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이후 시작된 의약품 약가 인상 압력이 한국을 향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외국 정부의 약가 통제를 ‘무역장벽’으로 규정하고, 미국 정부와 공조하면서 한국 정부에 제도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보건시민단체는 "제약사 이익보다 국민 건강권을 우선해야 한다"며, 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4일 논평을 내고 “미국 제약업계와 트럼프의 약가인하 행정명령이 한국 건강보험 체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정부는 약값을 무리하게 올리려는 압박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 약값 낮아 손해” 주장한 미국 제약업계
건약에 따르면 미국제약협회(PhRMA)와 미국 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의견서를 제출해 한국 등 외국 정부가 약가를 불공정하게 낮게 유지하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가치 있는 혁신 치료제가 약가 통제와 환급 지연 때문에 환자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가인하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미국은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제약사 이익의 75%를 감당하고 있다”며 외국의 ‘무임승차’를 비판했다. 제약사가 미국에서 약값을 낮추는 대신 다른 국가에서 수익을 보전하도록 외국 시장 개방을 촉구한 것이다.
"자국 약값은 낮추라, 한국 약값은 올리라"
이에 미국 제약업계는 자국 내 ‘최혜국대우(MFN)’ 약가 정책에 대해서는 연구개발 위축을 이유로 반대하면서도, 외국 정부에는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이중잣대를 보이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제약사들은 특허 연장, 자료보호, 가격 협상 정보 비공개 등을 통해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가격 협상이 약한 국가를 집중 공략해 고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역시 자유롭지 않다.
한미 FTA 체결(2007년), 허가특허연계제도 도입, 위험분담제 및 환급제 시행(2014년) 등 미국과 다국적 제약사의 요구에 따라 한국도 순차적으로 유리한 제도를 도입했다. 최근엔 연간 수억 원에 이르는 고가치료제의 ‘혁신성’을 인정하며 경제성평가 없이 약가를 책정해주는 제도도 확대되고 있다.
건약은 “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에 약가 가산, 세금 혜택을 주면서도 미국 제약사에도 똑같은 특혜를 요구받고 있다”며 “이는 한국 건강보험 재정과 의약품 공공성을 동시에 갉아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공공성 무너진다”…정부 결단 촉구
그러면서 건약은 정부에 세 가지 조치를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약의 혁신성을 명분으로 한 약가 인상 제도를 재고할 것 ▲국제적 연대를 통해 협상력을 높일 것 ▲지금의 약가 중심 제약 육성 기조를 멈추고 약제비를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도록 정책을 전환할 것 등이다.
건약은 "기업의 적정이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의약품 가격은 결코 낮지 않다. 최근 경제성평가를 회피하는 값비싼 신약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며, 제네릭의약품 가격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 입장에서 한국 약값이 낮다는 이유로 다 같이 높은 약값의 지불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미국은 과도하게 보호되는 의약품 특허 독점체제를 재검토하고 개혁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야만 한국과 미국에 사는 시민들이 함께 건강의 균형적인 형평성 달성과 의약품 접근권 향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건약은 끝으로 “트럼프식 약가정책은 실패가 예고돼 있으며, 미국 정부조차 협상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그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제약사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약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인정한 결과는 국민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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