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는 일하는 엄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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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 일하는 엄마예요."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1.12.16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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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엄마에 대한 편견이 있음을 여실히 체감합니다. 

최근 들어 제가 접한 세 건의 사례를 공유해 봅니다. 이런 사례들을 공유하는 이유는 '일하는 엄마'에 대한 사회적인 지지와 인식 개선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이유 중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엄마 자신의 삶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성으로써 경력을 이어 나간다는 것. 그것이 출산과 육아로 단절되는 시대적 상황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회적 연대'가 사라진 지금의 현실에서 엄마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희망합니다.  

케이스 1)"아이가 불쌍해요. 엄마가 일해서.

더 정확한 멘트는 "언니가 일해서 유진이가 불쌍해요"였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문장을 말한 이가 출산 전 전문직에 종사했던, 그래서 종종 "일하는 것이 즐겁다" 말했던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그의 말에 "유진이가 왜 불쌍해요? 이렇게 엄마랑 신나게 잘 노는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사실 속에서는 천불이 났습니다. 

그는 다시 "엄마가 일해서 아이랑 있는 시간이 짧잖아요"라며 받아쳤습니다. 

사실 전 이런 문장을 동시대에, 더군다나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서 들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일하는 여성의 아이는 그럼 다 불쌍하다는 말인가'라는 일반화의 오류가 머리 속에 떠오르자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그 다음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가 궁금했습니다. "자기는 일을 안해서, 그래서 아이에게 올인해서 행복해요?" 

예상치 못한 제 질문에 그는 잠시 눈이 동그렇게 커지더니 "그럼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저는 그의 말이 사실은 '현장으로 복직해 일하는 엄마'에게 느끼는 질투심과 전문직이었지만 지금은 돌아갈 직장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그녀의 상황이 이해됐지만 마음 한편에는 큰 생채기가 났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렇기로서니 남의 자식을 불쌍하다니요. 게다가 그는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일하는 엄마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대놓고 긁어놓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그의 말들을 들으며 조금 슬퍼졌습니다. 상대가 '직장 복귀가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전도유망한 작가였지만 아이가 생겨 전업을 선택하게 된 전형적인 우리 시대 엄마들 중 하나입니다. 

출산과 육아 후 자신이 일하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를 매번 저의 상황과 비교해 말하던 그. 저는 그가 육아 후 느끼는 일에 대한 그리움의 단면을 바라봅니다. 

생각의 끝에서는 '아이를 낳으라고 권유하는 사회'지만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 하는 여성에 대한 지원은 거의 전무한 현실에도 화가 납니다. 

"응? 나는 출산후 회사에 복귀해서 일하고 있는데 뭔소리야?" 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네.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직장에 소속된 '정규직'일 경우에는요. 

엄마 개인의 노력으로 일자리에 다시 나선다는 것은 사실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초저출산시대에 고리를 끊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케이스 2)"아이를 키우느라 시간이 없는 건 알겠는데, 기사 퀄리티가 떨어진다"

이 이야기를 동종업계 종사자에게 들었을 때 충격은 어마어마 했습니다. 기사를 못 쓰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라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쳤지만, 상대가 나를 평가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육아'를 지목한 부분에 생각이 미치자 한숨이 나왔습니다.  

육아하는 여성은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회적 편견을 고스란히 반영한 그 말에 저는 사실상 넉다운 됐습니다. 그 뒤로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어졌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실제 그 말을 들은 이후 쓴 기사를 보면 정말 뭔가 부족한 것이 제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 이전 기사들도 그랬을까요? 물론 제 주관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새벽 잠을 줄여가며 쓴 이전 기사들은 그리 크게 탓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나 스스로가 "이런 평가를 들을 바에는 그냥 잠이나 자자"며 기사 쓰는 시간을 실제로 줄였다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등원하는 9시부터 저녁을 먹기 직전인 오후 5시까지 최대한 일을 끝내고 아이가 잠이 든 오후 10시부터 새벽까지 추가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해내던 생활 패턴을 바꿔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 취재를 해야 하는 기획기사들이 사라지고, 단타형식의 자료를 묶어 쓰는 종합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스스로 일하는 시간을 줄인 결과이지만, 그 근본에는 이런 평가를 받을 바에야 차라리 그렇게 하고 말지라는 제 판단이 만들어낸 결과지요. 

저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전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아직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지적을 받아야만 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럼 나 말고 다른 엄마들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주변에 친한 엄마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반반이었습니다. 한 엄마는 "주변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했죠.  

'육아=업무능력'을 연계시켜 평가하는 시선이 존재하는 한 '일하는 엄마'는 여전히 회사의 '잉여직원'이란 낙인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업무는 업무로만 평가합시다.   

케이스 3) "일 해서 뭐 큰 돈을 번다고, 쯧쯧"

유독 잘 마주치는 동네 한 할머니는 주말, 놀이터에 나온 나를 보자 반가운 듯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시더니 "그래서 엄마는 일 다녀?"라며 대뜸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말하자 저 말이 던져졌습니다. 

"애 키우면서 고생하네, 애쓴다" 정도의 말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일해서 뭐 큰 돈을 번다고. 쯧쯧"하며 혀를 차는 할머니의 말이 연타로 나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노인공경에 꽤나 신경쓰는 타입이긴 하나  이유없이 남에게 공격 당하는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 저는 벌떡 자리에 일어나 고개를 까닥하고는 아이를 불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최근들어 접하고 보니 유독 제가 이런 일을 많이 경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가 지금의 제 삶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부족할 망정, 아이와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충분한 애정을 주고 있고, 일을 통해 많은 돈을 벌진 못해도 내 스스로의 일에 대해 애정과 열정을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굳이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으려고도 노력합니다. 왜냐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우울한 마무리로 끝낼 수는 없죠. 그래서 희망적인 멘트를 덧붙일까 합니다. 

아이의 하루 일과 중 절반을 함께하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원장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어머니, 유진이는 사랑 받은 티가 나요. 원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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