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가 일하는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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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엄마가 일하는 엄마에게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2.02.03 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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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를 무척이나 원했지만 육아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저는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한 무게를 자주 느끼곤 합니다. 

하소연 같은 저의 고민을 늘어놓으면 주변 선배 엄마들은 진심어린 조언을 쏟아냅니다. 그들의 인생을 관통한 경험담들을 들으면서 저는 위로를 얻기도 하고 때론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이리 한국사회가 일하는 엄마에게 관대하지 못할까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근래에 와서야 많은 기업들이 '일과 삶'의 양립을 위해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사회 저 밑에 깔려져 있는 변하지 않는 인식과 냉담한 현실은 아직도 냉랭하기만 합니다. 

오늘은 그런 생활을 겪어내 왔던 어머니 세대의 선배 엄마 이야기와 언니뻘 되는 선배 엄마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제 자신과 지인의 이야기를 담아보며 일하는 엄마의 인생이야기를 짧게나마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아이 둘을 시집 보낸 할머니가 된 엄마 

엄마 세대뻘인 세무사직원 왕언니의 이야기를 전해볼까 합니다. 그는 둘째 아이가 2살이 되던 무렵 남편을 사고로 여의면서 육아와 사회생활을 모두 겸해야 하는(그의 말에 따르면 '소용돌이 같은')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네살과 두살. 두 딸을 키우는 것이 온전히 그의 몫이 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께 의지하며 두 딸을 키우는 방법과 직장에 복귀해 일을 하며 두 딸을 키우는 방법이 그의 선택지 목록의 전부였습니다. 

우리의 왕언니는 스토리 전개가 예상되듯 처녀시절 다니던 직장에 찾아가 재취업이 가능한 지를 문의했고 마음 좋은 사장의 수락 속에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30여년 전, 여성이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그다지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던 시기에 그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해야 하는 사무직을 하면서 유아기 아이 둘을 키워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치 구국의 영웅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상황은 절실해서, 매일 아침 맘 속으로 '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주문 같이 빌었다고 합니다. 

아침 8시면 칼 같이 아이 둘을 어린이집(당시에는 놀이방이라고 했다네요)에 구겨 넣듯 밀어넣으며 원장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했다는 그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안좋을 때는 죄인이 된 심정으로 90도에 가까운 '절 같은 인사'를 하고는 눈물을 곱씹으며 출근버스에 몸을 실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본인의 상황이 너무 가혹해서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가지 않은 것을 여러번 후회 했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 마음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우리의 왕언니는 애 둘을 다 키워 자기 앞가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체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을 전하더군요. 

"아이둘 키우려고 악착같이 살다보니 아이들도 근성이 생겨서 앞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어. 첫째가 그러더라고 엄마가 해 준게 없어서 미안하다니까 우리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뭘 더해주냐고. 이미 다 받았다고. 엄마는 은퇴하면 뭐하러 놀러다닐지 궁리나 하라고. 그 말을 들으니 고마워서 눈물이 나더라고."

왕언니의 두 아이들은 억척같이 하루를 살아가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였고, 공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둘 다 스스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무슨 복을 받아서 이런 아이들이 내게 왔나"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둘째 아이가 "엄마한테 배웠지"라고 답하는 모습을 통해 그 복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는 아이를 낳고 복직한 제가 "순전히 내 욕심에 일을 하는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자 "지금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아이도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입지적 인물의 한때 고민 

최근에는 다국적제약사 CEO를 인터뷰 할 기회가 생겨 그에게도 '일하는 엄마'로써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구해봤습니다. 

그는 자신도 아이 둘의 엄마라면서 막내가 막 대학 입시를 치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는 사이 일을 계속 했기 때문에 (직업에서)전문성을 갖추게 됐고, 인간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워킹맘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직장에서 말하는 리더십과 인간관계를 배울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이 쌓여 성숙한 인간이 됐다는 것이지요. 

후배들에게 강의와 교육을 통해 일하는 엄마에 대한 경험을 전한다는 그는 "경력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아이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한 것이 결과적으로 본인의 인생에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 역시 일을 선택하면서 "내 이기심에 일을 하는 건가 싶어 고민했다"면서도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일하는 엄마는 대부분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해 자식에게 '채무의식'을 갖는 것은 비록 저의 세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일을 잠시 손에 놓게 된 동료  

저에게는 늘 긍정의 에너지를 전해주는 몇 안되는 취재원이 있는데, 그 역시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제 딸과 둘째의 터울이 얼마 나지 않아 육아 고민을 항상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사이였죠. 그런 그가 최근 사직서를 냈다고 합니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임계치에 도달한 그가 잠시 일을 놓기로 결정한 것이죠.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그였기에 결정을 하는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금방 돌아올 것 같긴 하다"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습니다. 나 역시 그에게 "잠시 아이들을 보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라"며 시덥지 않은 조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서 전한 왕언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죠. 둘다 밥을 먹다말고 눈물을 훔치면서 찔찔 짜는 통에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시간을 나눴습니다. 

그렇게 엄마들의 시간은 흘러갑니다. 아이들 역시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겠지요.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라고 했던가요. 아이들은 열심히 살아가며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엄마를 통해 인생의 모델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더 열심히 일을 하려 합니다. 아이와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요. 모든 일하는 엄마들이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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