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DR·심평원 빅데이터 활용한 ‘선 허용, 후 모니터링’ 정책 전환 제안
혈우병 환자들이 보다 안정적인 치료 환경에서 임상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현행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체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제언이 나왔다.
‘2026 희귀질환의 날’(4월 17일)을 맞아 한국코헴회가 8일 국회에서 주관하고, 이개호 국회의원이 주최한 ‘혈우병 환자의 건강권 보장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제도 개선 정책 토론회’에서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 한정우 교수는 발제를 통해, 의료진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혈우병 관리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적 타당성 배제된 급여 기준... 다학제 진료 시스템 붕괴"
이날 한 교수는 “현재 혈우병 환자들은 응급 및 중증 상황 발생 시 적절한 대처를 받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의료비 절감’에 치우친 정책 기조다. 한 교수는 “정부가 급여 조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약제비와 진료비 삭감 위주의 행정을 펼치면서,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혈우병 진료를 유지할 유인이 사라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등 전문의들이 협업하는 다학제 진료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환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채 장애를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외국은 의료적 타당성만 있다면 용량과 투여 횟수를 전적으로 의사가 결정하고 허가 사항 내에서 유연한 처방이 가능하다”며 “한국은 싼 약은 생산되지 않고 비싼 약은 규제에 막혀 쓰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대신 모니터링... KBDR·빅데이터가 핵심 대안”
한 교수는 단순히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성과 환자의 건강권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데이터 기반 모니터링 체계’를 제시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용량 제한이나 처방 횟수 규제를 철폐하는 대신, 의료진이 충분한 약제를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하되 그 결과를 엄격히 모니터링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혈우병 등록사업(KBDR)을 통한 환자별 출혈 상황 및 건강 상태 실시간 관리 ▲세계 최고 수준인 심평원 빅데이터를 활용한 의료·급여 정책 개발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한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환자가 자신의 치료 상황을 등록사업에 제출하는 것이 병원과 국민의 의무”라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80~90년대 수준의 관리 체계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민이 서로를 신뢰하는 선진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진료 생태계 위해 국가와 국민 공동 노력 필요”
발표를 마무리하며 한 교수는 정부의 전향적인 인식 변화와 함께 국민적 협력도 당부했다. 고가 약제 관리는 국가 재정과 환자의 필요를 면밀히 비교해 결정하되, 기본적인 예방 요법에 대해서는 급여 기준과 허가 기준의 괴리를 최소화해 의료진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 교수는 “정부는 국민과 의료계를 믿고 전문적 판단을 존중하는 정책을 펼쳐야 하며, 국민 또한 충분한 기여를 통해 권리를 찾아야 한다”며 “이러한 신뢰 관계가 형성될 때만이 혈우병 환자들이 장애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진료 생태계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