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집단 행동과 의대 입학정원 증원 논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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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집단 행동과 의대 입학정원 증원 논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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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15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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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평수 전 차의과학대학교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

정부는 의사 수 부족 대책으로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공의들은 증원에 반발해 의료현장을 떠났고, 의과대학 학생들은 휴학계를 제출했다. 일부 의과대학 교수와 선배 의사들도 증원 규모와 의사결정 과정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의사단체와 대화 과정을 고려해 현 시점에서 의사 증원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전공의와 의과대학 학생들 집단행동의 부당성을 제시하면서 법에 의한 강경 대처를 선언하고 진행 중이다. 국민에게 의료 이용의 위기를 촉발한 현 사태의 쟁점, 원인과 대처 방안을 짚어본다.

아주대의대 교수들이 '의료파업'과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아주대의대 교수들이 '의료파업'과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의사 수는 적정한가?

의사와 의료기관의 의료 제공 행태와 국민의 의료 이용 행태가 현재처럼 지속될 경우 부족하다는 정황이 지배적이다.

2015년 조사에 의하면, 당시 전공의 주당 근무 시간은 93시간으로 일반근로자 41시간의 두 배를 넘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6년에 시행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서도 주당 80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전공의의 건강과 복지, 환자의 안전을 위해 조정한 결과이다. 병원에 전공의를 비롯한 의사 수의 부족을 반영한 결과가 이 정도이다.

전공의의 장시간 근무에도 의사 수가 부족해 2004년에는 'PA(Physician Assistant)'라는 의사 보조 인력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PA 활용이 대학병원의 수술장을 중심으로 보편화됐고, 2009년에는 일부 병원이 간호사를 대상으로 PA를 공개 모집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1만명의 PA가 병원 현장에서 활동 중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이처럼 의사 수 부족 현상에 대해 의사협회는 "PA는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의견만 제시해왔다.

지방병원, 특히 공공병원의 의사 인력난이 심각하다. 3억원을 넘는 고액 연봉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채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필수 진료과라는 응급의학과, 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수도권에서도 의사 채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의사 수 산정은 가능한가?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 의료 공급과 이용 행태가 매우 불안정하고 낭비적인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의사와 환자에게 의료 공급과 이용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의료법 등 관련 제도는 의사가 어느 곳에서 어떤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어떤 의료를 제공하든 제한이 없다. 의원은 신고제이고, 병원은 허가제이지만 요건은 단순하다. 

환자인 국민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떤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든 제한이 없다. 일부 의료기관에 의뢰서 요구와 본인부담 차등화 등 제한이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환자들이 느끼는 다른 제한은 일부 의사 진료를 위한 대기 시간이다. 이는 일부 특정 의료기관의 특정 의사에 대한 선호 결과이다. 이 결과 의사와 의료기관은 환자의 시공간적, 경제적 접근성이 양호한 도시지역에 편중돼 있다.

의료의 공급과 이용이 자유방임적 상황에서 도시지역에 몰린 공급자인 의사와 의료기관은 시설과 장비의 양을 늘리고 고급화해 무한경쟁으로 과잉 수요를 유발한다. 진찰, 검사와 촬영 등 진료량을 늘려 수입을 올리려는 유혹의 발생은 당연하다. 

게다가 환자들 또한 시공간적 접근성 외에 경제적 접근성까지 높아져 의료의 오남용이 발생한다. 건강보험에 의한 본인부담 완화에 민간 상품인 실손보험까지 겹쳐 공급과 이용을 늘리는 상승 작용을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외래이용 횟수와 병상수로 대변되는 재원일수 등 진료량의 증가는 짧은 진료 시간으로 연결되고, 환자 수 대비 의사의 업무량은 과다한 것으로 나타난다. 과잉 수요와 과잉 공급의 결과이다. 이런 독특한 현상은 '환자 수'라는 업무량이 '의사 수' 산정기준으로 적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OECD 국가 등 외국과 인구 대비 의사 수 비교도 어렵게 한다.

공급과 이용이 자유방임적인 상황에서 공급자는 수익성이라는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고, 국민은 불편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돼 왔다. 이 결과 수익성과 진료환경이 열악한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의 위기는 당연하다. 따라서 현 상황을 반영해 당사자들 모두가 만족하는 의사 수 산정은 불가능하다.

