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이별과 유진이의 앓이 
상태바
세번째 이별과 유진이의 앓이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1.11.22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 

사랑하는 가족 세명이 하늘로 떠났습니다. 

엄마는 제가 서른이 되던 해에 심근경색으로 급작스럽게 떠났고 아빠와 오빠는 올해 초겨울과 가을에 가족의 곁을 떠났습니다. 

아빠는 지난해 가을, 날이 좋은 한 낮을 볕을 쬐려고 짦은 산책을 나갔다가 집 현관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고관절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어른의 골절사고는 여러분이 예상하시는 대로 끝이 났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양생활 중 심정지 상태에 놓였던 아빠를 언니가 긴급하게 조치해 가족과의 이별을 준비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는 점입니다. 

엄마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황망해 했던 경험을 가진 자식들에게 조금은 이별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였는지 아빠는 그리도 싫어하는 병원 생활을 5개월이나 감내하시면서 버텨 주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빠와의 이별은 '준비'가 됐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아빠를 모실 곳도 알아보고 장례치를 곳도 정해두고 언제든지 아빠가 원하시는 시점에 가시면 되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돌아가실 때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았죠. 상실의 슬픔은 피할 수 없었지만요.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장례'는 20~30년이 지난 후에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라는 게 한치 앞을 못보는 것 같습니다. 2년 전 뇌경색으로 한차례 병원 신세를 졌던 오빠가 요양겸 건강관리를 위해 제주도에서 생활하다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죠. 

오빠는 올케언니에게 떠나기 전날 이웃들과 즐겁게 운동을 마치고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며 저녁을 먹을지 말지 모르겠다는 한가로운 고민을 전했다는데, 그게 두 사람의 마지막 통화가 됐습니다.   

가족의 부재와 유진이의 앓이 

아버지와 이별에서 저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유진이가 엄마의 심신이 지쳐할 새를 주기 싫었는지 할아버지를 보낸 직후부터 끙끙 앓았기 때문이죠. 장례 이후 일주일을 앓았던 유진이는 엄마의 출근이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정상 컨디션을 보이며 잘 놀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삼촌의 장례 이후의 모습도 비슷했습니다. 한참을 앓아대던 유진이는 엄마의 출근 일정이 임박한 주말이 되어서야 슬슬 컨디션을 회복하기 시작하더니 월요일 오전 엄마의 출근 때는 "빠이~빠이~"하며 웃는 얼굴로 보내주었습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앓이'는 유진이가 사랑했던 가족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절차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반추해보면 유진이가 보였던 일련의 행동들은 할아버지와 삼촌을 보내는 과정에서 여러 모습이 겹쳐집니다.

할아버지 장례 때 영정 사진을 보며 "할아버지~할아버지"하며 마치 곁에 있는 존재처럼 친숙하게 부르던 모습은 오빠의 장례에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삼촌의 영정사진을 보며 "삼촌~삼촌~. 사진 말고 삼촌 데려와"라며 해맑게 웃던 유진이는 엄마와 이모의 눈물을 쏙 빼놓았죠.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이 위축이 들 법도 한데 유진이는 놀이터처럼 친숙하게 사방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장례식 기간에는 절대 낮잠을 자지 않으려고 버티며 장례식장 공간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모습도 비슷했고, 가족 중 누군가가 울면 이상하리만치 먼저 다가가 꼬옥 안아주던 모습까지 닮아 있죠. 

사흘간의 장례기간을 잘 버티던 유진이는 할아버지와 삼촌을 보내는 마지막 날 안자던 낮잠을 달콤하게 잘 자던 모습까지 닮아 있습니다. 마치 꿈 속에서 할아버지와 삼촌과 마지막 이별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할아버지 때도 그랬지만 삼촌을 보내고 난 뒤로 유진이는 한번도 다른 가족 앞에서 두 사람의 호칭을 부르는 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할아버지가 병원에 있는 동안 할아버지 침대에서 놀기를 좋아했던 유진이는 할아버지를 떠나 보낸 이후로는 그 침대 오르는 일이 없었고, 삼촌의 부재 역시 이미 깨달은 것처럼 혼자 온 숙모 옆에서도 삼촌을 찾지 않고 곧잘 놀곤 합니다. 

그렇게 유진이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삼촌을 나름의 이별과정을 거치며 잘 보내준 것 같습니다. 혹독했지만 짧고 강렬하게요. 아직 엄마는 그 근처에 가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