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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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몇이야?"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01.16 0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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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 8개월 사이 아기에서 어린이가 된 유진이.
불과 1년 8개월 사이 아기에서 어린이가 된 유진이.

유진이는 새해가 들어서면서 5살이 됐습니다. 이제 막 숫자 개념을 인지하기 시작했지만 하나와 둘 그리고 셋의 차이는 아는데 넷과 다섯은 헷갈리는 모양입니다.
 
새해가 되면서 "이제 유진이는 다섯살이야"라고 말해주면 "왜 다섯살이야?"하고 되묻고는, 설명을 들은 뒤에도 여전히 나이를 물어보면 "세살" 또는 "네살"이라고 답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유진이는 엄마를 닮아 이른 수포자의 길을 걸으며 문과로 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곤 합니다. 

이렇게 유진이는 새해가 되면서 자신의 나이가 다섯살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되짚어보니 이렇게 열심히 아이에게 나이를 인지시키는 것은 "왜 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답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나이'에 대한 인식 때문입니다. 놀이터나 키즈카페, 심지어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이름'보다 '나이'를 먼저 묻기 때문입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을 '나이'에  맞추다 보니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웃긴 상황을 하나 예로 들어볼까요? 유진이는 요즘 겨울이 되면서 외부 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해 엄마 손에 이끌려 아동도서관을 갑니다. 사는 동네에 시립도서관이 있어 주말이면 가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다행스럽게도 도서관에는 아담한 '실내놀이터'가 있습니다. 

도서관 1층으로 들어가서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대충 몇권 보고는 바로 2층 실내놀이터로 향합니다. 그 곳에는 미세먼지와 추운 겨울 날씨를 피해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의 성화에 끌려나온(대부분 자의반 타의반으로 온)부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피곤을 주체할 수 없는 얼굴에 핸드폰을 꼭 잡은 손을 한 부모들은 가끔  "조심해", "그러면 친구가 다쳐", "천천히 뛰어" 등의 이야기를 싸이렌처럼 울리며 관심은 없지만 주시하고 있음을 인지시킵니다.  

유진는 성격이 다소 예민한데다, 놀이 중심에 끼지 못하면 분에 못이겨 울음을 터트리곤 하는데 이런 아이의 울음은 '순간을 놓친 다른 부모'들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안함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우리 애가 뭘 잘못 했나요?"라는 물음에 "아니예요. 저희 애가 그냥 신경질 부린거예요"라는 답변을 들려주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대부분 "아이고, 몇살이야? 귀엽게 생겼네"하는 궁금하지도 않는 질문을 던집니다.  

아이들 역시 같은 공간에서 노는 유진이의 이름보다는 "너 몇살이야?"를 먼저 묻습니다. 이 사회에서 서열관계의 기본인  '나이'가 그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알고 있는 것이죠. 

아쉽게도 나이를 혼동하고 있는 유진이는 가끔 "세살"이라고 답했다가 "네살"이라는 답변도 들려줘서 아이들은 "뭐야? 나이도 몰라"하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유진이는 "나는 임유진인데"라고 소심히 말하고는 엄마의 품으로 달려와  서글프다는 듯 크게 울음을 터트립니다. 

유진이는 금세 진정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어서 다시금 엄마에게 "내 나이가 몇이야?"하고 묻곤 합니다. 엄마에게 나이를 확인한 유진이는 나이를 물었던 상대에게 다가가 "나 다섯살이야"하고 알려줍니다. 

상대는 관심이 없는데 유진이는 끝까지 따라가서 "나 다섯살이야. 임유진"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유진이는 자신의 나이와 이름을 제대로 전달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상대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몇번이곤 외칩니다. 마치 "물어봐 놓고 왜 관심이 없어"라고 되묻듯 말이죠.

아이들 노는 것에 개입을 잘 하지 않는 엄마지만, 이럴 때면 유진이에게 한번은 확인 작업을 해 줍니다. 

"유진이 다섯살 인거 다 들렸어. 임유진인 거 저 오빠도 알아. 엄마도 분명히 들었어."

엄마의 확인이 완료되면 유진이는 방긋 웃음을 짓고는 재빨리 놀이에 다시 집중합니다. 

그렇게 아이는 요즘 '나이의 듦'과 소심한 적응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 즈음에서 엄마의 염려 역시 짙어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도전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과도기를 오는 6월 겪어야 하니까요. 

'만'이라는 나이 개념이 적용되는 올해 6월에 이제 막 '다섯살'을 익히기 시작한 유진이는 아마도 혼돈의 시기를 또다시 겪을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아찔한 올해 6월. 다섯살로 쭉 가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나이를 덜 먹어서 좋지 않냐?"는 질문을 간혹 듣는데, 사실 나이 마흔 줄에 들어서면 숫자 하나를 더하고 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이'에 민감한 때는 아마도 '청춘'이었을 때가 아닌가 싶네요. 한 해, 한 해의 궤적이 뚜렷이 발자국으로 남을 수 있었던 그 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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