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교수 "유연한 평가-이해관계자 협력 체계 절실"
미국제약산업협회(PhRMA)가 미 통상대표부(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 한국이 포함돼 국내 도입되는 신약의 속도가 지연되거나 정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외국계 제약업계 우려가 제기됐다.
앞서 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최혜국대우(MFN)' 약가정책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는데 미국제약협회(PhRMA)가 미국보다 낮은 약가를 제시하는 9개국(한국 포함)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미 정부에 제출하면서 한국의 낮은 의약품 평가 시스템에 도전이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다국적제약협회는 7일 다국적제약기자모임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에서 지난달 27일 공개된 PhRMA 의견서에 대해 "미국제약사업협회 의견서에 따르면 한국이 ‘로우 프라이스 타깃 국가’에 포함됐다"며 이 같이 밝혔다.
PhRMA가 지목한 9개국은 한국을 포함해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영국 등이며 이들 국가는 모두 미국보다 낮은 약가로 신약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급여 신청 자제 요청, 임상 진행 보류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장기화되면 글로벌 본사들이 한국 시장에 대한 우선순위를 낮출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최인화 KRPIA 전무는 "협회는 PhRMA의 의견서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기에, 별도의 한국형 대응 논리를 준비 중”이라며 “국제 협상에 대비한 독자적 입장 정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실적 대안은 제도적 유연성과 협력”
이날 이종혁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우리나라 신약 접근성 국제 비교'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최근 10년간(2013~2022년) 국내에서 허가받은 신약 171개 중 약 67.8%에 해당하는 116개 품목만이 건강보험 급여 등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도입되는 신약의 허가 이후 급여까지 평균 소요 기간이 1년 5개월, 항암제 및 희귀의약품의 경우 1년 10개월 소요된다고 소개했다.
특히 경제성평가를 통해 등재된 신약의 급여 진입 시기는 평균 25.1개월로 제도가 급여의 허들이 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가간 비교에서도 국내 신약 도입 지연 문제는 두드러졌다.
2012~2021년 사이 해외에서 허가된 460개 신약 중, 2022년 10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이는 OECD 평균(41%)보다 낮은 수치이며,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도입률은 더욱 저조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해외 신약이 최초 허가 후 1년 이내에 도입되는 비율은 미국이 78%인 반면, 한국은 5%에 그쳤다. OECD 평균인 18%와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 교수는 “도입된 신약의 경우 급여 결정까지의 속도는 OECD 평균보다 빠르지만, 그 이전 단계인 국내 도입 자체가 느리고 적다는 점이 문제”라며 “급여 결정까지 가는 문턱이 높고, 신청 자체를 포기하거나 지연하는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들도 외국에서 사용 가능한 신약 정보를 접하면서 국내에서 치료 접근성이 낮다는 현실에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신약 도입 및 급여 과정에서 보다 예측 가능하고 신속한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RSA(위험분담제)나 경제성 평가 면제 제도의 도입으로 과거보다 신약 접근성은 개선됐지만, 여전히 많은 고가 신약이 급여 장벽 앞에서 멈추고 있다”며 “국내 제약환경에 맞는 유연한 평가 체계와 산업-정부-환자 간의 협력체계가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