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기본법 시행 앞두고 쟁점 표면화…“등록단체·정책위 권한 성패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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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기본법 시행 앞두고 쟁점 표면화…“등록단체·정책위 권한 성패 가른다”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6.05.2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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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연합회, 법 제정 기념 심포지엄...하위법령 과제 집중 점검
환자 권리 12개 실효성·환자안전 조사체계·전담조직 설치 요구도

환자를 보건의료 정책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규정한 환자기본법이 제정됐지만, 법의 실질적인 성패는 앞으로 마련될 하위법령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등록환자단체 인정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환자정책위원회에 어느 정도 권한을 부여할 것인지, 환자의 권리 12개를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제도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거론됐다.

특히 환자단체들은 환자기본법이 환자 권리와 환자안전을 통합한 첫 기본법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면서도,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 과정에서 환자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선언적 법률에 머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역시 환자 정책을 전담할 조직과 인력이 사실상 부재한 현실을 인정하며 제도적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 교육장에서 ‘환자기본법 제정 이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 교육장에서 ‘환자기본법 제정 이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 교육장에서 ‘환자기본법 제정 이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등록환자단체 인정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환자정책위원회에 어느 정도 권한을 부여할 것인지, 환자의 권리 12개를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제도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거론됐다. [사진=뉴스더보이스헬스케어]

이날 심포지엄은 이기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했으며,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박성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주제발표를 맡았다. 또 패널토론자로는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김소윤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조민우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이 참여했다.

“왜 환자는 정책의 객체였나”…10년 넘게 이어진 입법 노력

안기종 대표는 환자기본법의 출발점을 2019년 환자단체연합회 워크숍으로 거론했다. 그는 당시 환자단체들이 향후 10년 핵심 과제로 ‘환자기본법 제정’을 제안했으며,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정책 참여나 재정 지원, 제도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답변을 반복적으로 들어온 경험이 입법 추진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환자는 왜 정책의 주체가 아닌 객체인가, 환자단체는 왜 법적 정의조차 없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소비자·장애인 분야에는 기본계획과 실태조사, 위원회, 지원체계가 있는데 환자 분야에는 그런 기반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기본법의 가장 큰 의미로 환자를 정책의 주체로 인정한 점을 꼽았다. 환자의 투병과 권리 증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하고, 환자단체 육성과 정책 참여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으며, 환자 권리 12개를 법률에 명문화했다는 것이다. 또 환자안전법을 흡수·통합하면서 환자안전사고 조사 근거까지 포함한 새로운 기본법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안 대표는 그러나 법 제정이 끝이 아니라 시행령 단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등록환자단체 제도와 관련해 “희귀질환 환자단체의 경우 회원 수 자체가 많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며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상 100명 이상 회원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소비자단체 등록기준에 있는 상근인력과 사무실 요건을 그대로 적용하는 방안 역시 환자단체의 특수성을 고려해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환자단체와 환자지원단체를 구분하는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환자가 직접 조직하고 운영하는 단체와 전문가·후원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단체는 성격이 다르다”며 “정책 참여와 지원 체계를 설계할 때 양자를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환자단체의 정책 참여가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환자단체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는 각종 위원회와 정책 연구, 제도 개선 과정에서 환자단체가 독립된 이해관계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환자기본법이 처음으로 환자단체 운영비와 사업비 지원, 정책연구 위탁, 공모사업 참여 등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도 중요한 성과로 평가했다.

등록환자단체·정책위원회·권리 실효성…“하위법령이 진짜 승부처”

