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상태 따라 진료비 더 정교하게…심평원, ‘위험보정’ 지불체계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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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상태 따라 진료비 더 정교하게…심평원, ‘위험보정’ 지불체계 모색
  • 엄태선 기자
  • 승인 2025.04.01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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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건강상태 위험보정 요인 반영 등...국내 적합 질환군 개발도 
중증·복합질환 환자 진료한 병원에 더 합리적 보상 추진
“값싼 환자만 골라보는 구조 막고, 아픈 환자 진료 부담 줄여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경. [사진=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경. [사진=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으로 새로운 진료비 지불제도가 확대될 경우, 환자의 건강상태와 질병의 무게를 반영해 병원에 돈을 지급하는 이른바 ‘위험보정’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겉으로는 같은 당뇨 환자라도 합병증이 많고 전신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와 비교적 상태가 안정적인 환자는 진료 난이도와 비용 부담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단순히 병원의 손익 문제를 넘어 환자 입장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거나 치료비가 많이 드는 환자를 병원이 기피하지 않도록 하고, 더 아픈 환자를 보는 의료기관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환자도 필요한 치료를 보다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최근 내부연구 ‘진료비 지불체계서 위험보정 모형 현황과 적용 방향’을 통해 이 같은 방향성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진료비 지불을 위한 위험보정 모형에서 환자의 진료비에 영향을 미치는 건강상태를 위험보정 요인으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왜 필요한가…“더 아픈 환자 진료한 병원이 손해 보면 안 된다”

지금까지 진료비 지불체계는 질환명이나 진료행위 자체를 중심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의 나이, 동반질환, 전신상태, 사회경제적 조건 등에 따라 치료 난이도와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라고 해도 혈당만 관리하면 되는 환자와 신장질환, 심혈관질환, 신경병증까지 동반한 환자는 전혀 다르다. 병원 입장에서는 후자의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과 인력,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의료기관은 중증·복합 환자를 볼수록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심평원 연구진도 위험보정 모형의 목적을 “환자 선택을 방지하는 목적보다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거나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에 더 지불할 수 있도록”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즉, 병원이 ‘덜 아픈 환자’만 선호하는 구조를 막고, 더 아픈 환자를 본 만큼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증 환자 진료 접근성에 영향

환자 입장에서 가장 큰 의미는 진료 접근성이다. 현재보다 위험보정이 정교해지면 병원이 비용 부담 때문에 복합질환자나 관리가 어려운 만성질환자를 꺼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고령 환자, 만성질환 환자, 합병증이 많은 환자에게는 의료기관 선택권과 치료 지속성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또 향후 우리나라에서 환자 등록형·지속관리형 지불제도가 확대될 경우, 위험보정은 필수 장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국에서는 주로 환자를 등록해 지속 관리하고 환자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에서, 병원이나 보험자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환자만 고르지 않도록 위험보정 모형을 함께 운용하고 있다.

연구진 역시 국내 적용 대상은 예측 가능성이 낮은 급성기 치료보다 당뇨병,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등 건강요구와 지출 예측이 상대적으로 가능한 만성질환부터 우선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외국은 어떻게..미국·독일은 질환군 체계 활용

연구에 따르면 외국에서는 건강상태를 반영하기 위해 진단 정보를 위험보정 모형에 활용하고 있었다. 미국과 독일은 계층적 질환군(HCC)을 개발해 실제 지불금액 산출에 사용하고 있다. 쉽게 말해 환자의 진단명과 질환 조합을 분석해 “이 환자는 의료비 위험이 높은 편인지”를 계산하고, 그에 따라 지불 수준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심평원 연구진은 미국의 CMS-HCC와 HHS-HCC를 국내 건강보험 청구자료에 매핑해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예비분석도 실시했다. 하지만 설명력은 약 20% 수준이었고, 예측 진료비와 실제 진료비 간 오차 범위도 커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 한국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의 ICD-10-CM 코드와 국내 KCD-8 코드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의료이용 구조와 보험제도, 질병 분포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형 모형에 집중해야.. 미국식 한계

연구진은 국내에 맞는 질환군을 따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CMS-HCC와 HHS-HCC는 미국에서 진료비 지출이 많이 발생하는 질환군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국내 보건의료 환경과 진료비 지불제도에 그대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우리나라도 적정성 평가 등 일부 영역에서 찰슨동반상병지수나 특정 동반질환 유무를 위험요인으로 반영한 적은 있지만, 진료비 발생 위험 자체에 초점을 둔 체계적 모형은 아니고 질환 범위도 제한적이었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내 전체 진료비 자료를 대상으로 어떤 진단코드가 실제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지, 질환과 질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나이·성별·사회경제적 특성과 어떤 상호작용이 있는지 등을 장기간 분석해 한국형 계층적 질환군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보정 모형이 정교해질수록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업코딩이다. 병원이나 의료기관이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 실제보다 환자를 더 아프게 기록하거나 진단코드를 과도하게 붙이는 문제다.

연구진도 이 점을 분명히 경고했다. 해외에서도 진단 정보 기반 위험보정 모형을 도입한 뒤 자료 신뢰도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입원 시 입력한 상병만 인정하거나, 외래의 경우 일정 기간 이상 약을 사용한 기록이 있는 경우만 진단 정보로 인정한다. 미국은 RADV 감사를 통해 제출된 진단 결과와 실제 진단 결과를 비교해 불일치하면 환수까지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건강보험 청구자료를 활용하려면 특정 행위코드나 약제코드가 함께 청구된 경우에만 진단 정보를 인정하는 방식, 사후 의무기록 점검과 정기 감사체계를 병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결국 “환자 더 아프면, 제도도 더 정밀해야”

이번 심평원 연구는 당장 새로운 지불제도를 시행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앞으로 다양한 지불제도가 도입될 때 반드시 준비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환자가 더 아프고, 더 복합적이고, 더 많은 치료가 필요하다면 그만큼 제도도 정밀해야 한다는 점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위험보정 모형이 잘 설계되면 중증·복합질환 때문에 병원이 치료를 꺼리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더 어려운 환자를 본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진단 정보 기반 건강상태 위험요인 개발부터 모형 개발, 타당도 검증, 실제 지불제도 적용까지 중장기 로드맵을 설정하고, 의료계와 정책 입안자 등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한국형 위험보정 모형은 단순한 계산식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더 공정하게 반영하는 진료비 지불체계로 가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는 점에 의미를 갖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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