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쥬디스님의 치료비가 마련돼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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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쥬디스님의 치료비가 마련돼 다행이에요"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0.04.02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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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지원사업 이어가는 백혈병환우회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백혈병치료에는 고액의 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 등 사회보장제도 울타리 밖에 있는 환자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로부터 '저소득층 및 소외계층 백혈병, 혈액암 환자 치료비 지원' 사업안이 채택됐다는 연락을 받고 이은영(사회복지사)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처장은 "쥬디스 치료비가 마련돼 다행"이라고 안도부터 했다. 이로써 백혈병환우회는 5년 연속 혈액관리본부의 헌혈기부권 사업 혜택을 받게 됐다. 

안기종 환우회 대표는 반가운 마음에 "(사업공모에) 넣었다 하면 선정되는 프로젝트의 고수"라며, 이 처장을 치켜세웠다. 그럴만도한 게 1차 서류심사에 2차 PPT 발표까지 매년 공모에 참여하는 과정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헌혈기부권'은 헌혈자가 헌혈 후 기념품을 받지 않고 대신 기념품으로 책정된 금액을 기부하는 제도를 말한다. 적십자사는 헌혈기부권으로 조성된 돈을 헌혈자를 대신해 긴급지원이나 의료비 지원 등 공익사업(공모)에 지원하고 있다.

환우회는 올해는 7555만원을 지원받게 됐는데, 5년 연속 선정에는 그만큼의 진정성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럼 환우회의 치료비 사업은 뭐고, 이 처장이 먼저 챙긴 '쥬디스'는 누굴까. 환우회는 백혈병환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지지·격려하고, 교육이나 상담역을 맡고 있다. 또 정부 정책에도 대응한다. 말그대로 많은 일을 한다. 5년전부터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환우에게 직접 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헌혈자의 헌혈기부권으로 조성된 지원비는 바로 여기에 쓰인다. 

"우리사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백혈병환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촘촘한 편이죠. 병원에도 지원프로그램이 있어요. 하지만 손을 내밀 곳이 없는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노크하는 게 우리 단체 문이죠."

실제 환우회는 적십자사 헌혈기부권 지원사업을 수주해 매년 8~9명의 환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왔다. 그 중에는 국립암센터 사회사업부가 내부규정상 지원 조건이 안맞는 환자를 연결시켜 준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살림이 넉넉치 않은 환우회가 이런 사업을 자체 재정으로 충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올해 헌혈기부권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면 이 사업을 계속 끌고 갈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처장은 더 열심히 PPT를 준비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홍보대사인 가수 아이비
한국백혈병환우회 홍보대사인 가수 아이비

특히 콩고 출신인 쥬디스가 있어서 이 처장의 마음은 더 절실했다. 쥬디스는 4년전 어느날 환우회 문을 두드렸다. 영어를 쓰는 민원인에 이 처장과 환우회 상근자들은 처음에는 난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쥬디스의 처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학생으로 한국에 온 그는 이 땅에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청천벽력같이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더구나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쥬디스는 어쩔 수 없이 SNS를 통해 해외구호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우연히 환우회가 치료비 지원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원의 손길을 요청한 것이다.

"처음에는 글리벡 제네릭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그 때만해도 비급여여도 약값이 싸서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상태가 악화돼 2차 치료제(스프라이셀)로 넘어가면서 치료비(연간 약 2500만원)를 감당할 수 없게 된거예요."

한국백혈병환우회 송년모임 '겨울밤행복이야기'에 참석한 쥬디스(왼쪽)와 딸 애이미
한국백혈병환우회 송년모임 '겨울밤행복이야기'에 참석한 쥬디스(왼쪽)와 딸 애이미

당시 쥬디스를 도울 여건이 안됐던 환우회는 마침 홍보대사인 가수 아이비가 기부한 2천만원을 주저없이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부터는 헌혈기부권 사업 지원금이 아이비 기부금을 대신하고 있다.

"다른 환자들과 달리 쥬디스는 지금도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 치료비 전액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질병치료를 위한 체류여서 직장을 구할 수도 없는 상태구요. 우리가 쥬디스와 계속 같이 가야하는데, 만약 이번에 헌혈기부권 사업에서 탈락하면 소셜펀딩을 받는 쪽으로 방법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죠."

이 처장이 적십자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안도부터 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 단체 치료비 지원사업은 경제적 지원을 넘어서 동병상련 완치 환우들의 응원이 있는 정서적 지지도 함께 합니다. 쥬디스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서 머지 않아 많이 호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죠. 다만 치료비 지원사업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환우회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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