적정 의사 수 논의는 의료 제공·이용의 효율화 방안과 함께

국민에게 바람직한 의료는 양질의 필요한 의료를 필요한 시기에 경제적이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 제공에 필요한 자원인 인력(기술), 시설, 장비와 물품이 질, 양, 구성과 분포 측면에서 효율적인 공급 체계가 마련되고, 국민의 이용 또한 낭비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현 의료체계는 사상누각이다. 기초공사와 누각의 이용을 병행해야 한다. 누각이 붕괴되지 않도록 하면서.

아래 제시하는 기초공사는 공급과 이용에 관한 합리적 규제를 전제로 독일, 호주, 대만 및 영국 등에서 활용했던 사례들이다. 일부는 우리나라에서도 검토한 적이 있으나 당사자의 반대 등으로 시행되지 못한 것도 있다. 제시된 세부 방안은 모두 시도할 수도 없고, 시도할 필요도 없다. 당사자들의 수용도는 물론 방안 간 내용과 효과가 중첩되거나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용성과 상호관계 등을 고려한 선택적 적용 시도가 요구된다.

1. 의료공급자의 역할을 분담·정립해 무한경쟁을 제한경쟁으로
 
현 상황은 의원을 운영하는 전문의와 대학병원의 전문의 즉, 의원과 대학병원이 환자 유치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상대이다. 그것도 무한경쟁. 따라서 의료 공급과 이용의 적정화를 위한 제한경쟁을 위해 역할 분담이 필요한 상황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일반의와 전문의: 일반의는 일차의료를, 전문의는 일반의의 의뢰에 의한 전문의료를 담당. 전문의도 전문진료과 표방없이 일차의료 담당 가능케. 일반의 거치지 않은 전문의 진료환자는 진료비 전액 부담.
-의원과 병원: 의원은 외래 중심, 병원은 입원 중심. 병원의 외래는 의원의 의뢰 환자와 응급환자
-일반병원과 전문병원: 일반병원은 경증 진료, 전문병원(종합전문요양기관 포함)은 중증과 고난이도 진료
-병원과 요양병원: 병원은 급성기 진료, 요양병원은 만성기와 회복기 진료. 병원과 요양병원의 입원기준을 마련해 과잉 또는 과소 진료 예방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요양병원은 의료 중심. 요양시설은 생활지원 중심. 요양병원의 입퇴원 기준을 마련해 모니터링 필요. 요양시설의 의료는 의료기관과 협력 연계 강화.
-민간기관과 공공기관: 필요한 의료임에도 수익성이 떨어지고, 인력이나 장비 등 자원 조달이 어려운 분야는 공공이 담당.
-의사와 관련 인력: 의료 관련 기술과 장비 등의 발전으로 안전성과 효과성이 확보 가능한 단순 업무는 관련 인력에게 이양.

2. 적정의료 공급과 이용을 위한 방안의 제도화 

무한경쟁 상황에서 상호협력을 전제로 한 제한경쟁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주치의제도 도입: 의사는 적정 환자 수 확보로 안정적(시간, 경제) 활동, 환자는 특정 의사와 지속적 관계 형성으로 안정적 건강관리
-전문의 수 적정화: 현재는 진료과별 전문의 수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 전무. 일반의와 전문의의 역할분담을 전제로 진료과별로 필요한 수의 전문의를 추계해 육성하고 제한. 필수의료 제공에 필요한 전문의 정원은 충분히 확보하고 수련과정은 물론 전문의로서 진료활동 별도 지원. 
-개원의의 병원 활용(Attending System): 개원의는 병원의 시설, 장비와 인력을 활용한 진료로 환자와 수익 확보. 병원은 별도 의사 채용하지 않고 투입자원 활용도 높여 경영합리화. 환자는 진료의 계속성 확보로 안정적 의료 받음.
-건강보험진료비의 포괄화: 진료량에 따른 수입은 진료량과 재원일수 증가 등 과잉진료 유발. 따라서 의료기관이 적정 자원 투입에 적정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포괄수가제 활용 고려. 방문당, 질병 또는 수술당 또는 재원일당 등
-건강보험진료비 총액계약: 건강보험진료비를 지역별 인구 수와 구성 등을 고려해 지역의 의사단체, 병원단체와 외래와 입원으로 구분해 총액을 계약. 타지역을 이용한 환자의 진료비는 지역 간 정산.
-전문진료과별 보상의 적정화: 전문진료과별 고유 의료행위에 대한 상대가치(수가) 균형성 조정.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의료헹위는 상향 조정하고, 고평가된 의료행위는 하향 조정.