박성민 교수는 환자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다뤄야 할 핵심 과제로 ▲등록환자단체 등록 요건과 역할 ▲환자정책위원회 구성과 권한 ▲환자 권리 12개의 실효성 확보 ▲기본계획·시행계획·실태조사 운영 ▲환자안전사고 조사조항 운영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박 교수는 환자기본법을 “환자 민주주의(patient democracy)를 제도화한 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등록환자단체가 있고, 환자정책위원회가 있고, 그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강제 규정보다는 환자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된 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환자단체가 실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장식적인 제도로 머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등록환자단체 제도의 실질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등록환자단체가 단순한 등록 절차를 넘어 환자정책위원회 위원 추천권을 갖고, 정책 연구사업 수행과 정부 사업 참여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다른 보건의료 법령에서도 등록환자단체가 환자 대표성을 인정받는 제도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정책위원회 권한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는 “환자의 기본적 권리를 제한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법령·고시·예규 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매우 중요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 기능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강제력은 없지만 환자 권리 관점에서 정책을 검증하는 공식 창구가 처음 생긴 것”이라며 “실효적으로 운영된다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조항”이라고 말했다. 또 환자정책위원회가 기존 보건의료 분야 각종 위원회와 기능이 중복되지 않도록 환자 중심 관점에 특화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교수는 환자의 권리 12개와 관련해서는 “현재 법은 권리를 선언하고 있을 뿐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 의무 조항은 상당 부분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내년 법 시행과 함께 전국 의료기관에 게시되는 ‘환자의 권리와 의무’ 내용이 기존 의료법 체계에서 환자기본법상 권리 12개 체계로 바뀌게 된다는 점은 상징적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의 권리를 국민과 환자들이 직접 보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라며 “결국 환자기본법의 성공 여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운영체계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권리 선언 넘어 실질적 환자 참여로”

패널토론에서는 환자기본법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과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권용진 교수는 환자기본법이 기존 보건의료 체계에서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된 법 체계와 달리 환자를 독립된 정책 주체로 인정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환자의 권리 12개를 성문화한 것 자체가 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권리는 인식되는 순간부터 실현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법 체계상 권리구제 절차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아 선언적 성격이 강한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특히 환자기본법이 환자 개인의 자율성뿐 아니라 환자단체의 정책 참여를 제도화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환자단체가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은 의미가 크지만 현재 구조는 의사결정 참여보다는 자문과 의견 제출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등록환자단체 기준과 환자정책위원회 구성, 환자 영향평가 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향후 법의 실효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윤 교수는 환자 권리 논의가 질병 발생 이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의 권리 이전에 환자가 되지 않을 권리,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중요하다”며 “사고가 발생한 뒤 보상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와 의료인 모두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향후 환자기본법 운영 과정에서도 예방 중심 접근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민우 교수는 환자기본법이 환자안전법을 흡수하면서 상대적으로 환자안전 분야에 무게가 실린 점을 언급하며 보다 폭넓은 환자 중심 정책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환자안전은 기본이지만 환자중심성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라며 “환자가 실제 원하는 건강 결과가 달성되고 있는지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보건의료계에서 강조되는 가치기반의료(Value-Based Healthcare)를 언급하며 “환자단체도 향후 정책 연구와 정책 개발 과정에서 환자가 원하는 결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반영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환자정책위원회에 대해서는 “장관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건강권 자체를 국가 핵심 의제로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정화 회장은 소비자기본법과의 비교를 통해 환자기본법의 향후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소비자기본법도 40년 넘게 수십 차례 개정을 거치며 발전해 왔다”며 “환자기본법 역시 앞으로 사회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특히 “소비자기본법에는 정부의 책무뿐 아니라 사업자의 책임도 규정돼 있는데 환자기본법에는 상대방의 의무 규정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향후 의료기관과 관련 주체의 책임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보조금 지원 규정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지원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환자단체 역시 장기적으로는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진향 사무총장은 이날 행사가 열린 5월 29일이 환자기본법에 규정된 첫 번째 법정 ‘환자의 날’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오늘은 다시는 의료사고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환자기본법이 제대로 뿌리내리기를 기대하는 희망의 날”이라며 “환자기본법이 선언적 법률이 아닌 실질적인 권리 보장 법률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환자 정책 전담 조직·인력 정비 검토”

정부도 환자기본법 시행을 계기로 정책 기반 강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현두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환자단체가 초안을 만들고 국회를 설득하는 등 입법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그동안 환자 권리와 환자안전이 상대적으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재 복지부 내에는 환자 정책을 전담해 고민할 수 있는 조직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며 “환자기본법 시행을 계기로 환자 권리와 환자안전을 보다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조직과 인력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시행령과 시행규칙 마련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쟁점을 충분히 검토하겠다”며 “제도 운영 과정에서 문제점이 확인되면 환자단체와 의료계 의견을 수렴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환자기본법 제정만큼이나 앞으로의 시행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참석자들은 등록환자단체 제도와 환자정책위원회 운영, 환자 권리 12개 실현 방안, 환자안전사고 조사체계 구축 등이 향후 하위법령 논의의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법이 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제 환자 삶을 변화시키는 제도로 작동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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