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철여행과 아토피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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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철여행과 아토피 캠페인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2.10.11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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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되면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저는 늘 토요일과 일요일의 일정을 주중에 세워두곤 합니다.

네 살 된 딸아이는 활동량이 점점 많아져서 웬만한 남자아이처럼 뛰어 놀기 때문에 충분한 육체활동을 낮 시간에 채워야 합니다.

첫 전철여행의 시작점인 정동길에서 옷을 입은 나무와 함께한 유진이.
첫 전철여행의 시작점인 정동길에서 옷을 입은 나무와 함께한 유진이.

그렇지 못한 날이면 밤마다 자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시는 따님을 두었기에 엄마는 날이 좋은 주말이면 숙명처럼 드넓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주로 공원)을 찾거나 새로운 탐험(기차타기, 배타기, 전철타기 등 새로운 교통수단 활용한 중거리 여행)을 제공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마침 10월 첫 번째 주 토요일은 다국적제약사 중 한 곳이 아토피 환자들을 위한 캠페인을 서울 돈의문에서 연다고 하기에 첫 전철 여행을 해보자 다짐을 하고 있던 터였죠.

네 살짜리 아이와 첫 전철 여행의 시작은 무난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띠띠뽀'를 탈 수 있게 된 유진이는 전철 플랫폼에 들어서자 방방 뛰면서 "띠띠뽀를 정말 타는거야?"라며 연신 엄마에게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전철을 타고는 냉정하게 자리 양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엄마와 달리 유진이는 자리에 앉은 사람, 서 있는 사람, 창밖의 스치는 풍경을 보며 연신 "신기하다"를 연발하고 있었죠.

밖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자꾸만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참 평화로웠는데 말이죠. 엄마는 안양을 조금 지나는 지점에서부터 서울 시청까지 '생으로' 딸아이를 안았다 내려놨다하는 극기훈련에 돌입해야 했습니다.

엄마가 거의 지쳐갈 무렵 마음씨 좋은 할머니의 양보로 자리에 앉게 된 유진이는 엄마의 피로는 생각도 않고 전철 밖을 바라보며 "사람이 타", "사람들이 내려", "엄마, 전철이 빨리 달려", "차들이 작아 보이네"라며 연신 전철 안팎의 상황을 중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외출에 많은 어르신이 웃음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반갑다 인사를 해주셔서 유진이는 전철이라는 교통수단을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시청 역에 내려 정동길에서 데이트하듯 산책을 하고 도착한 돈의문박물관마을에는 '2022 아토피 인식개선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엄마, 저 아저씨 무섭게 생겼어"

2022 아토피 인식개선캠페인이 열린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유진이. 
2022 아토피 인식개선캠페인이 열린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유진이. 

아토피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장을 둘러보던 유진이는 큰 스크린에 비춰진 한 환자의 모습을 마주하자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마, 저 아저씨 무섭게 생겼어"라며 손을 끌어당기더니 안아달라고 발버둥을 칩니다.

생채기가 가득한 환자의 얼굴이 아이의 시선에는 '다름'보다는 '무서움'으로 비춰진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 해줘야 할 지 잠시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죠. "아저씨는 병에 걸렸어. 아토피라는 피부가 아픈 병이야. 아저씨가 아토피가 걸려서 아프고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거야."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더니 이내 "해진이(가명)도 아토피 있어. 아저씨는 못생겼어. 얼굴이 울퉁불퉁해. 해진이는 빨간데"라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합니다.

투박해 보이는 환자의 얼굴이 친구가 앓고 있는 질환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유진이는 그래도 싫은 마음은 어쩔 수 없어서 "아저씨 그만 볼래"라며 엄마의 손을 이끌고 계단으로 향합니다.

다른 전시장에서는 "나는 000한 사람입니다"에서 000을 채우는 코너가 있어서 유진이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유진이는 친구가 생각나서였는지 "따끔따끔한"이라는 표현을 엄마에게 써 달라고 요청합니다.

메모지에 붙은 단어를 유심히 보던 유진이는 다시 친구가 생각났는지 "해진이는 약 발라"라며 엄마에게 설명을 해주네요.

전시장을 둘러보고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은 유진이는 아프리카 공연에 춤을 추고 즐거워하다 정작 엄마가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토크콘서트가 시작되자 쿠키를 사 달라, 천연 오일을 발라보자, 이제 나가자 하면서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습니다.

체념하며 자리에 일어선 엄마는 평소 로망이던 정동길 카페에 도전해 봤습니다. 여유로운 차 한잔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분위기에 잠시 취해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는 있었거든요.

그러나 이 역시 카페 인테리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유진이 덕에 짧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엄마는 '차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원샷'을 하고는 서둘러 나와야 했죠.

엄마의 심정을 모르는 유진이는 가로수에 둘러진 자수를 보며 신기해 하다가 버스킹을 하는 가수 노래에 춤을 추다가 하면서 시청역에서 띠띠뽀와 다시 조우했습니다.

"지금 자면 안돼" 엄마의 호소에도 단잠에 빠져버린 딸. 

운이 좋게 돌아가는 길의 띠띠뽀는 자리를 내주어서 유진이와 엄마는 편하게 앉아 올 수 있었죠. 띠띠뽀를 다시 타서 기분이 좋았던 유진이는 오늘 하루 경험했던 일을 재잘대더니 집을 10분 정도 앞둔 정거장에서 그만 꿈나라행을 택했습니다.

덕분에 엄마는 14킬로가 나가는 딸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완벽한 체력훈련'을 마무리 할 수 있었죠.

간만에 엄마도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꿀이 떨어지게 달콤함 낮잠을 즐겼습니다. 늦은 낮잠으로 비몽사몽한 유진이를 깨워 저녁을 먹인 엄마는 저녁잠 투쟁을 예상했지만 유진이는 한 시간 동안 뜨끈뜨끈한 탕 목욕을 즐기더니 다시 9시에 꿈나라로 직행했습니다.

엄마의 극한 체력 훈련이 보상받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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