼저 허가를 진행하는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된다. 시장성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 등 하나의 원인을 꼽기는 어렵다. 업계에서는 약가참조제도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약가를 참조하여, 해당 의약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국제 기조 속에서, 한국에 먼저 신약을 소개한 후 해외로 진출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신약의 조기도입과 관련해 코리아 패싱 문제가 종종 수면위로 올라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약가제도 하에서는 혁신적인 신약이 아니라면, 경제성 평가를 통한 의약품 가격이 제조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 선별등재 제도하에서 신약이 가치를 인정받는 방법은 크게 경제성 평가를 통한 방법과 가중평균가를 통한 방법 두 가지다. 하지만, 경제성 평가에서 활용되는 ICER의 값이 생명연장을 기본으로 하는 QALY값에 기초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생명에 위협이 덜한 만성 질환에서는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기가 어렵다. 일반적인 신약이거나 약간의 임상적 유용성이 개선된 신약은 현행 선별등재제도 하에서 경제성 평가나 가중 평균가 수준의 가격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만성 질환의 영역에서는 혁신적으로 우수한 신약 개발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특허 만료 이후 가격이 53.55%로 인하되기 때문에 신약의 대체약제 가격 기준이 낮아지게 된다. 한국에서 신약의 약가 수준이 OECD 약가의 54%라는 통계 수치가 이를 반증한다. 특히 만성질환은 희귀, 중증질환과 달리 경제성평가 혹은 가중평균가 수준으로만 등재될 수 있으나 최근 국가간 약제 가격 참조 등의 이슈로 인해 도입이 늦어지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으며 재평가 및 사후관리에 따른 대체 약제 가격하락으로 인해 만성질환 신약의 국내 발매 우선순위는 점점 뒤처지고 있다.

만성질환 약제는 최근 보장성 강화정책의 초점이 희귀, 중증질환에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보장성 강화의 대상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혁신적인 신약이라고 구분되는 희귀, 중증 질환 약제는 경제성평가 면제제도나 위험분담제와 같은 제도로 신약의 접근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으나 만성 질환 신약은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접근성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대체할 약제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시급하게 여겨, 만성 질환 신약의 접근성은 점점 차순위로 미뤄지는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제도의 끝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이 결국은 환자라는 점이다.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을 통해 또 다른 수많은 후보물질과 글로벌 신약 개발이 진행될 것이고, 새로운 성과들이 만들어 질 것이다. 물론 사업단 역시 이번 사업운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보완 과정을 거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사업의 성과가 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섬세하게 주변 환경과 제도를 정비하지 않는다면, 현재 10만 명에 이르는 약물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이 겪고 있는 희망고문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부디 국내 환자들에 대한 배려와 제도적 보완을 통해 환자들이 이런 상실감을 다시 겪지 않도록 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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