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랑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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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이 뭐야?"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2.04.19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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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개월이 된 유진이는 요즘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물체의 용도에서부터 사람의 감정까지 모든 것이 궁금한 요즘입니다.

길을 가다 만난 강아지 두 마리의 크기가 서로 다른 이유도 궁금하고, 씽씽이를 잘 타는 오빠가 왜 자기를 안 보고 지나가는 지도 궁금하고, 아빠가 모는 차가 골목길에서는 왜 천천히 달리는 지도 궁금합니다.

보통 다섯 살 전후의 아이들이 던지는 "왜~?"라는 유형에서 조금 벗어난 질문을 던지는 탓에 머리가 잘 안 굴러가는 엄마는 찰나의 답변 순간을 자주 놓치곤 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아이에게 성실하게 답변을 잘 해주어야 하는데 정작 답을 해줘야 할 엄마가 준비가 안됐다는 걸요.

엄마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 개랑, 아기 강아지가 산책을 나온 건가봐, 오빠가 빨리 가야 해서 앞만 보고 가느라 유진이를 못 봤나봐. 골목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 차는 천천히 달려야 하는 거야 등의 '보이는 대로' 답변을 달아 줍니다.

유진이는 특유의 "아, 그래?"라는 말로 알겠다는 표현을 하지만, 본인이 원했던 답은 아니었는지 썩 만족하지 못한 표정을 보이곤 합니다.

아이는 더 나아가 최근에는 엄마의 감정 선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업무와 연관된 일로 씩씩 거릴 때면 "아이, 누가 엄마를 화나게 했어?"라며 같이 화를 내주기도 하고, 통화를 하다 호탕한 웃음이라도 나오는 순간에는 "재밌는 일 있어?"라며 같이 웃어주지요.

아빠와 집안일을 서로 미루며 투닥거리는 순간에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이는 엄마의 모든 순간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조금 두렵기도, 더 막중한 책임감이 들기도 하지요. 아이를 위해 잘 하고 싶은데, 그 '잘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소중히 여기듯 아이 또한 그러하다

이틀 전에는 바쁜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의 뒤통수에 대고 갑자기 "엄마,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라며 츤데레 저리가라는 듯 쿨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제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 제가 벙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급히 고무장갑을 빼고 아이 방으로 쫒아가 물었습니다. "유진아, 근데 사랑이 뭔지 알아?" 유진이는 책을 읽다가 눈을 위로 굴리더니 "아이~ 엄마, 그건 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거잖아~"라며 특유의 코 찡긋을 합니다.

책을 읽던 아이를 덥석 껴안으니 아이가 되묻습니다. 이번엔 진짜 답 같은 답을 내놓으라는 눈빛을 하고서요. "엄마는 사랑이 뭔지 알아?"

작고 귀여운 몸을 꼬옥 안고 저는 확신에 차서 말했죠. "이렇게 유진이와 매일매일 함께 하고 싶은 거. 유진이만 생각하면 행복해 지는 거. 그런 게 사랑이야."

아이는 뭔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마, 사랑은 참 좋은 거 같아"라는 말을 하고는 자세를 고쳐 앉더니 읽던 책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이거 요물이 아닐까. 순간 얄팍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리곤 다시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아이는 이렇게 엄마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합니다. 엄마가 조금은 모지리 같고 일만 하는 바보 같아도 같은 공간에서 자기와 함께 순간순간을 함께 하는 것으로 충분히 사랑을 확인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슬프거나 기쁘거나 화가 날 때 모든 순간을 같이 하려 합니다. 모지리 같은 엄마는 그 사이 '좋은 교육'이라는 하지도 못할 목표에 살짝 빠져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가 아직 '육아 트랜드'에 민감하지 않고, 또 주변에서 들려오는 위기감 가득한 조언들을 자주 까먹는다는 점입니다.

유진이를 낳고 붕어 수준의 뇌를 갖게 된 엄마는 아이 얼굴을 보면 '같이 놀기' 바쁩니다. 엄마와 함께 노는 것이 좋은 유진이를 위해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하면서도 엄마는 오늘 뭐하고 놀지를 생각합니다.

주말이면 아이를 들쳐 업고(물론 차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지만 저질 체력에도 쌩쌩히(?) 다니고 있습니다. 유진이가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해서요.

그렇게 저는 유진이가 질릴 때까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누려 보려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위하는 말은 "평생 해야 할 공부는 학교 들어가서나 해라"입니다. 사실 엄마도 공부는 정말 싫었거든요.

엄마가 전부인 유진이와 유진이가 전부인 엄마는 요즘 이렇게 서로 '사랑'을 확인하며 소소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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