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별 처방전 없이 한약을 미리 만들어 여러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원외탕전실의 ‘공장형 사전조제’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개별 환자에게 필요한 조제는 보장하되, 제약회사가 품목허가를 받아 생산하는 한약제제와 같은 처방·제형의 제품은 원외탕전실 조제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8일 국정감사 보도자료에서 한약제제와 원외탕전실 조제한약 사이의 규제 불균형을 지적하며 보건복지부에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남 의원은 “2024년과 2025년 국정감사를 통해 보건복지부에 원외탕전실 제도 개선을 집중적으로 요청했음에도 이렇다 할 개선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한약 사전조제 의혹으로 한방병원 압수수색 등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원외탕전실 관리·감독과 운영제도를 전반적으로 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별 치료 위한 조제와 표준화된 제조 구분해야
원외탕전실은 2008년 9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탕전실의 외부 설치와 공동이용이 허용되면서 제도화됐다. 복지부는 이듬해 5월 원외탕전실 설치·이용과 탕전실 공동이용에 관한 지침을 마련했다.
남 의원은 이후 소수의 원외탕전실에 수백 개 이상의 의료기관이 처방을 보내는 구조가 확산되면서, 한약 조제시설이 사실상 대량생산 기능을 수행하는 문제가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별 처방 없이 미리 한약을 만들어 다수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구조는 현행 약사법이 구분하는 ‘조제’의 범위를 벗어나 사실상 ‘제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부담의 차이도 문제로 제기했다. 제약회사의 한약제제는 품목허가와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제조관리자 선임, 정기·수시 감시 등 규제를 받지만, 원외탕전실은 상대적으로 규제비용이 적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립·캡슐·정제 등 다양한 제형의 한약을 저렴하게 대량생산하면 한약제제 제조업의 투자·생산 기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남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복지부는 원외탕전실 시설·인력·운영기준에 관한 연구용역과 첩약 건강보험 적용 2단계 시범사업 실태조사 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에 그쳤다고 밝혔다.
탕제는 엄격한 요건 아래 예외 인정 제안
남 의원이 제시한 핵심 방안은 원외탕전실의 조제범위를 정비하는 것이다.
환자의 임상적 필요에 따른 개별 조제는 보장하되, 대한민국약전과 한약·생약 관련 공정서에 수재되고 제약회사가 품목허가를 받아 생산·공급하는 제제와 동일한 처방·제형은 조제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기준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신고 의약품과 한약재·함량·제형이 실질적으로 같은 제품의 반복 생산·공급을 금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제·캡슐·과립제·환제·산제·엑스제 등 허가 대상 제형의 원외탕전실 내 생산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별 처방전 없이 미리 생산·보관·공급하는 사전조제는 금지하되, 탕제에 한해 엄격한 요건 아래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남 의원은 “한약은 조제에 오랜 시간이 걸려 환자 편의성과 투약을 위해 일부 사전조제가 이뤄져 왔으나, 지금은 사전조제가 일상화되고 공장형 대량조제가 이뤄지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시작된 제5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의 주요 목표가 산업·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점도 언급했다. 원외탕전실 조제한약 중심의 시장구조로는 해외 의약품 시장 진출에 한계가 있다며, 국제 수준의 GMP와 품목허가 체계를 갖춘 한약제제의 생산·공급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격 한약재 사용 실태 확인하고 조제건수 기준 마련
조제한약의 안전·품질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남 의원은 2015년 한약재 제조·품질관리기준(hGMP)이 전면 시행돼 규격품 사용이 의무화된 한약재는 원외탕전실에서도 규격품을 사용해야 하지만, 이를 확인하는 체계적인 관리나 실태조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비규격품 사용과 원가 절감을 위한 재탕·삼탕 사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다만 보도자료에는 해당 사례의 규모나 개별 조사 결과는 제시되지 않았다.
남 의원은 복지부의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면 식약처가 관리·감독을 맡도록 개선하거나, 복지부·식약처·건강보험심사평가원·지방자치단체가 합동점검을 실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외탕전실의 조제규모와 인력에 관한 기준도 요구했다. 한약사 1인당 하루 조제건수 기준을 마련하고, 안전·품질관리에 필요한 적정 인력 운용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 의원은 “한약제제와 조제한약의 규제 불균형을 방치하면 제약산업의 투자와 생산기반뿐 아니라 국가가 허가·관리하는 의약품의 품질보증 체계와 안정적 공급기반까지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