3. 건강보험제도를 활용한 적정의료 유도

적정 공급과 적정 이용을 유인할 수 있는 직간접 방안 유도에 건강보험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의사와 병상의 지역별 적정화(요양기관 계약제): 지역별 인구 수와 구성, 환경적 특성을 고려해 지역별 의사 수와 병상(고비용 장비 포함)의 적정량만 건강보험 적용. 건강보험을 적용해 진료하는 의사와 요양기관의 병상과 장비 등을 계약으로 정함.
-지역별 보상 방법의 적정화: 지역별 총액계약 개념을 확장해 인구 대비 의사 수가 적은 지역의 의료수가를 상향 조정해 의사 유입 유도. 의사 수가 많은 지역은 하향 조정.
-필수 진료과 취약지 의료기관 별도 지원: 필요한 의료임에도 수요가 적어 수익성이 떨어지는 진료과(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의사와 의료기관은 의료수가에 의한 보상 외에 별도의 재정 지원(해당 진료과와 의료기관의 정상 운영이 가능한 충분한 정도로)
-입원과 수술 적정성 평가 제도화: 과잉 입원진료와 과잉 수술을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평가 제도화. 현재 요양시설의 입소 적정성은 평가 중. 민간보험인 자동차보험도 입원적절성 평가 시도 중(심평원과 협력 시도)

미래를 향한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 상황에서 고려해야 할 대전제는 국민은 적정 의료를 안정적으로 제공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 의사는 적정 의료 제공을 위한 적정 보상과 적정의료 행위에 대해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의사면허는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를 위해 특정인들에게 의료행위의 독점권을 부여한 제도이다. 면허권자인 의사에게는 의료행위의 독점권이라는 권한에 상응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의사의 면허권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를 전제로 행사돼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정책을 안정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간 의사단체와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감안돼야 하나, 지금이라도 의사단체의 합리적인 제안이 있다면 대화와 조율을 통해 최적 대안 마련을 시도해야 한다. 현재 의사들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정책보다는 의료제공 체계의 기반 구축을 전제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의사 측과 정부 측에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제안을 해본다.

1. 의과대학 입학정원은 증원하되 증원 규모의 융통성을

의사단체는 부족 현상에 동의하고, 정부는 증원 규모의 단계적 적용 가능성 등 융통성을 발휘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의사 수의 적정성을 모니터링하고 조정하는 기구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운영했으면 한다. 논의 기구에는 의사와 정부 외에 환자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자와 전문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의사 수를 비롯한 의료제도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2. 의료의 공급과 이용 효율화를 위한 논의 조기 개시

의사 수의 적정성 여부는 의료 공급과 이용의 효율화 방안을 전제로 논의돼야 한다. 효율화 방안도 논의 기구를 즉각 구성해 대안 마련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논의 기구의 구성 또한 의료 당사자인 의사와 국민, 정책 집행자인 정부, 전반을 아우르는 전문가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입학정원 2000명은 표면상의 문제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집해 사상누각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 법규보다는 당위성과 윤리가 우선하고 상식이 통하는 의료제도 마련과 시행이 요구된다.

끝으로 의료의 공급과 이용 측면에서 효율성 향상을 위한 합리적 규제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체계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현재의 자유방임적 의료 공급과 이용 행태가 지속되고, 행위별수가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의사 수만 늘어난다면 늘어난 의사 모두가 수입 보전을 위해 진료량을 늘릴 게 뻔하다. 이 결과 늘어난 진료비는 건강보험 재정의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 여파로 의료체계도 붕괴될 것이다. 의사 수 증원과 더불어 의료체계의 효율성을 담보할 기본틀 구축이 함께 진행돼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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