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계 일각 "시장 구조 검증 없이 승인하면 순서 뒤바뀐다"
복지부는 법인화 긍정 검토 기류
보건복지부가 의약품 판촉영업자(CSO)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 개편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CSO협회 사단법인 인가 여부를 둘러싼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복지부 내부에서는 협회의 법인화가 산업의 제도권 편입과 투명성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류가 감지되지만, 제약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실태조사와 제도개선이 마무리되기 전 협회를 먼저 승인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제약계 일각에서는 현재 복지부가 진행 중인 수수료 실태조사와 계약 구조 분석이 향후 CSO 제도개편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협회 법인화 역시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복지부, 실태조사·연구용역 병행…CSO 관리체계 손질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5월 8일 김선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공동으로 '판촉영업자(CSO) 관리·감독 체계 강화'를 위한 입법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제도 미비점을 발굴·보완하고 의약품 유통 관리·감독 체계를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5월 11일에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유관단체에 제약사별 의약품 판촉영업 위탁계약 현황 제출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제약사들은 5월 말까지 CSO 위탁계약서와 재위탁 통보서 등을 제출했으며, 복지부는 현재 계약 구조와 수수료 실태를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이달 10일 전후 'CSO의 실효적 관리 방안'을 담은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를 제출받아 복지부와 공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국무조정실은 지난 5월 22일 '국가정상화 프로젝트' 1차 과제 164개를 발표하면서 제약 분야에서는 '불법적 의약품 판촉영업자(CSO) 근절'을 핵심 과제로 포함했다.
주요 과제는 ▲의약품 판촉영업의 양성화·투명화를 위한 제도 미비사항 보완 ▲이익을 수수한 의료인 처벌규정 마련 ▲CSO 실태조사 추진이다.
현행 리베이트 쌍벌제는 제약사와 의료인 간 직접적인 금품 수수에는 적용되지만 CSO를 통한 우회 지급 구조에서는 의료인 처벌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10월 CSO 신고제로 판촉영업자에 대한 관리 기반은 마련됐지만, 의료인 처벌 규정은 이번 제도개선을 통해 보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계 일각 "협회 승인보다 실태 규명이 우선"
제약계 일각에서는 현 시점에서 CSO협회를 사단법인으로 조기 승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시장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CSO 신고제가 시행됐지만 정부가 확보한 자료는 교육 이수자 명단 등 기초 정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판촉수수료의 최종 귀속과 사용처, 다단계 재위탁 구조, 실제 영업 방식 등 시장의 핵심 정보는 현재 복지부가 실태조사를 통해 분석 중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시장의 실체보다 신고 현황만 확인된 단계"라며 "정부가 수수료 구조와 계약 체계를 분석하고 있는 만큼 그 결과가 먼저 공개되고 제도 보완 방향이 마련된 뒤 협회 법인화를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직접 추진하는 실태조사의 의미다. 복지부는 제약사와 CSO 간 위탁계약서와 수수료 구조를 분석하며 시장 구조를 들여다보고 있다. 제약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조사 결과가 향후 관리체계 개편의 핵심 근거가 되는 만큼, 협회 승인 여부 역시 그 이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국가정상화 프로젝트의 정책 방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가 불법 리베이트 근절과 유통질서 확립을 핵심 과제로 제시한 상황에서 충분한 검증 없이 협회를 먼저 승인하면 현 시장 구조를 정부가 사실상 인정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약계 일각에서는 일부 품목에서 75% 수준의 수수료 지급이나 이른바 '100대100 프로모션' 등 과도한 수수료 경쟁이 이어지는 현실도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협회만 법인화하면 시장 정상화라는 정책 목표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CSO 중심 영업 확대가 국내 제약산업의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제약사들이 연구개발(R&D)과 생산 경쟁력 강화보다 외부 영업조직 의존도를 높이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 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CSO를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진행 중인 실태조사와 연구용역을 통해 시장 구조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책임체계를 먼저 정비한 뒤 협회 법인화를 논의하는 것이 정책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기류 변화…법인화 긍정 검토 관측
반면 복지부의 분위기는 이전보다 다소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복지부는 지난 4월 국회 토론회 당시 CSO협회의 사단법인 인가 요구에 대해 "업종 종사자 규모와 법인 허가 후 성장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또 "정부의 메인 미션은 CSO 산업 육성이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의약품 유통질서 확립"이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 간담회에서는 협회의 법인화가 CSO 산업의 제도권 편입과 투명성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세 업체의 재편과 산업 전문화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제약계에서는 복지부의 기류 변화가 곧바로 조기 인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이어지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복지부가 과거보다 협회의 순기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시각이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협회를 만드는 것보다 시장을 먼저 정상화하는 것이 정책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실태조사와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관리체계를 정비한 뒤 법인화를 검토해야 제도의 설득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