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쟁점 크지 않다” vs 환자단체 “권리 침해 소지”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을 일부 제한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까지 올라서면서 입법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이달 내 처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형사특례 조항을 둘러싼 위헌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만 남겨둔 상태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마련된 데 이어 법사위에서도 일부 반대 의견이 제기됐지만 표결에서 직접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아,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내 국회 통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신현두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최근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나 “환자단체와 의료단체 일부가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쟁점은 크지 않은 세부 내용”이라며 “대통령 지시 사항인 만큼 이달 내 본회의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법안은 복지위에서 여야 합의로 올라왔고 법사위에서도 일부 야당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표결에서 직접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았다”며 “야당 역시 법안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회 관계자도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치며 큰 틀의 합의가 형성된 상태”라며 “일부 이견은 있지만 본회의 처리 자체를 좌우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상하면 공소 제한”…형사특례 도입 핵심
12일 뉴스더보이스가 입수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 최종 법률안(대안)을 보면, 개정안의 핵심은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절차 특례 도입이다.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조정·중재 또는 법원 절차를 통해 합의가 이뤄진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고, 손해배상금이 전액 지급되면 공소 제기 자체를 제한하는 규정도 담겼다.
또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신설해 해당 사고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와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를 자제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 장치도 포함됐다.
다만 중대한 과실이 있거나 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러한 특례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법체계에도 없는 방식”…환자·소비자단체 반발
환자단체와 소비자단체는 형사특례 조항이 피해자 권리를 구조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손해배상을 조건으로 형사책임을 제한하는 제도는 우리 법체계에 전례가 없는 방식”이라며 “환자 동의 없이 공소 제기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재판청구권과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대한 의료사고에도 형사책임 제한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교통사고 중상해 사건에서 공소제한이 위헌 판단을 받은 사례를 들어, 의료사고에 이를 도입할 경우 법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의료기관이 충분한 설명이나 과실 인정 없이도 일정한 금전적 배상만으로 형사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환자 안전과 사고 진상 규명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공청회 등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법안이 빠르게 처리된 점도 비판했다. 단체들은 “생명권과 직결된 사안을 속도 중심으로 처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범위가 포괄적으로 규정돼 향후 적용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 기존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 보호 장치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도 쟁점으로 제기됐다.
설명의무·보험 의무화…의료사고 대응체계 개편
개정안에는 형사특례 외에도 의료사고 대응체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사고 경위 등을 설명하도록 의무를 명문화하고, 일정 중대 사고의 경우 일정 기간 내 설명하도록 했다.
사과나 유감 표현이 민·형사 책임 인정의 증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됐다.
또 의료사고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트라우마센터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의료기관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보험료 일부는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분쟁 조정 절차도 개선된다. 피신청인이 일정 기간 내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조정에 응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했고, 감정 과정에는 다수 전문가 참여를 의무화했다. 기존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는 폐지된다.
환자단체 한 관계자는 “의료진 보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손해배상만으로 형사책임까지 제한하는 구조는 피해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며 “피해자 동의 없는 공소제한 조항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와 정부 내부에서는 법안의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 간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진 데다 정부의 추진 의지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형사책임 제한과 공소제한 방식을 둘러싼 위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향후 헌법소원 등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