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진단도 치료도 '난관'...가시밭길 유전성혈관부종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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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도 진단도 치료도 '난관'...가시밭길 유전성혈관부종환자들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10.30 0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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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적 약제 있지만 한국 환자에겐 '그림의 떡'
갑작스런 부종이 부르는 사망 위협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오길"

"한국에 희귀질환치료제들이 지금보다는 빨리 들어와 환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희귀질환에 대한 의료진들의 교육도 현재보다 더 확대돼 적절한 치료와 긴 진단 방랑을 겪지 않게 되길 염원하고 있다."

민수진 유전성혈관부종환우회 회장이 신약접근성 관련 국회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민수진 유전성혈관부종환우회 회장이 신약접근성 관련 국회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5만명 중의 1명. 신체의 일부가 갑작스럽게 붓는 증상을 나타내며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질환. 유전성 희귀질환으로 예방적 치료제가 있지만 국내 급여 약제는 없는 질환. 

유전성 혈관부종(Hereditary Angioedema, HAE)을 설명하기 위해 표현되는 문장은 이렇게 집약될 수 있다. 아주 드문, 그래서 희귀질환에 속하는 유전질환이지만 그 특수성으로 인해 의료진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아 HAE를 앓는 환자들은 응급상황에서 처치 방법을 두고 의도치 않게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약제의 접근성 역시 요원한 상태다. 국내에는 1개의 부종을 막는 약제가 있지만 이 역시 증상이 발현되고 나서야 쓸 수 있다. 증상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는 약제는 글로벌 시장에 6개가 출시됐지만 국내에는 1개만이 허가 절차를 마친 상황이라 환자들에게 치료제 접근성이 요원한 상황이다. 

뉴스더보이스는 이와 같은 유전성혈관부종환자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지난 24일 민수진 한국유전성혈관부종환우회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수진 회장은 10대 초반부터 혈관부종 증상을 겪어왔지만 근 30년이 넘은 시간이 흐른 최근에서야 '유전성혈관부종'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기도가 부어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겼던 그는 자녀의 진단 이후 자신의 병명을 2018년이 되어서야 정확히 알게 됐다. 이제 자신의 증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의료진 보다 더 잘 아는 경지에 오른 민 회장은 2019년 환자들의 더 나은 치료를 위해 한국유전성혈관부종환우회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기꺼이 감수했다. 

환자들이 진단 방랑을 겪지 않고 부종이 생기기 전 적절한 약물로 질환을 조절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꺼이 '멍에'를 짊어진 민수진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HAE 환자들의 삶과 치료 현실을 짚어봤다. 

-유전성혈관부종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질환에 대한 소개와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소개 부탁드린다. 

얼굴이나 기도, 장기 등에서 부종이 급성발작 증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인구 5만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현재 국내에 진단을 받은 환자는 200여명 선이다.  

유전성혈관부종은 질환명에 '유전'이라는 단어가 붙어 환자들이 질환을 알리기 꺼려하는 부분이 있다. 나 역시 질환을 알리기 위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한다"는  댓글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유전 질환이 아닌 것이 드물다. 고혈압과 당뇨, 암 역시 유전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편견이라도 없애자는 취지에서 '유전성'이라는 말을 뺀 질환명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환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잦은 증상의 발현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이다.  부종 증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유전성혈관부종 환자들은 질환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내부장기의 부종은 빨리 치료되지 못하면 장기 기능에 문제가 발생될 수 있고, 극심한 고통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 후두부종의 경우는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하다. 

그나마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피라지르라는 급성치료 주사제가 있지만 이 역시  증상 발현 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또 있다. 환자들은 심할 경우 한달에 8번도 부종이 오는데 증상이 매번 발현되고 나서야 예방치료제를 써야 한다는 현실에 있다.  

또 이 주사제(피라지르)가 병원마다 있는 것이 아니고, 투약을 하는데 절차의 문제도 있다. 환자는 지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데 처방이 안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환우회에서는 어느 병원에서 피라지르 처방이 가능한 지를 공유하고 있다. 

-환자들이 생각하는 현 시점 최대 과제는 뭔가?

아까도 언급했듯이 환자들은 병명을 알지 못해 오랜 시간 고생하신 분들이 많다. 환자들은 모두 유전성 희귀질환이라는 사실에 진단 후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또 치료가 되지 않는 난치성 질환이라는 사실에 또 다시 마음이 무너진다.

하지만 예방치료제만 도입된다면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환우회는 절실히 예방치료제 도입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에서 예방치료제 선택지가 많아 지는 것, 지금 허가를 받은 탁자이로의 급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 희귀질환의 특성상 진단방랑을 겪는 환자가 많아 각 대학병원이나 지역병원의 의사 및 의료인들에게 HAE 질환에 대해 홍보해 진단율을 높이고, 5.16 HAE Day행사, SNS 활동, 언론인터뷰, 홍보영상제작 등을 통해 질환의 이미지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우회 탄생 계기도 궁금하다. 

