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 기상시간과 '머피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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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 기상시간과 '머피의 법칙'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2.06.07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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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어나, 일어날 시간이야. 햇님이 떴다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아이의 목소리가 한참 단잠에 빠진 엄마의 귀에 날아와 꽂힙니다. 오늘도 유진이는 어제 밤늦은 마감을 하고 잠이 든 엄마를 새벽녘부터 깨우기 시작합니다.

망할. 여름의 아침은 너무 밝아서 아이는 커튼 사이로 삐죽이 드러난 햇빛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 엄마를 깨우기 시작합니다.

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5시 30분. 엄마는 새벽 2시가 다 되서야 잠이 들었는데 아이는 5시 반에 깨어있는 현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주제 '유진이의 기상과 엄마의 머피의 법칙'이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유진이의 이른 기상은 꼭 엄마의 게으름을 기반으로 한 늦은 마감이 있는 다음날 또는 엄마의 저녁미팅(주로 음주)이 있는 다음날 기가 막히게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아침부터 날카로운 신경질로 엄마의 잠을 깨운 따님은 기침 후 마실 물을 가져오라며 명령을 내리시죠. 얼떨결에 물을 가져다 드리면 '잠옷을 벗겨라', '아침밥을 차려내라'며 하루 일과를 차례차례로 지시하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여전히 잠이 덜 깬 상태로 과일을 깎고 빵을 굽고 우유를 데워 아침진지를 차려드립니다.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은 애미의 맘은 1도 모르는 채 "블루베리가 빠졌네", "요구르트가 먹고 싶네"하며 채워지지 않은 자신의 요구를 줄기차게 덧붙입니다.

사실 유진이에게 "조금만 더 자자"고 여러 번 회유도 해봤지만 '해가 떠있는 상태'에서는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가끔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 햇빛이 방안에 들이치지 않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요.

최근에는 무심한 해가 왜이리 점점 일찍 뜨는지 유진이를 낳고 해를 보지 못해 우울증에 걸렸던 3년 전(이사 전)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더 자고 싶어 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커튼을 젖히며 "아침이잖아. 해가 떴다고. 그럼 일어나야지"하며 하찮은 듯 타박을 이어갑니다.

"그래, 그래, 알겠다. 여기 아침진지 대령이요." 식사를 얼추 차려놓으면 그제야 좀 조용한 아침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일찍 아침을 맞는 날이면 식사를 끝낸 뒤 유진이는 엄마에게 책을 가져와서 "책을 읽어봐라", "모형을 맞춰라", "그림을 그리게 물통을 채워라"며 갖가지 요구를 시전합니다. 잠이 얼추 깬 엄마는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다 정신을 차리고는 "놀이는 유진이가 하는 거야."라며 뒤늦게 소심한 복수를 합니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면 아직 아침 7시가 안된 시간입니다. 엄마는 차라리 잘 됐다 싶어 저녁 반찬을 미리 만들어 놓습니다. 이전에 엄마가 부엌에서 아침 만드는 소리에 잠을 깼던 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잠시 느껴보려 하면 유진이는 어김없이 엄마를 호출을 합니다

이번엔 잘 드신 아침으로 원활해진 배변활동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죠. 아직 물 한 컵 마시지 않은 엄마는 부지런하게 아침 일상을 이어가는 따님의 뒤치다꺼리에 출근도 하기 전 진을 한번 뺍니다.

엄마는 아이 등원 후 출근 전철에 몸을 맡기고 어김없이 반성모드에 돌입합니다. 그리곤 전투태세로 전환하죠. "이제 정말 퇴근 전 마감을 꼭 하고야 말테다." 그런데 말입니다. 퇴근 전 마감은 사실 성공확률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성공한다고 해도 아이를 재우고 남은 저녁 시간을 누가 그냥 얌전히 자나요. 프리한 시간에는 엄마도 좀 놀아야죠.

마감을 성공하는 날에는 적어도 오후 11시에는 잠자리에 누워보려 합니다. 그래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아이를 마주하는 제가 좀 당당해 질테니까요. '머피의 법칙'아 이제 그만 좀 가렴. 유진이 방에 암막필름 붙였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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