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위 청원소위서 환자·학회 요구 재확인…“연 수억원 약값 감당 한계”
복지부 “임상적 유용성·비용효과성 검토 중…신속 심사 노력하겠다”
고가 항암·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문제를 둘러싼 환자들의 요구가 국회 청원심사소위원회에서 다시 제기됐다. 웰리렉, 엔허투, 버제니오, 리브리반트, 레테브모, 투키사 등 주요 치료제들이 잇따라 심사 대상에 올랐지만, 상당수 약제는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 약가 협상 문제 등에 막혀 급여 결정이 장기간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약제는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여러 차례 ‘급여기준 미설정’ 판단을 받은 뒤 제약사가 신청을 자진취하하고 다시 재신청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이에 대해 절박한 환자단체와 학회는 “연간 약값이 수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치료 기회를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며 정부에 보다 신속한 급여 결정을 요구했다.
10일 국회 관련 회의록을 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웰리렉, 엔허투, 버제니오, 리브리반트, 레테브모, 투키사 등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및 확대 청원을 심사했다. 청원심사소위원회는 백종헌 위원장을 비롯해 남인순·박주민 의원 등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소위는 이날 상정된 관련 청원 모두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계속심사 결정을 내렸다.
웰리렉·엔허투, 반복되는 '미설정과 재신청'
웰리렉은 희귀 유전질환인 폰히펠린다우(VHL) 증후군 치료제다. 복지부와 전문위원 설명에 따르면 이 약은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이후 2024년과 2025년 두 차례 급여 신청이 이뤄졌지만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세 차례 연속 급여기준이 설정되지 않았다. 이후 제약사가 신청을 자진취하했고, 올해 3월 다시 재신청한 상태다.
복지부는 “현재 심평원에서 등재 여부 결정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었고, 약가 수준과 대상 환자군 범위 문제도 함께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남인순 의원은 “세 번이나 자진취하가 반복됐는데 같은 문제가 왜 계속 발생하는지 정부가 충분히 설명하고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며 “환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하면 비슷한 청원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의원은 “동일한 종류의 청원이 반복적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정부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의 신뢰성을 높여야 환자들도 왜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명이 부족하면 결국 환자들은 정부를 탓하게 된다”며 심사 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엔허투 역시 이날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소위에서는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환자까지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해 달라는 청원 2건이 함께 심사됐다.
현재 엔허투는 HER2 양성 유방암에는 급여가 적용되고 있지만 HER2 저발현 유방암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 설명에 따르면 제약사는 2024년 적응증 확대 허가 이후 급여 확대를 신청했지만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급여기준이 설정되지 않았다. 이후 대한항암요법연구회가 지난해 재논의를 요청했고 현재 다시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복지부는 “유방암 환자 수가 많고 학회가 직접 급여 확대를 요청하고 있는 만큼 보다 신속하게 심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남인순 의원은 “엔허투는 1인당 연간 약값이 약 9천70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고 예상 환자 수도 3천명 이상”이라며 “환자 부담이 매우 큰 만큼 속도감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당초 심의에서는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추가 설명과 자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후 학회 재신청 과정에서 관련 자료가 상당 부분 보완됐다”고 설명했다.
버제니오·리브리반트도 급여 확대 난항
조기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버제니오 급여 확대 청원도 함께 논의됐다. 현재 버제니오는 진행성·전이성 유방암에는 급여가 적용되고 있지만 조기 유방암은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조기 유방암 적응증 허가 이후 심평원에서는 세 차례 급여기준 미설정 판단이 내려졌다. 다만 병용 약제에 대해서는 본인부담률 5%의 부분급여 기준이 설정됐고, 올해 2월 학회가 다시 급여 확대를 신청한 상태다.
복지부는 “임상적 유용성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과 함께 추가 재정 부담 문제도 제기됐다”면서도 “말기 유방암 환자에게 적용 중인 약제를 조기 유방암에도 확대해 달라는 요구가 큰 만큼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박주민 의원은 버제니오와 관련해서도 “학회에서 의견을 낸 사안인 만큼 조속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브리반트는 EGFR 엑손20 삽입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다. 지난해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엑손20 삽입 변이 2차 이상 치료에 대해서만 급여기준을 설정했다. 이후 제약사가 신청을 자진취하한 뒤 재신청했지만, 올해 1월 심의에서도 1차 치료 급여기준은 설정되지 못했다.
복지부는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추가 검토와 함께 부작용 위험 문제도 함께 논의됐다”며 “피부 독성 등 일부 부작용 우려가 심의 과정에서 언급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엑손20 삽입 변이 2차 이상 치료에 대해서는 이미 급여기준이 설정된 만큼 향후 급여 절차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레테브모는 협상 단계…투키사는 환자 수 논란
레테브모는 이날 논의된 약제 가운데 급여화 단계가 가장 앞선 사례로 거론됐다. 이 약은 2023년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이미 ‘급여적정성 있음’ 판단을 받았지만 이후 건보공단과 제약사 간 약가 협상이 결렬되면서 등재가 무산됐다.
이후 제약사가 다시 재신청했고, 지난해 급여기준이 설정된 뒤 현재는 심평원의 자료 보완 요청과 제약사의 보완 제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복지부는 “임상적 유용성 자체는 이미 인정된 상태”라며 “현재는 가격 부분을 중심으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인순 의원은 “레테브모는 연간 약값이 1억9천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며 “환자 부담이 매우 큰 만큼 약가 협상을 신속히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주민 의원도 “관련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며 조속한 협상 마무리를 주문했다.
유방암 뇌전이 치료제인 투키사도 현재 심평원 등재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투키사는 2023년 말 식약처 허가 이후 지난해 제약사가 급여 결정을 신청했고, 현재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복지부는 “일반적으로 약제 급여 절차에는 평균 300일 정도가 소요된다”며 “투키사 역시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는 환자 수 추정치를 둘러싼 논란도 제기됐다.
백종헌 청원심사소위원장은 “환자 수 추정치가 15배 정도 차이가 난다”며 급여 심사에 미치는 영향을 물었고, 복지부는 “제약사 자료와 학회 자료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자료 보완과 추가 소통을 통해 보다 명확한 기준 아래 심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