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 귀 기울이는 초심 지켜갈게요"
상태바
"환자에 귀 기울이는 초심 지켜갈게요"
  • 엄태선 기자
  • 승인 2020.02.10 0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은영 사무처장(한국백혈병환우회)

"지난 2004년 2월 32살 생일 전날에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됐어요. 이상하게 계속 피곤하고 몸 군데군데에 피멍이 있어 동네의원을 찾았는데 큰 병원 가서 정밀검사를 빨리 받아보라고 했었죠. 막막했죠. 결국 대학병원에서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고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지요. 다행히 오빠로부터 동종골수이식을 받을 수 있었고 치료도 잘 됐죠. 이후 2년의 치료기간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어요. 백혈병 환자인 저처럼 아픈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였죠."

  1. 어느 해 초겨울, 이은영 사무처장(백혈병환우회, 48)은 우연히 백혈병환우회가 혈소판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인권위에서 항의시위하는 언론기사를 접한 것이 환자단체와의 첫 인연이 됐다. 백혈병을 앓고 치료받았던 자신의 경험으로 같은 병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삶은 대전환점을 맞았다. 병을 앓기 전에 선박회사 평범한 직장인으로 삶을 살았던 그였다.

"제가 그랬으니까.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뭐라도 말이죠. 그런 찰나, 백혈병환우회에서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고 안기종 대표를 만나게 됐어요. 그로부터 약 두 달동안 매주 1~2차례 봉사활동을 시작했죠. 그 후로 거의 매일 사무실에 나와 단체의 권익 신장을 위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 됐어요. 단순 봉사자가, 현장의 환자가 모여서 단체로 조직화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가의 삶으로 바뀐거죠."

그는 2007년에 본격적으로 백혈병환우회에 합류하게 됐다. 험난한 길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약 2년 동안은 생활비를 집에 한푼 가져가지 못하는, 환자단체에서 일은 하지만 무급으로 봉사했던 시기였다. 단체가 좀더 조직화되고 틀을 잡아간 2009년이 돼서야 적은 금액이지만 월급을 받게 됐다.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자가 무언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그런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고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되새겨보면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환자의 권익을 찾고 키워야겠다는 저만의 목표와 사명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평범한 선박회사 직장인에서 환자단체 열열 활동가로

이은영 처장은 발병 이전만 해도 주말이면 영화를 즐겨보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했던 사회복지사 자격을 지닌 '커리어우먼'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환자'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한동안은 그런 소소한 호사(?)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병이 거의 다나은 상태이지만 건강관리는 꾸준히 해야 하는데 일에 치여 제대로 운동같은 건 하지 못해요. 하지만 최근 집에서 20분씩 런닝머신도 하고 만보걷기 운동도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환자의 건강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저도 다른 취미는 하지 못하지만 일년에 딱 한번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일은 빼먹지 않고 하고 있죠. 벌써 6년째 가고 있어요. 저에게도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하하하)"

환우회 13년, 그는 가장 기억이 남는 일은 단연 환자권익을 위한 노력이었다. 백혈병환자라는 이유로 자격을 제한한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불합격 판정기준을 개선한 사례가 그것이다.

"백혈병은 치료할 수 있고 전염병도 아닌데 취업에 있어 실제 장벽이 많아요. 업무에 큰 지장이 없는데도 백혈병으로 투병했거나, 투병 중이라는 이유로 제한한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기준이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서명운동 등 다양한 노력을 펼쳤는데 정부도 관련 규정을 개정해줬죠. 환자권익을 향상시킨 대표적인 사례였어요.“

"전염병 등 잘못된 백혈병 정보가 더 힘들게 해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아쉬운 것들도 있다. 백혈병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 전환문제다.

"일부 환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제도 등은 조금씩 성과가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백혈병에 대한 인식은 미흡해요. '유전병이다', '전염병이다', '불치병이다' 등 질환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죠.  '아빠가 (백혈병)환자니까 그 아이에게 가까이 하지 말라'는 일도 있으니까요. 아픈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봐요. 특히 직장을 다니다가 발병돼 치료 후 복귀하려 해도 기업에서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게 현실이죠. 눈물 나는 거죠. 병으로 고통 받고 일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환자에겐 상시 벌어집니다."

 

이은영 처장은 혈액부족 사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데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혈액을 구하기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교육이 필요해요. 현혈에 대한 것과 동종이식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부의 이로움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해요. 함께 사는 사회로, 또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속에서 기부라는 좋은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히는 거죠."

'한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는 처음 시작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가져가는 게 목표다. 환우회에 발을 딛을 때와 현재가 다르지 않게, 환자와 보호자에게 든든한 지원자가 되는 것이다. 그의 신념이고 인생의 철학을 담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백혈병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에게 큰 충격이에요. 어떻게 해야할 지 답답하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정보를 주고 함께 보듬어 주는 것, 이런 게 제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겁니다. 1년에 한 두 번 환우회 행사가 있는데 환우와 그 가족이 오시죠. 근데 이후 환우가 사망하는 사례가 있기도 해요. 너무나 마음이 아파요. 그런 환자가족의 슬픔을 몸소 피부로 느끼는 일이 많아 더욱 굳건히 마음의 평온을 잡으려 노력해요. 한결같은 사람이 돼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한 거죠."

"환자로 구성된 환자단체,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힘있는 단체이죠"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환자단체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특히 환자라는 이유로 불필요한 후원을 통한 단체운영은 안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립하고 지속성을 위해 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백혈병환우회는 구성원 모두 환자와 가족으로 이뤄져있고, 재정도 자체적으로 충당하고 있어요. 환자 스스로 설립하고 자립적으로 운영되는 환자단체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형태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순수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거죠. 객관적이지 않고 불합리한 것보다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외침입니다."

올해부터는 백혈병환우회의 향후 50년, 100년을 이어갈 후배 활동가에 눈을 돌릴 계획이다. 환우회에 더 많은 이들이 모이고 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일꾼 양성'이다.

"지금까지 단체를 이끌어온 분들은 모두 1세대라고 봐요. 이제 미래를 담보할 2세대를 만들어야 해요. 부정하기는 싫지만 10년전의 열정과 현재의 열정은 다를 수 있어요. 환자단체를 멋있게 성장시킬 보물을 찾을 겁니다."

끝으로 '뉴스더보이스'에도 기대감을 놓지 않았다. 환자와 눈을 맞추고 귀담아 듣는, 그런 관심을 당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