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취지 공감하지만 특례 최소화해야”
국회에 발의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환자단체가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사망사고에 대한 공소제기 제한 등 일부 형사특례는 환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필수의료 기피 해소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특례 적용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환자 권리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발의 배경…“필수의료 기피 해소·의료사고 부담 완화 목표”
국회에는 최근 의료사고로 인한 형사 부담을 완화하고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김윤 의원, 한지아 의원, 박희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 보호와 분쟁 해결 절차 개선을 주요 목표로 한다.
개정안에는 ▲필수의료행위 개념 도입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설치 ▲수사 및 형사특례 규정 ▲무과실 보상 확대 ▲의료사고 설명 의무 강화 ▲유감 표현 보호 ▲손해배상 관련 제도 정비 등이 포함됐다.
환자단체연합회는 19일 배포한 공식 자료를 통해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과 필수의료 붕괴 대응이라는 정책 방향 자체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환자의 생명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균형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필수의료 범위 지나치게 넓어질 우려…최소 범위로 제한해야”
연합회는 개정안이 의료사고 사건에서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심의 대상 여부, 공소제기 제한 적용, 형 감면 여부 등을 판단할 때 ‘필수의료행위 해당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대해 “필수의료 범위를 폭넓게 설정할 경우 수사·형사 특례 적용 대상이 사실상 대부분 진료로 확대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연합회는 필수의료행위를 응급, 외상, 분만, 중증소아 진료 등 최소 범위로 한정하고 이를 시행령 등 하위 규정이 아닌 법률에 직접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혈관질환이나 뇌혈관질환, 암, 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전반까지 포함할 경우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특례 적용이 과도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대한 과실 기준…“기록·영상 조작 등 위법행위 명확히 포함”
중대한 과실 기준과 관련해서는 제도 도입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보다 구체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이나 수정, 의료영상 자료 삭제·조작 등 증거 관련 위법행위는 환자 권리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행위까지 특례 적용 대상이 될 경우 진실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연합회는 환자나 유가족이 형사 고소를 제기하는 주요 이유가 단순 처벌 요구가 아니라 사고 경위 파악과 책임 규명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망사고 공소제기 제한…“검사의 공소권 제한은 전례 드물어”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필수의료행위 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한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공소를 제기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다.
연합회는 “업무상 과실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합의나 배상을 이유로 검사의 공소권을 제한하는 것은 우리 형사법 체계에서 매우 이례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과거 교통사고 관련 공소제기 제한 규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단을 받은 사례를 언급하며, 사망 사건까지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의료인에게만 형사 면책에 가까운 특례를 부여할 경우 직종 간 형평성 문제와 환자 안전 저해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도입 필요하지만 권한은 제한해야”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신설에 대해서는 수사 부담 완화와 전문적 판단 필요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의료사고 특성상 의학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사전 검토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위원회가 수사기관에 기소 자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출석 요구 완화나 조사 과정 지원 정도는 가능하지만 기소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은 권한 남용 소지가 있다는 이유다.
또 심의 기준은 ‘중대한 과실 여부’가 아니라 ‘업무상 과실 여부’를 중심으로 해야 하며, 신청권자에 환자와 유가족을 포함해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과실 보상 확대 등은 긍정…“피해자 지원 강화 필요”
연합회는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한정돼 있는 무과실 보상 제도를 응급·외상·중증소아 등 필수의료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설명 의무 강화, 의료인의 사과나 유감 표현을 법적 책임 인정 증거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 피해자 심리 지원을 위한 트라우마센터 설치, 의료감정 절차 강화 등은 분쟁 예방과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손해배상금 대불제 폐지…“환자 보호 위해 신중 접근”
손해배상금 대불제 폐지에 대해서는 환자 보호 측면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책임보험이나 공제 한도를 초과하는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며, 재원은 의료계가 아닌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환자 권리와 필수의료 보호 균형이 핵심”
연합회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입법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특례 제도는 최소한으로 적용돼야 한다”며 “특히 사망사고 공소제기 제한 규정은 삭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환자 권리 보호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면서 의료인 보호와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법안이 보완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