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성분명 처방 도입 논의 정책토론회를 두고 대한의사협회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최근 대체조제 간소화 법안을 둘러싼 갈등에 이어 성분명 처방 논의까지 겹치면서 의약 갈등이 한층 더 증폭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다면 성분명 처방이 과연 의사협회의 주장처럼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의약분업을 훼손하는 조치일까. 그리고 의사는 왜 굳이 상품명 처방을 고수해야 하는가.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주도권 문제는 일단 차치하자. 의사협회의 이런 주장의 근간은 국내 제약사가 만든 제네릭에 대한 불신에 기반한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제네릭 처방률은 70%에 육박하지만, 자신이 직접 써본 제네릭과 써보지 않은 제네릭을 달리 보는 불신이 씨앗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아무리 오리지널과 제네릭 간 동등성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해도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국민 앞에 환자 안전을 내세우니 오히려 불안만 키운다.
의사의 전문성과 ‘처방’의 의미
우리나라 의약분업은 직능간의 역할을 정하고 있다. 진료와 처방은 의사가, 조제와 관리는 약사가 맡는다. 그런데 의사들은 처방의 개념을 특정 품목을 콕 집어 지정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듯하다. 의료 전문가이자 의약품에 밝은 의사들이 왜 개별 상품명까지 고집하는지 의문이다.
2025년 1월 1일 기준 건강보험 적용 의약품 성분은 4,264개다. 의사가 최적의 성분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선택지는 충분하다. 게다가 전체 성분 중 2,474개(58%)는 단독 품목이라 성분명 처방이 곧 상품명 처방과 다르지 않다. 보험의약품 10개 중 절반 이상은 성분명만 적어도 결과적으로 특정 제품이 선택되는 구조다. 더구나 동일 계열 약제 내에서는 성분별 특성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의사의 전문성은 충분히 발휘된다. 예컨대 고혈압치료제 ARB 계열에서 로사르탄을 처방할지, 발사르탄을 처방할지는 의사의 몫이다. 로사르탄 내 수십 개 제네릭 중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는 약사에게 맡겨도 하등 문제될 게 없다.
의약품 수급 불안정과 성분명 처방의 필요성
토론회에서도 지적됐듯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특정 제품 수급 불안정은 모두가 기억하는 사례다. 따라서 수급 불안정이 반복될 수 있는 필수의약품만이라도 우선 성분명 처방으로 전환해 공급 문제를 완화하자는 제안은 충분히 정당하다. 만약 의사협회의 우려처럼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되돌리면 된다. 그런데도 대체조제 간소화 법이나 성분명 처방을 두고 환자 안전을 내세우는 의사협회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국민 불안만 조장한다. 전문가 집단이라면 논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 환자와 국민을 위한 정책 논의가 이뤄지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도리다.
성분명처방만으로는 약제비 절감 한계
토론회에서는 성분명 처방이 건강보험 약제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성분명 처방 자체만으로 약제비 절감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현행 실거래가 상환제 아래에서는 약사가 굳이 더 저렴한 약을 선택할 유인이 없다. 따라서 제네릭 간 가격 경쟁도 촉발되기 어렵다. 성분명 처방과 약제비 절감을 연계하려면 다른 제도적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 제네릭에 대한 불신 해소를 전제로, 환자가 저렴한 약을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의약품에 대한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한국형 참조가격제’ 논의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넘어
성분명 처방은 의약분업 이후 의약 직능 갈등의 가장 첨예한 도화선이었다. 보건복지부 내부에서도 한때는 ‘금기어’처럼 취급됐다는 말까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회 주도의 정책토론회는 큰 의미가 있다. 정부, 약사단체, 시민사회, 전문가, 언론이 함께 모여 한국형 성분명 처방 도입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이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의사협회도 이제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과 환자를 위한 제도 설계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보건의약계의 '맏형'으로서 의사단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