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덕분에 숨은 붙잡았지만…이어지는 고통은 여전"
"아픈 엄마 때문에 빨리 커버린 아이들..."
기자는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의 일상을 잠시라도 경험해 보기 위해 빨대를 입에 물고 코를 막아보았다. 처음 10초는 버틸만 했다. 1분이 지나자 조바심이 났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 덜컥 겁도 났다. 2분도 못채우고 입에서 물었던 빨대를 뱉어내다 시피 뗐다. 이 짧은 '숨가쁨'이 폐동맥고혈압환자들에게 일상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대부분이 30~40대 여성에서 나타나는 폐동맥고혈압, 나 역시 그들과 같이 아이를 키우는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폐동맥고혈압은 주로 젊은 여성에게서 발병하는 질환이다.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는 폐동맥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숨가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혈압이 높아지면서 심장은 과부하에 시달리고, 환자는 숨이 가빠 일상조차 힘들어진다. 치료제를 쓰더라도 완치가 어렵고, 진행이 빠른 경우 수년 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증상 악화의 마지막 선택지는 폐 이식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등록 환자 수는 1000여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다만 진단이 어려워 대부분의 환자들이 2~3년간 '진단방랑'을 겪기도 한다.
뉴스더보이스는 지난 19일 김신형(42세)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 아들의 엄마인 그는 막내가 세 살이던 무렵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았다.
“막내 아이가 잠투정이 심해서 여행 중 업어 달라고 했어요. 언덕길을 오르는데 숨이 너무 차서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갔죠. 집에 돌아와 가까운 내과에 갔더니 큰 병원 응급실로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응급실에서 의료진은 “이 정도 상태가 될 때까지 뭐했냐”는 말을 했다. 그동안 집안일과 육아로 쌓인 피로 탓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폐동맥고혈압의 전조 증상이었다. 그는 진단 직후 검색을 통해 질환을 알아봤지만 ‘죽음’ ‘사망’이라는 단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처음 한 달은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환자들이 우울증을 많이 겪는 게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집에만 있어서일 거예요. 저도 약을 먹고 버티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생활이 힘들어요.”
폐동맥고혈압, 증상 완화에 머문 치료제들
현재 폐동맥고혈압 치료는 주로 △엔도텔린 수용체 길항제(ERA) △인산화효소 억제제(PDE5i) △프로스타사이클린 계열 약물 등 세 가지 기전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들 약제는 혈관을 확장해 혈류를 개선해주지만, 근본적으로 병의 진행을 막기엔 한계가 있다. 환자들은 대개 단독 요법으로 시작해 점차 병용 요법으로 확대해 나가며 증상을 조절한다.
김 씨도 이들 약제와 함께 이뇨제, 혈압제제를 병용해 처방받아 일상을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약이 삶을 온전히 지탱해 주지는 못한다.
“약을 먹어도 숨이 찬 건 비슷해요. 그저 조금 나아질 뿐이에요. 그래도 약이 있으니까...아이들을 돌보고 천천히 집안 일도 해나가고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3형제를 둔 김씨는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몸이 아픈 엄마를 대신해 아이들은 빨래를 기꺼이 옮기고 살림도 도와준다. 그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들은 제가 버티는 이유예요. 한참 뛰어놀 시기에 엄마가 이렇게 돼서 마음껏 안아보지도, 여행다운 여행을 가보지도 못했어요. 막내에게 제일 미안한 마음이 커요. 아기 때부터 안아주지 못한 게 너무 맘이 아파요. 유치원 부모 상담을 한번도 가지 못했어요."
"지금도 부담이 큰 치료비, 그러나 신약에 대한 기대 저버릴 수 없어"
최근 폐동맥고혈압 영역에 새로운 신약이 등장했다. 소타터셉트 성분의 ‘윈레브에어’는 기존 치료제와 달리 폐혈관 구조 자체를 조절하는 기전으로, 질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의료계는 ‘게임 체인저’라 부르며 주목한다. 국내에선 허가는 받았지만 현재 급여 절차를 진행 중이어서 환자들의 접근성은 개선되지 못한 상황이다.
"제가 먹는 약만 세 달에 50만원이 훌쩍 넘어가요. 교육비에 생활비까지 겹치면 감당이 쉽지 않아요. 새 치료제가 나왔다는데 그 약도 가격이 비싸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약이 좋아서 증상이 개선된다고 하던데, 급여가 빨리 됐으면 좋겠어요."
김 씨는 약에 대한 기대감과 치료제 접근성에 대한 허들의 문제도 지적했다.
"약이 있는데도 못 쓴다는 게 너무 답답해요. 환자들은 하루하루 목숨 걸고 버티는데, 약이 빨리 들어오지 않으면 결국은 기회를 잃는 거잖아요. 제발 환자들한테 빨리 약이 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
김 씨는 인터뷰 내내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의 여명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그는 "신약"을 "시간"과 비교해 급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병은 하루하루가 싸움이에요. 약이 필요하다, 절박하다, 이 목소리를 정부와 제약사가 더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어요.”
"내 삶의 버팀목,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기회 달라"
김 씨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가족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남편이 늘 다정하게 옆에서 힘을 줘요. 아이들도 제 병을 알면서 더 강해졌어요. 그게 슬프면서도 고맙죠. 제 꿈은 아이들이 조금 더 클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거예요. 폐동맥고혈압은 너무 생존기간이 짧으니까....조금 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래서 새로운 약제가 하루 빨리 급여가 되어서 저에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길 소망해요."
김 씨는 같은 길을 걷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남겼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제일 중요해요. 몸이 버텨줘야 마음도 버티니까요. 그리고 절망하지 말았으면 해요. 같이 버티면 분명 길이 열릴 거예요.”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정부와 제약사측에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생명은 숫자가 아니라 소중한 한 사람의 삶이예요. 제발 환자들의 생명을 위한 정책을 펴주세요.”
그러면서 김신형 씨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서요. 그러니 폐동맥고혈압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응원해 주세요."
김 씨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1시간 30분 동안 숨을 고르며, 쉬며, 차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집과 도보 5분 거리인 인터뷰 장소에 오기 위해 운전대도 잡았다. 이날 인터뷰를 제대로 하고 싶어서 전날 내내 잠을 자며 체력도 보충했다.
인터뷰 시간이 길어지고, 인터뷰를 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하자 김씨의 친한 이웃은 덜컥 인터뷰가 진행 중인 카페 회의실 문을 열고 그의 안부를 확인했다. 김씨는 웃으며 상대에게 "괜찮아. 언니"라며 안심 시켰다.
그는 인터뷰를 정리하며 일어서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인터뷰가 조금이라도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잘 전해주세요. 기자님."
아이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김씨, 그리고 폐동맥고혈압환자들을 위해 우리 모두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