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혁신신약 가치인정'과 환급제, 주저할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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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혁신신약 가치인정'과 환급제, 주저할 이유 없다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3.08.1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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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9월 중 이른바 '혁신신약 가치인정 약가제도'를 공개하기로 해 국내외 제약바이오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당초 4월 민관협의체를 통한 공개 계획에 비춰보면 5개월이나 지연된 것이다. 한마디로 '뜸'을 참 오래 들이고 있다.

이는 새 약가제도에 따라 추가 소요재정이 과다하게 발생할 수 있는 점 등을 우려해 정부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까닭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오창현 과장도 최근 국회토론회에서 구체적인 조건에 따른 재정영향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계획보다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새 약가제도의 초점은 혁신 신약에 대한 적정 보상과 등재 절차 개선이다. 필수의약품에 대한 적정보상, 원료수급 다변화에 대한 약가우대, 국가필수의약품 안정적 공급을 위한 약가제도 개선 등도 포함돼 있다고 오 과장은 설명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HK이노엔의 김기호 상무는 같은 날 패널토론에서 자사 국내개발 30호 신약인 위식도역류질환치료제 케이캡정(K-CAB정, 테고프라잔) 사례를 소개하면서, 향후 4년 내 글로벌 연매출 1조원 달성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사문화된 이른바 '7.7약가제도'를 부활시키거나 이를 뛰어넘는 제도가 도입됐으면 한다고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7.7약가제도'는 2016년 7월7일에 시행된 제도다. 당시 이 제도를 만드는데 참여했던 정부와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다시 말해 'K-블록버스터 신약'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은 유일하게 해당 제도의 혜택을 받은 케이캡정으로 머지 않아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케이캡이 받은 수혜는 두 가지 형태의 가격이다. 하나는 등재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사후관리에서의 가격이다. 구체적으로는 등재가격은 대체약제 가중평균가의 1.87배와 최고가 사이 수준의 가격을 보장한 것이었고, 사후관리에서는 사용량-약가연동 협상에 환급제를 적용해 약가인하를 유예한 것이었다.

케이캡은 이 두 가지 가격 혜택을 토대로 글로벌을 향해 비상했고, '1조원 글로벌 신약'의 꿈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바로 '환급제'다. 환급제는 위험분담계약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환자 치료제 접근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더구나 환급제는 경제성평가를 통해 실제가격 수준을 정하기 때문에 현행 약가제도의 '예외적 접근법'도 아니다. 

'혁신신약 적정 가치 반영 약가제도'에서도 이 환급제는 사후관리에서 뿐 아니라 등재과정에도 적절히 활용될 수 있다. 혁신 신약에 대한 적정 보상과 등재 절차 개선을 통해 '실제가격'을 높여 신약 개발 의욕을 고취시키면서 동시에 '표시가격'을 더 높여 글로벌 진출 시 가격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7.7약가제도' 논의 과정에서도 등재가격에 대한 환급제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위험분담제를 통한 환급제도가 이제 막 도입된 상황이었고, '예외적인 통로'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경제성평가 전문가나 시민사회단체의 '불투명한 가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환급제는 재정부담은 늘리지 않으면서 환자의 치료제 접근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국내 개발신약이 해외에서 적정한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보다는 기대할 수 있는 이점이 더 많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걱정도 이해는 간다. 우선은 새 약가제도 적용대상을 넓힐 경우 글로벌진출을 꿈꾸는 국내개발 신약보다 다국적 제약사 신약이 더 많이 수혜를 받고, 결과적으로 보험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또 환급제의 경우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 등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게 녹록한 과정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는 우를 범해서 되겠나.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유부단함이 습성화돼 있는 사람보다 불생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정부의 우유부단은 기껏 '7.7약가제도'의 변화된 형태를 마치 새로운 혁신제도인 양 자평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기호 상무와 제약바이오업계의 바람처럼 지금 필요한 건 '7.7약가제도' 부활을 넘어 이를 뛰어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등재가격 '환급제'는 놓칠 수 없는 좋은 소재다. 다만 '환급제'는 환자에게 실제가격과 표시가격 간 차액을 돌려줘야 하는 행정부담을 야기하는 불편한 제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최근 중증희귀질환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고민하는 환자접근성개선연구회 회의에서는 허가 단계에서 제약사들이 부담하는 '유저피(수수료)'처럼 환급제 적용을 원하는 제약사가 일정 비용을 부담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의지만 있다면 길은 만들 수 있다. 글로벌 신약으로 향하는 케이캡의 꿈을 보라. 제2의 케이캡 창출을 위한 쟁기질이 이번 새 약가제도를 통해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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