내가 HAE 진단을 받을 즈음해서 교수님의 소개로 HAE 국제 환우회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계기로 2019년 9명의 환우들이 모여 한국HAE를 결성해 모임을 시작했고 2023년 현재 총 60명의 환우회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HAE KOREA는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인 피라지르의 보험급여 기준을 기존 1회에서 2개회 투여로 확대해 잦은 증상발현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 비영리법인 단체로 등록해 전국필 각지의 HAE 환자들을 모아 이 질환에 대해 공부하고 서로의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HAE 환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권리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신약접근성 토론회 등에 참석해 환자들의 상황을 알리고 약제 접근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글로벌환우회에서는 매년 5월 16일에 HAE DAY 국제행사를 여는데, 아시아 지역에서의 행사를 한국환우회가 열어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정부 정책과 관련한 견해를 말한다면?

환자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예방치료제 ‘탁자이로’가 외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식약처 허가를 받았음에도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못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환우회에서는 예방치료제 도입을 위해서 지난해 정부의 국정과제인 보험급여 적용확대 목표에 비추어 약제의 평가기준 및 절차 개정안에 대해 희망을 가져왔다.

하지만 지난해 개정안에 따르면 '소아의 삶의 질 개선을 입증한 약제'로 한정해 좌절했다. 이처럼 대상을 '나이'로 나누는 것은 큰 수의 성인을 배재한 정책으로 보완이 반듯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부도 여러 질환과 약제에 관한 기준을 정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입장인 것을 이해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사용 가능한 약제가 의료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사용이 불가하다는 것은 유감스럽다. 

정부가 출산율 저하와 노령사회로 급변하는 현재 상황에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희귀질환 약제의 경제성평가 생략 대상을 소아에서 성인으로 확대하도록 개정해 주길 바랄 뿐이다. 

-회장님 개인의 투병 이야기도 궁금하다. 

국제희귀질환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한 민 회장.
국제희귀질환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한 민 회장.

나는 12세부터 이 병을 앓으면서 근 30년간 진단방랑을 겪었다. 병원에서 아무도 나에게 이런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도, 알려줄 수도 없는 시간을 보내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며 얼굴이 붓는 증상을 보여 이것이 유전 질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2018년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후두부종으로 생명이 촌각에 달리자 처음 이 질환을 소개한 기자에게 연락해 서울대병원 강혜련 교수님을 찾아 진료를 받게 됐다. 이후 강혜련 교수님과 HAE 인터내서널의 도움으로 한국HAE 첫 모임을 가진 후 환우회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환우회 운영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지만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앞으로도 HAE KOREA 운영진은 HAE 환자들, 나아가 희귀질환 환우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앞으로 환우회 운영 방향 또는 계획이 있다면?

유전성혈관부종은 희귀질환이다. 확진받기까지는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 왜냐면 다른 질환으로 오진받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SNS 운영이나 지식문의를 통한 답변, 유튜브채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신규환우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대학병원을 통해 확진받은 신규 환우들은 환우회 가입을 적극 홍보하며 환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또 HAE 글로벌 조직과 적극 연계해 글로벌 워크샵 진행 및 세계 각국의 환자간 교류도 활발히 해 각국의 치료제 현황 및 제약사의 치료제 연구개발에 관한 자료도 수집해 다양한 치료제가 한국에 도입될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회장님의 개인적인 목표도 궁금하다. 

대부분의 질환은 유전질환으로 유전자 검사의 발전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HAE가 유전되지 않도록 유전자 검사를 통한 시술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유전자치료도 활발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유전자치료가 성공한다면 우리 HAE질병 뿐만 아니라 인간을 힘들게하는 많은 질병들이 후세에는 유전되지 않을 수 있다. 아픈 사람이 한 가정에 한 사람만 있어도 온식구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유전성 질환은 한가정에 여러명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반드시 유전자치료가 성공되길 바래본다 .

-인터뷰를 정리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느 12살부터 약 30여년간 병명도 모른채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왔다. HAE는 지금의 의술로 완전한 치료가 되지는 않는 희귀난치성 질환이지만 이제는 급성치료제도 있고 국내에서는 사용이 어렵지만 예방치료제도 들여오기 위해 노력중이기 때문에 국내 치료환경은 더 개선될 것이라 믿고 있다.

환우회는 앞으로 HAE의 진단율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원인을 알 수 없는 반복적인 부종이나 HAE의 증상이 보이는 환자들이 있다면 가까운 종합병원 알레르기내과에서 꼭 검사를 받으시길 당부드린다. 

그리고 확진을 받으신 분들은 HAE환우회에서 언제든지 질환에 대한 정보와 환우들과 교류를 할 수 있으니 질병으로 혼자 고통받지 말고 함께 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환우회 역시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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