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적응증 기반 약가 결정', 이제는 전향적으로 봐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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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적응증 기반 약가 결정', 이제는 전향적으로 봐야 할 때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4.02.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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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신약이 새로 등재하면 (급여 관점에서는) 더 이상 신약이 아니고 다른 신약들에 대한 급여평가를 이어서 검토했는데,  지금은 등재하고 나서 바로 급여확대 신청이 들어와서 (같은 약인데) 계속 신약(으로) 검토하는 것 같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은 지난 20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주최하고 뉴스더보이스헬스케어가 주관한 '면역항암제 10년, 성과와 과제' 국회정책토론회에서 이른바 다적응증 약제들에 대한 급여평가와 관련해 이 같이 말했다. 

이는 기등재된 약제여도 적응증별로 사실상 새로 등재되는 신약과 동일한 수준에서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현 약제 급여 평가 방식을 간접적으로 설명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평가는 이렇게 적응증별로 하는 데 가격은 적응증별로 달리 정하지 않고 평가된 가격 중 최저가 이하를 인정한다는 데 있다. 

이번 토론회 주제발표자 중 한 명인 동덕여대 약학대학 유승래 교수에 의하면 이는 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운영하는 HTA 국가들이 이전에 전통적으로 채택해온 평가방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러 적응증이 있는 경우 최적의 순서를 정하는 전략을 채택하도록 제약사들을 유인한다. 

실제 건강보험공단 의뢰로 '사용범위 확대 협상제도 성과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를 수행한 연세대 한은아 교수팀은 보고서에서 제약사들이 채택하는 이런 전략으로 'Narrow   first'와 ‘Broad first’, 2가지를 언급했다. 

한 교수팀은 'Narrow first'는 가장 높은 임상적 효과를 보이는 적응증을 가장 먼저 출시해 차별화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이는 일반적으로 잘 정의된 소규모 환자에 제한되며, 특히 제품이 불완전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승인되는 경우 사용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공적인 사례로 키트루다를 꼽았다. 

또 'Broad first' 전략은 가장 광범위한 환자 집단 또는 가장 큰 적응증을 먼저 출시하는 전략으로, 초기 수익 기회를 극대화하고 가장 시장이 큰 적응증에 조기에 집중함으로써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 교수팀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듀피젠트와 같은 면역치료제들의 일반적인 전략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다적응증 약제에 적응증별 최저가를 부여하는 전통적 방식을 따르는 제도 환경에서 제약사들은 임상을 통해 효과를 입증한 적응증 순서나 미충족 수요(unmet need) 등이 아닌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선택과 전략을 우선 고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한국보다 먼저 HTA를 도입한 선도국가들은 적응증별 평가결과를 약가에 반영하는 이른바 'IBP(indication based pricing)' 제도로 방향을 선회한 지 오래다. 가격 반영방식은 '단일 가중평균가'와 '적응증별 환급율 차등 적용', 두 가지가 있는데, 둘 중 한가지만 채택하거나 두 가지를 혼용하기도 한다. 유 교수는 "단일 가중평가는 영국, 호주, 독일, 프랑스 등이, 적응증별 환급율 차등적용은 스위스,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이 채택하고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한국에서는 아직 전통적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가장 처음 등재되는 첫번째 적응증 그룹의 가격이 해당 약제의 전체 급여 '라이프-사이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약가 반영에 가장 유리한 적응증부터 급여권에 진입하고, (상대적으로) 가격 인하폭이 적은 적응증 순으로 진입할 유인이 존재한다"고 했다. 유 교수는 따라서 "(다적응증 약제에 대해서는) 공급자 입장, 환자 접근성, 재정관리 간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면서, 'IBP'를 고려 가능한 대안으로 제안했다.

의약품에 대한 급여평가는 가치와 근거에 기반한 평가가 기본 원칙이며, 앞서 언급한데로 적응증별로 임상적 가치와 비용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하지만 약가는 이게 반영되지 않는다. 평가와 가격 결정방식이 일관적이지 않은 것이다.

유 교수가 'IBP에 주목한 건 약가제도의 기본 운영원리를 준수하면서 환자 접근성과 합리적 재정지출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는 적응증별 비용-효과성 평가를 원칙적으로 수행하면서, 역시 적응증별 추가재정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물론 이 방식은 패널토론자로 나선 건강보험공단 정해민 약제관리실장의 지적처럼 우려점도 적지 않다. 

정 실장은 "적응증별 약가라든지 환급률이 달리 운영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별도의 청구나 급여 코드가 부여돼야 하고, 환자 본인부담 산정 혹은 환자에게 별도로 추후에 별도 환급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등 건강보험 청구 체계의 변경이 필요하다. 또 암종별로 본인부담액이 상이할 경우 환자들이 받아들이겠느냐 등이나 위험분담 계약이 완료됐을 경우에 가격의 불투명성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선별급여 제도의 취지를 고려해서 환자의 치료 접근성과 동시에 약제의 임상적 혁신성, 비용 효과성, 재정영향, 청구코드 별도 부여에 따른 행정 비용 등에 대해 유관기관과 관련 단체들이 같이 종합적으로 세밀하게 검토해서 도입 방안을 찾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정 실장의 이런 우려는 수긍할만한 지적이다. 하지만 청구체계 변경이나 환급방안 등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암종별로 본인부담액이 달라졌을 때 환자들의 수용성 여부와 계약이 만료됐을 때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우선 환자 수용성은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가 필요한 대목인데, 신약 가격 결정방식의 특이성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어 보인다. 일반 상품과 달리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해 해외에서 들여오는 신약은 원가에 기반해 가격이 결정되지 않고, 적응증별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정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단일가격을 정하는 게 오히려 더 비합리적이다. 

더 나아가 'IBP'는 신약 급여평가를 사실상 좌우하는 ICER 임계값을 더 높여 탄력 적용하는 것과 병행하면, 항암제나 희귀질환약제의 신속 등재를 이끌 수 있고, 건강보험재정 관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환자에게 불리한 선택이 아닌 것이다. 

계약 만료 시 가격의 불투명성의 경우 계약 당시 건보공단과 제약사 간에 합의를 통해 적응증별 가중평균가 또는 최저가 적용 여부를 결정하면 될 사안이다. 

이번 정책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오창현 보험약제과장은 기본방향으로 'IBP', 보완적 방안으로 '다년도 다적응증 관리계약(MYMI)'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유 교수의 제안에 대해 별도 언급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사견을 전제로라도 기권하지 않고 발제자의 제안에 의견을 제시해왔는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조만간 인사이동이 있을 경우 자칫 후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다만 합리적인 눈으로 보험의약품 정책 실무를 책임져온 오 과장도 충분히 유 교수의 제안에 공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적응증 기반 약가 결정' 방식은 이미 HTA 국가가 채택하는 기본적인 약가결정 방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는 전향적으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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