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성 대장암 환자의 생존 기회를 넓히기 위해 3차 이상 치료제의 건강보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왔다. 의료진은 해외에서 생존기간 연장과 질병 억제 효과를 입증한 후속치료제들이 국내에서는 대부분 비급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와 환자단체는 경제력에 따라 치료 기회가 달라지는 현실을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정부는 미충족 의료수요와 질환 특성, 삶의 질을 고려해 급여 절차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조기 치료접근이 생존을 좌우하는 전이성 대장암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좌장은 이재현 성균관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겸 의약품규제과학센터장이 맡았다. 이명아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와 구동회 강북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주제발표를 했으며, 전이성 대장암 환자 공헌봉 씨와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 어윤호 데일리팜 팀장, 이소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 김민정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이 패널토론에 참여했다.
의료진 "생존 연장과 일상 유지 함께 고려해야"
첫번째 주제 발표자인 이명아 교수는 이날 대장암이 국내에서 발생과 사망 부담이 모두 큰 암종이며, 전이 여부에 따라 치료 성적이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국소 대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93.8%지만 전이성 대장암은 20.3%로 낮아진다. 이 교수는 재발과 전이를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1·2차 치료 이후에도 후속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생존 연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옥살리플라틴과 이리노테칸 기반의 1·2차 표준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지만, 이후 사용하는 프루퀸티닙과 레고라페닙, 트리플루리딘·티피라실과 베바시주맙 병용요법 등은 대부분 비급여다.
이 교수는 “허가된 치료제라도 비용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거나 치료 도중 중단하는 사례가 있다”며 “치료 목표는 단순한 생존기간 연장이 아니라 가능한 한 정상적인 생활과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NGS 검사와 임상시험 접근성 확대도 주문했다. 유전자검사 결과가 없으면 맞춤치료나 신약 임상시험 참여 기회도 제한될 수 있는 만큼 신약 도입과 급여, 정밀의료 기반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두번째 주제 발표자인 구동회 교수는 해외에서는 다양한 3차 이상 치료제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서는 젤로다를 제외하면 사실상 급여 선택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레고라페닙과 론서프·베바시주맙 병용요법, 프루퀸티닙 등이 임상시험에서 전체생존기간 연장과 질병조절 효과를 입증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프루퀸티닙은 3차뿐 아니라 여러 치료제를 사용한 4차 이상 환자에서도 생존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그는 프루퀸티닙 허가 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한 환자 2명이 이전 치료 실패 후에도 5개월 이상 질병 진행을 억제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한 사례도 제시했다.
구 교수는 “특정 약제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1·2차 치료 이후 건강보험 보장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며 “환자의 전신 상태와 누적 부작용, 약제별 특성을 고려해 적절한 순차치료를 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장암 환자 "치료제가 아니라 삶을 이어갈 기회"
전이성 대장암 환자인 공헌봉 환우는 치료 선택지가 사라진 환자들이 겪는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전했다.
공 씨는 “환자에게 가장 힘든 것은 암 자체만이 아니라 ‘급여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이라며 “잦은 항암치료와 검사로 직장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 퇴사를 결정했고, 이후 치료비와 생활비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세 아파트에서 국민임대 월세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했다. 젊은 환자는 경력과 미래를 포기하고, 고령 환자는 자녀에게 약값과 간병비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 씨는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3차 이상 치료제를 급여로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환자의 경제력에 따라 치료 기회가 달라진다”며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가족과 조금 더 오래 함께할 시간과 치료를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3차 치료제는 단순한 의약품이 아니라 삶을 이어갈 또 하나의 기회”라며 “제도적 한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신속한 도입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환자단체 "10년째 반복된 비급여 방치 끝내야"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치료제 발전을 건강보험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현장에서는 치료제가 발전하고 있지만 제도가 따라오지 못해 환자가 비급여 상태로 방치되는 이야기가 10년째 반복되고 있다”며 “이제는 모두가 문제에 동의하는 만큼 제도를 실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암 치료제로 확대하고, 암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단축하는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치료가 거듭될수록 환자의 몸 상태가 나빠져 치료제가 있어도 투여받지 못할 수 있다”며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급여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3차 치료제를 오래된 비교약제와 산술적으로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며 “그동안 이어진 치료 공백과 환자의 삶의 질, 생존 기회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 "오래된 비교약제 기준, 평가 유연성 필요"
어윤호 데일리팜 팀장은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한 뒤 경제성평가 단계에서 급여 등재가 장기간 지연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희귀질환 신속등재 시범사업과 선등재 후평가 등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전이성 대장암처럼 비교약제가 오래됐고 새로운 치료환경이 형성된 질환에서는 제약사와 정부 간 비용효과성 평가의 간극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어 팀장은 “질환별 특수성을 고려해 기존 경제성평가 임계값의 혜택을 모두 적용하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의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제약사도 등재 의지를 꺾지 말고 본사와 가격 협상을 적극적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심평원 "연구 결과 전에도 가능한 기준 활용"
이소영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전이성 대장암 3차 치료 공백에 공감하며 미충족 의료수요를 고려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3차 표준치료 이후 선택지가 없다는 절박한 현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며 “전 국민 건강보험의 공정성과 형평성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질환의 미충족 수요는 별도 제도를 통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근거가 부족하거나 가격이 높은 약제 중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제를 먼저 급여한 뒤 근거를 평가하는 선등재 후평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경제성평가 과정에서 탄력적인 임계값을 적용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진행 중이며 결과는 올해 11월께 나올 예정이다.
이 실장은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위원회가 활용할 수 있는 기준과 권한 안에서 대장암 3차 치료 공백을 충분히 이해하고 검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과거 후속치료제가 급여되지 않았던 이유와 현재 절차를 함께 살펴 환자 입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가격 넘어 환자에게 주는 가치 판단"
김민정 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경제성평가가 단순히 약제 가격만을 판단하는 과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 사무관은 “현재 논의되는 약제는 3차 이상 치료에서 임상적 유효성이 인정된 의미 있는 치료제”라며 “비용 대비 효과를 평가하는 것은 비싸서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민 전체 입장에서 최고의 가치를 구매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질환의 특성과 약제의 혁신성, 환자의 삶의 질 개선 가능성까지 경제성평가 과정에서 검토할 것”이라며 “10년 만에 시작한 경제성평가 임계값 연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제약사에도 적극적인 가격 협상을 주문했다. 김 사무관은 “의미 있는 치료제를 개발한 제약사의 기여는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약가가 높은 것도 사실”이라며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본사와 약가 인하 방안을 적극적으로 협의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서미화 의원은 이날 개회사에서 "전이성 대장암은 치료 시기와 치료 접근성이 생존을 좌우하지만 국내에서는 3차 치료 단계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약제가 사실상 없어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가 환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며, "국회에서도 치료 접근성 확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