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은 우동 먹을 때 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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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은 우동 먹을 때 쓰지. 뭐."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2.09.05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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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6개월

유진이는 엄마의 휴가기간 동안 두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기저귀 떼기. 또 다른 하나는 젓가락 사용해 식사하기.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기저귀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뗀 상태이지만, 아쉽게도 젓가락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이에게는 각자 맞는 '때'가 있다는 것을 자주 망각하는 엄마 덕분에 유진이는 평소 좋아하던 아기상어 젓가락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식사 때마다 "젓가락을 써볼까"하고 권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됐기 때문입니다. 포크와 수저로 충분히 밥을 잘 먹고 있는데, 그래서 귀여운 아기상어 젓가락은 기분이 좋은 날 찾는 특별한 존재였는데, 엄마가 이런 자신의 기분은 아랑곳 않고 매일 만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속된 말로 빈정이 상한 아이는 젓가락을 가져다 주면 보란듯이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먹는 모습까지 보였죠.

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솔직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습니다. 유진이도 엄마가 설정한 '젓가락 쓰기'라는 목표가 자신에게 얼마나 폭력에 가까운 강요인지를 여과없이 표현했습니다.

"엄마, 나 이제 아기 상어 싫어졌어. 이거 치워죠."

아이에 말에 순간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아이의 얼굴 표정을 보고는 바로 젓가락을 치웠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의자에 즐거운 얼굴로 오르던 유진이가 젓가락을 보자마자 거의 울상에 가까운 얼굴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바로 사과했죠.

"유진이가 젓가락 쓰는 게 싫은지 몰랐어. 엄마가 미안해."

엄마의 사과에 유진이는 바로 수긍하고 괜찮다는 표현도 해줍니다.

"괜찮아 엄마. 젓가락은 우동 먹을 때 쓰지 뭐."

이때 진심으로 아이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설정해 놓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이에게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줬기 때문이죠.

유진이는 가끔 찾는 젓가락을 그 이후 론 찾지 않고 있습니다. 거의 한 달에 가깝게요. 온라인 쇼핑으로 다음 단계의 젓가락 모델을 세심히 골랐던 엄마는 장바구니에 남은 젓가락 세트를 멍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생각해보니 유진이는 20개월을 전후로 젓가락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바보 같은 엄마가 씻는데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젓가락 내놓는 것을 게을리 했던 탓에 아이는 자연스럽게 젓가락과 멀어졌던 것이죠.

처음 접했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식사 시간에 갖다 두기만 했어도 사용했을 젓가락을 굳이 들이밀어 아이가 거부하는 사태까지 유발한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자연스럽게 하면 될 일을 긁어 부스럼 낸다"며 어김없이 핀잔을 줍니다. 사실인지라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미련한 자신을 탓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디자인의 젓가락을 식탁에 올려두면 신기해서라도 다시 쓰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가능성을 붙잡는 저는 참으로 미련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래도 조금은 인내심을 발휘해 아이가 젓가락을 다시 찾는 날 장바구니에 담긴 젓가락 세트를 주문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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